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진가방 든 의료진, 디지털 시대에 필요한 이유있나

지역복지로 떠오른 방문의료, 초고령사회 대비책으로 부상

기사승인 2018-06-20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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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진가방 든 의료진, 디지털 시대에 필요한 이유있나왕진 가방을 든 의료진은 미래에도 유효할까. 찾아가는 주치의, 방문간호 등 방문의료가 지자체 복지 정책으로 떠올랐다.

19일 지난 6·13 지방선거 당선자들의 공약집을 살펴보면, 고령화 대책의 일환으로 노인계층을 위한 방문의료 관련 공약이 대거 포함됐다.

시도광역시 중 인천광역시는 방문간호사 확대를, 경상남도는 65세 노인에게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찾아가는 방문건강서비스를 약속했으며,  경기도 고양시, 광명시 등 많은 지역구와 구시군의장 당선자들도 의료진의 방문 진료를 활성화하겠다는 공약을 냈다. 이 외에도 지난 지방선거에서는 다양한 노인정책이 쏟아졌다. 갈수록 심화되는 고령화에 대한 위기감이 심화된 탓이다.

그런데 빅데이터, 인공지능(AI), 가상현실(VR), 사물인터넷(IoT)의 의료 접목이 활성화되고 있는 디지털 헬스케어 시대에 굳이 의료진이 직접 환자를 방문할 필요가 있을까.

이 같은 의문에 장숙랑 중앙대 간호학과 교수는 “오히려 초고령사회 대비를 위해 가정방문 일차의료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장 교수는 최근 ‘노인 일차보건의료 발전 전망’을 주제로 열린 국회 토론회에서 “거동이 불가능하거나 집안에 고립돼있는 칩거노인의 인구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며 “21세기 노인에 가장 필요한 최첨단 의료는 가장 아날로그적인 방문진료에 있다”고 주장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 대거 늘어남에 따라 방문의료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의견이다.    

WHO기준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이미 지난해 노인인구가 14%이상인 고령사회에 진입했으며, 7년 뒤인 2026년에는 인구 5명 중 1명이 노인인 초고령사회(노인인구 20%)에 들어설 전망이다. 또 국민건강보험공단과 노인실태조사를 바탕으로 집계한 국내 칩거노인 수는 약124만 명으로, 이들 칩거노인의 유병률은 전체노인의 17.7%로 추산된다.

방문의료는 폭증하는 노인 의료비를 절감하기 위한 대안이 될 수도 있다. 노인의학 전문가인 유형준 교수(CM병원 내분비내과, 전 한림의대 교수)는 “노인은 기본적으로 병을 가지고 있고, 의료비가 어마어마하게 들 텐데 기존의 병원이나 복지시설은 물리적으로 노인환자 전체를 감당할 수 없다”며 “노인이 살고 있는 거주지에서 의료서비스가 이뤄진다면 이론적으로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신현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박사는 '건강보험 노인의료비의 효율적 관리방안' 보고서에서 "노인 만성질환으로 의료이용이 증가하고 있으나 사전적 예방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의료비 절감을 위해 노인 만성질환의 사전적 예방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방문간호서비스 등 1차 의료 활성화를 의료비 누수 방지대책 중 하나로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노인 의료비 증가추세를 감안하면 ‘방문의료’도 완전한 대책은 아니다. 초고령사회 노인 인구의 수는 방문의료 인력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치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유형준 교수는 방문의료뿐만 아니라 원격의료, 의료 IoT 등 디지털 의료 접목을 지금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유 교수는 “수많은 노인을 커버하기위해 수백 개의 방문의료팀을 만들더라도 한계가 온다. 결국 디지털 기술을 적극 적용해야 하는 것”이라며 “기존에 격오지, 장애인, 취약계층에만 허용한 원격의료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노인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중심으로 순찰로봇이나 모니터링 기기 등 다양한 기술과 제도를 한꺼번에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노인 환자에게 멀다는 개념은 일반인이 생각하는 물리적인 거리와 다르다. 병원 담장 너머에 사는 노인도 혼자 살아서, 거동이 불편해서, 어디가 아픈지 몰라서 병원에 못 온다”며 “이들이 병원에 오기 전에 또는 방문의료팀이 방문하기 전에 어떤 상황인지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원격시스템 활용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방문의료팀의 구성과 운영방식을 노인의 특성과 의료요구에 따라 세분화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이와 관련 18일 명지병원 가정의학과 신현영 교수팀은 경기도 덕양구 보건소와 지역사회 통합케어모델 개발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거동이 불편하거나 중복질환이 많아 의료기간 이용에 어려움이 있는 75세 이상 어르신을 대상으로 의사, 간호사, 운동처방사가 직접 방문하는 ‘찾아가는 건강주치의 사업’을 올해 연말까지 진행한다. 건강종합평가 및 의료필요도에 대한 사례를 수집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노인건강 지역사회 모델을 제시한다는 계획이다.

신현영 교수는 “방문진료가 지속적인 노인대책이 되려면 의료, 복지 등 어떤 서비스가 필요한지 기준이 먼저 만들어져야 한다. 기존 의료시스템을 파괴하지 않으면서도 효율적인 모델을 만들기 위해 시범사업을 시작했다”며 “노인들이 기존 의료기관을 통한 대면진료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 과다·과소진료나 비효율적인 의료제도상 문제는 없는지 검토하고, 사례를 발굴하는 식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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