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화의 영문학 기행] 그 두번째 이야기

기사승인 2018-07-13 1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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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이라서 사정을 봐주느라 그랬는지 8시 반에 숙소를 나섰다. 숙소를 나설 때 오락가락하던 비는 옥스퍼드에 도착할 무렵 그쳤다. 옥스퍼드(Oxford)는 런던에서 북쪽으로 82㎞ 떨어진 곳이다. 17만 명이 살고 있는 영국에서 52번째로 큰 도시로, 영어권에서 가장 오래된 옥스퍼드대학이 있어 유명하다. 

옥스퍼드는 서기 900년 무렵인 앵글로색슨 시기부터 사람들이 정착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소들의 여울목(Ford of the Oxen)’이라는 의미로 옥스나포다(Oxenaforda)라고 불렀다. 소를 몰고 강을 건너던 여울목에 세워진 도시였던 것이다.


10세기 무렵, 옥스퍼드는 머시아(Mercia)왕국과 웨식스(Wessex)왕국 사이에서 중요한 군사국경도시로 발전했다. 1066년 노르만족의 침공으로 도시가 파괴되었지만, 노르만 정복자 로버트 도레이 (Robert D' Oyly)가 성을 세우고 성 조지 수도원을 건설했다. 옥스퍼드에서는 후기 색슨 시기 이후에 발전한 영국의 대표적 건축양식들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시인 매튜 아놀드(Matthew Arnold)는 옥스퍼드를 일러 ‘꿈꾸는 첨탑들의 도시(city of dreaming spires)’라고 했다.

옥스퍼드대학이 탄생한 데는 파리 대학이 기여한 바가 크다. 파리 대학에서 공부한 유학생들이 귀국한 뒤, 런던 가까이 상공업도시인 옥스퍼드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이어서 파리 유학을 꿈꾸던 젊은이들이 이곳에 모여들면서 대학이 만들어졌다. 처음부터 파리 대학을 모방해 신학부, 법학부, 의학부, 인문학부가 개설됐다. 최초의 단과대학인 유니버시티 칼리지(University College)는 1249년에 세워졌으며, 1263년경 베일리얼 칼리지(Bailliol College)가, 1264년에 머튼 칼리지(Merton College)가 세워졌다.

옥스퍼드와 쌍벽을 이루는 케임브리지대학의 시작도 옥스퍼드와 무관하지 않다고 한다.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옥스퍼드 대학생에게 퇴학처분이 내려지자, 그를 옹호했던 교수와 학생들이 캠 강변에 있는 도시 케임브리지로 옮겨가게 된데서 시작됐다고 전해진다. 두 대학의 대단한 경쟁의식이 어디에서 시작된 것인지 조금은 이해될 것 같다. 케임브리지 대학교는 1209년에 설립됐으며, 역시 31개의 칼리지의 집합체다. 칼리지는 우리가 이해하는 단과대학과는 차이가 있어 ‘학료’ 정도로 옮기는 것이 옳다고 한다. 


졸업식이 열린다는 쉘던 극장(Sheldonian Theatre)에서 옥스퍼드대학 구경을 시작했다. 1000석 규모의 쉘던 극장은 옥스퍼드대학의 크리스토퍼 렌(Christopher Wren)의 설계로 1664년 짓기 시작해 1669년에 완공됐다. 건설을 주도한 길버트 쉘던(Gilbert Sheldon) 당시 총장의 이름을 따 명명됐다. 콘서트와 강의, 입학식과 졸업식 등의 행사가 열린다. 1733년에는 헨델의 세 번째 오라토리오 아탈리아 (oratorio Athalia)가 초연되기도 했다. 

쉘던 극장을 나서면 허트포드 칼리지(Hertford College)의 신관과 구관 건물을 연결하는 통로를 볼 수 있다. 1913년에 지어진 이 통로에서는 가끔씩 학생들이 자살을 시도해 한숨의 다리(Bridge of Sighs)라고 부른다고 가이드는 설명했지만, 높이나 구조로 보아서는 그럴 일은 없을 듯하다. 성적표를 받아들고 다리 아래를 지나면서 한숨을 쉬는 학생들이 많아서 그렇다는 설명이 오히려 그럴 듯했다. 


젊은이들이 모인 만큼 얼마나 많은 인연이 맺어질 터인데, 사랑하는 사람과 이 다리 아래를 지나면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속설도 믿을게 못되는 듯하다. 베네치아의 총독궁 옆에 있는 탄식의 다리에서 따왔다는 이름이지만, 생긴 모양으로 보아서는 베네치아의 리알토 다리를 닮았다.

