아픈 아이가 학교에서 방치되고 있다

보건교사 1명 없는 학교 ‘22%’ vs 건강고위험학생 ‘4665명 + α’

기사승인 2018-06-11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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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교에 다니는 승민(가명)이는 뼈가 한 방향으로 삐뚤게 자라는 척추측만증을 앓고 있다. 활발히 뛰노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건 언감생심 꿈도 못 꾼다. 그저 멀리서 지켜볼 뿐이다. 혹시라도 근처에 있다 작은 부딪침이라도 생기면 뼈가 부러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옆에서 주의를 주고 사고가 생기지 않게 돌봐줄 이는 아무도 없다. 학교에 유일한 의료인인 보건교사는 홀로 수백 명의 학생 건강은 물론 위생, 환경, 영양 등 각종 업무에 치여 계속 승민이만 돌불 수는 없다. 결국 자신의 몸은 스스로 지켜야만 한다. 앞으로도 쭉.

승민이와 같이 관심이 필요한 아이가 최소 4665명 있다. 만성질환이나 희귀난치성 질환을 앓고 있어 장기간 입원치료 또는 정기적 외래진료를 받거나, 정상적 통학이 힘든 ‘건강고위험학생’들이다. 고위험학생으로 분류되진 않았지만 주위의 손길이 요구되는 학생은 수배가 넘는다.

질환을 제외하고도 식품알레르기와 같이 아이가 가지고 있는 체질에 따라 건강고위험상황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아나필락시스 쇼크’는 원인물질에 노출된 후 급격히 진행되는 전신 중증알레르기 질환으로 즉각적인 조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문제는 아이들이 건강상 문제없이 학교생활을 할 수 있는 전제조건인 ‘보건교사’ 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2017년 전국에 배치된 보건교사는 기간제 교사를 포함해 법정정원의 77.4%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박인숙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받아 공개한 2017년 4월 기준 전국 17개 시·도별 보건교사 배치율 현황에 따르면 서울은 보건교사 배치율이 98.7%인 반면 산간벽지가 많은 강원을 비롯해 전남, 제주의 경우 60%를 밑도는 수준이다.

이마저도 2016년 보건교사 임용논란이 일어 예외적으로 채용인원을 늘려 69%에서 껑충 뛴 수치다. 이 가운데 보건교사회는 교육부가 제시한 배치율은 기간제 교사가 포함된 수치로 전임 교사는 70% 내외에 불과하다면서 교육현장은 더욱 열악하다고 꼬집었다.


배치율은 학교 내 안전사고가 늘고 있음에도 이를 예방하거나 응급조치를 취할 수 있는 이들이 보건교사 밖에 없기 때문에 중요하다. 실제 교육부에 따르면 2008년 6만2794건이었던 학교안전사고는 해마다 급증해 15년 12만123건에 이르렀음에도 정원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보건교사 1인당 담당하는 학생수로 살펴보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울산지역의 경우 179명의 보건교사가 14만1634명을 담당하고 있다. 1명이 791명이상을 관리하는 꼴이다. 뒤를 이어 대전은 1인당 764명, 제주는 727명으로 집계됐다.

당연하게도 예방을 위한 보건교육도 16%는 이뤄지지 않았으며, 교육부 고시에서 정한 1학기 17시간 이상 보건교육을 편성한 학교는 66%에 불과했다. 결국 보건교사가 없는 학교의 아이들은 일과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학교생활에서 의료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전무한 상황이다. 예방과 관리를 위한 정보습득도 어렵다. 한마디로 방치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보건교사회(회장 차미향)는 학교 내 유일한 의료인이자 보건교육을 담당하는 교사로 법에서 정하고 있는 수준은 최소한 배치돼야한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학급 및 학교의 규모, 학생성향이나 주변 환경 등에 따라 추가 배치도 고려돼야한다고 강조한다.

◇ 할 사람 넘쳐도 뽑지 않는 현실, 외면하는 정부

하지만 문제해결이 쉽지 않다. 당장 국가공무원 총정원제가 발목을 잡는다. 행정의 효율과 인력의 증가억제를 위해 도입된 총정원제로 인해 교원 부족 및 불균형 현상이 심화되고 있음에도 전체 공무원 정원제한에 막혀 필요인력 수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보건교사 등 특수교원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일쑤인데다 최근 보건교사 확충에 따른 여타 과목과의 관계도 악화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보건교사 때문에 임용이 안 된다는 푸념에 미움까지 받는다. 그러나 교육부는 별다른 대안이 없는 상황이다.

아픈 아이가 학교에서 방치되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직역별, 특성별 인력수요계획을 별도로 수립·충원해야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해당사항들을 고려해 인력충원요청을 하지만 총원제를 바탕으로 행정안전부에서 인력충원계획 등을 총괄하고 있어 요청해도 100% 그대로 이행되지는 않는다”고만 답했다.

법정정원을 충족시켜야하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행안부에서 학생이나 학급 수, 지역적 특성이나 여러 다른 사항들을 고려해 중장기계획에 따라 충원이 이뤄지고 있다”며 “학생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뽑았다 해고할 수는 없지 않냐”고 말해 모든 학교에 배치할 계획은 없는 것 같았다.

이에 박인숙 의원은 “매년 학교에서 안전사고가 증가하고 있는 추세인데 반해 보건교사의 배치율은 많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보건교사가 미배치된 학교 학생들에 대한 건강관리 및 보건교육이 불가한 상황에서 학생의 건강권 불평등이 야기될 수 있다”고 일정 규모 이상의 학교에 2명 이상의 보건교사를 의무적으로 배치하도록 하는 ‘학교보건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보건교사회 차미향 회장은 “배치율을 100% 달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1명이서 1000명이 넘는 학생을 보는 곳도 있다”며 “ 학교의 규모와 학생들의 필요도, 지역적 특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2~3명, 최소한 1명 이상의 보건교사는 있어야한다”고 법 취지에 공감을 표했다.

그러나 총정원제가 유지되는 한 현행법에서 정하고 있는 적정배치인원조차 지켜지지 않는 상황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많다. 교육부는 학생들의 보건문제는 뒷전인데다 소아청소년의 건강을 고민해야할 보건복지부는 교육부 소관인 만큼 관여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어 법개정이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한 보건교사는 “지금도 법에서 정하는 수를 채우지 못하고 있는데 법에서 수를 늘린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있겠냐”면서 법 개정에 따른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어 “중요한 것은 법 개정이 아니라 정부의 의지”라며 일반교원과 보건교사 등 특수교원의 분리 채용 등 별도의 대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보건교사회 강류교 부회장도 “하루에 보건실을 방문하는 아이들이 적게는 40명, 많게는 100명을 넘는 곳도 있다. 출근하면 보건실 앞에 이미 줄을 쭉 서있다. 최근 소아당뇨환아들의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는데 이 상황에서 주사를 놓을 수 있겠냐”면서 학생들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인력 충원과 별도의 채용과정이 필요하다는 뜻을 강하게 피력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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