이어서 래드클리프광장에 있는 래드클리프 카메라(Radcliff camera)를 지난다. 여기서 말하는 카메라는 사진을 찍는 카메라가 아니라 ‘방’을 의미하는 라틴어에서 온 것으로 도서관 건물이다. 북쪽으로 성모교회(St. Mary's Church)가 있고, 남쪽으로는 보들레이언(Bodleian) 도서관이 있다. 13세에 유니버시티 칼리지를 졸업하고, 윌리엄 3세 왕과 앤 여왕 등 유명 인사의 주치의였던 존 래드클리프(John Radcliffe)의 후원으로 1737년부터 1749년 사이에 건설됐다. 래드클리프는 건축비용과 장서구입비는 물론 건물을 유지하고 관리하는 데 드는 돈까지 부담했다고 한다. 


영국에서 원형으로 지어진 도서관으로는 초기 건축물인 까닭에 다양한 대중문화에 등장한다. JRR 톨킨의『반지의 제왕』에서 누메노르(Númenor)의 모르고스(Morgoth)에 있는 사우론(Sauron) 사원과 닮았다. 영화 『젊은 셜록 홈즈(Young Sherlock Holmes, 1985년작)』, 『아편전쟁(Opium Wars, 1997)』, 『세인트(The Saint, 1997)』 그리고 『레드 바이올린(The Red Violin, 1998)』에 등장하는 장면을 촬영하기도 했다. 

래드클리프 카메라를 지나, 사암으로 지은 고색창연한 건물들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걷다보면 쇠로 창살을 만든 문이 나타난다. 겨우 한 사람이 빠져나갈 정도로 좁은 철문을 나서면 왼쪽으로는 머튼 칼리지, 오른쪽으로는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로 이어지는 길이다. 데드맨 워킹(Dead Man Walking)이라는 별명으로 더 알려져 있다. 


가이드의 설명대로라면, 왕정복고 당시 왕당파를 지지했던 머튼칼리지에 반대파를 단죄하는 법정을 열었고, 여기서 사형이 결정된 자들이 형장으로 향하던 길이라고 했다. 동쪽 끝에는 제임스 새들러(James Sadler)가 1784년 10월 4일에 영국 최초로 열기구를 띄웠다는 머튼 필드(Merton Field)가 있다. 

영국은 1642년부터 1651년까지 국왕 찰스1세와 찰스2세를 지지하는 왕당파와 올리버 크롬웰이 주도하는 의회파 간에 세 차례의 내전을 겪었다. 청교도혁명 혹은 영국혁명이라고 부르는 전쟁은 의회파의 승리로 끝나 찰스 1세는 처형됐고, 찰스2세는 프랑스로 추방됐다. 

의회파는 잉글랜드 연방을 구성하여 올리버 크롬웰을 호국경으로 선출했다. 하지만 1658년 크롬웰이 죽은 뒤 구심점을 잃은 공화정은 붕괴되고 찰스2세가 다시 왕위에 오르게 된다. 이를 왕정복고라고 한다. 1차 내전 당시 찰스1세는 옥스퍼드에 머물며 전쟁을 이끌다가 의회군에 의해 체포됐다. 당시 옥스퍼드는 대부분 왕당파에 속했지만, 머튼 칼리지만큼은 의회파를 지지했다고 한다.


근대에 들어서 ‘죽은 자의 산책(The Dead Man Walking)’이라는 단어는 주로 사형수가 형장에 이르는 길을 의미한다. 하지만 1909년 토마스 하디가 발표한 「죽은 자의 산책(The Dead Man Walking)」이라는 제목의 시는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그들은 나를 살아있는 것처럼 대하지만, / 이미 오래 전에 죽어 / 묘 자리마저 파헤쳐진 것조차 / 알지 못합니다. // 내가 비록 형상을 갖추어 여기 서있지만, / 맥박도 없는 헛개비에, / 재마저도 이미 차갑게 식어 / 화면에 비친 희미한 그림일 뿐입니다. .(They hail me as one living, / But don't they know / That I have died of late years, / Untombed although? // I am but a shape that stands here, / A pulseless mould, / A pale past picture, screening / Ashes gone cold .)”

하디 역시 당시 사용되던 단어를 가져온 것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무렵까지는 죽음을 맞으러 가는 자의 산책보다는 이미 죽은 자들에게 사용되던 말이었을 것이다.
 
옥스퍼드에서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내전 당시 처형된 왕당파의 프랜시스 윈디뱅크(Francis Windebank) 대령의 유령이 이 길에  출몰한다고 한다. 대령은 1645년 1차 내전이 끝난 뒤에 머튼 칼리지 밖 성벽에 세워진 채, 총살을 당했다고 전한다. 

결국 죽은 자, 즉 유령이 출몰하는 장소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유명을 달리한 자의 명복을 빌며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로 이동한다. 지나온 머튼 칼리지는 법학과가 유명하고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는 수학과가 유명하다고 했다.

글·양기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진료심사평가위원회 평가수석위원

[양기화의 영문학 기행] 그 두번째 이야기
1984 가톨릭의대 임상병리학 전임강사
1991 동 대학 조교수
1994 지방공사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1998 을지의대 병리학 교수
2000 식품의약품안전청, 국립독성연구원 일반독성부장
2005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2009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상근평가위원
2018 동 기관 평가수석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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