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위주 정치판, 안 바뀌나요?

일본의 ‘후보자 남녀균등법’ 제정 사례로 본 여성 정치 할당제

기사승인 2018-07-20 00: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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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성 정치 참여 20%. 정치에서 남녀평등은 요원한 걸까?

어느 나라나 한 개의 법안이 발의되어 제정, 시행되기까지는 지난한 과정을 거친다. 폭넓은 연구와 조사가 선행되고 각계의 이해관계를 절충해 법안이 의회에 제출되어도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해 수년째 의회에 계류되는 건 예사다. 특히 젠더 이슈나 공직선거 공천과 관련된 법안은 더욱 정치·사회적 쟁점이 큰 탓에 법이 통과되기까지 적잖은 진통을 겪기 마련이다.

지난 523일 일본에선 정치 분야에서의 남녀공동참여 추진에 관한 법률’(이하 후보자 남녀균등법)이 제정됐다. 법은 공직선거에서 후보자 수를 가능한 남녀 균등이 되도록 각 정당에 촉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본이 법까지 만들며 여성의 정치참여를 독려하고 나선 이유는 빈약한 중의원(하원) 여성의원 비율 때문이었다. 세계의회연맹에 따르면, 일본은 193개국 중 160, OECD 회원국 35개국 중 꼴찌다. 지난해 중의원 선거에서 여성 후보자 비율은 17.7%, 앞선 2015년 통일지방선거의 도도부현 의회 선거에서도 고작 11.6%에 지나지 않았다.

한국은 이보다 상황이 낫다고 해도 인구대비 공직선거에서 여성 후보자가 공천되고 실제 당선까지 이어지는 비율은 사실상 비등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일본의 후보자 남녀균등법 제정 과정은 남녀 정치 평등에 있어 우리나라에도 시사한 바가 크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 3일 발표한 보고서를 바탕으로 일본의 후보자 남녀균등법 제정 배경과 그 과정을 개략적으로 소개한다. 한국과 닮은 듯 다른 일본에서 논쟁적인 법안이 통과되는 과정은 집권여당인 자민당의 입김이 강하게 반영됐다.

남녀 공동 참여 사회 형성을 위한 법


1994712일 일본 내각은 남녀공동참여추진본부를 설치했다. 앞서 1975년 설치된 부인문제기획추진본부가 그 전신이었다. 내각총리대신이 본부장으로, 남녀공동참여사회 형성에 대한 정부 정책을 원활하고 효과적으로 추진한다는 게 대외적인 이유였다.

그리고 2003년 남녀공동참여추진본부는 ‘202030’이라는 목표를 발표했다. 2020년까지 여성이 지도적 지위를 차지하는 비율을 30%로 하겠다는 다소 말장난 같은 목표였다. 기대 심리도 낮았다.

실제로 그로부터 상당한 시일이 지나도록 202030 정책은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201012월에 이르러서야 일본 정부는 중의원 및 참의원 의원의 여성 후보자 비율을 30%로 하자는 목표 수치를 설정, 자민당을 비롯한 각 정당에 액션을 주문하며 법제화에 시동을 걸었다. 이는 당시 제3차 남녀공동참여기본계획에 매우 구체적으로 담겨있었다.

이런 가운데 2012년 말 출범한 아베신조 정부는 여성 이슈를 경제 정책에 결합시켰다. 이른바 여성이 빛나는 일본을 만들기 위한 정책이 그것이었다. 일본 국회도 화답했다. ‘정치 분야에서의 여성 참여와 활약을 추진하는 의원연맹이 결성됐고, 60명의 여야 의원들도 법 제정에 돌입했다.

2016년 모든 교섭단체 의원들이 참여한 가운데, 초당파 의원연맹은 관련 입법을 추진했다. 1야당인 민진당을 중심으로 한 야당안은 일본 공직선거 후보자의 수를 가능한 한 남녀 동수로 하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같은 해 530일 제190회 정기국회에서 나카가와 마사하루 의원을 비롯한 11인의 중의원 의원은 야당안을 바탕으로 한 법안을 제출했다.

그러자 집권여당인 자민당은 난색을 표했다. 여성 후보자 수 자체가 부족한데 동수로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자민당은 후보자의 수를 가능한 한 남녀 균등하게 하자는 여당안을 마련하고 그해 129일 노다 세이코 외 5인의 중의원이 법안을 발의했다.

수개월 동안 여야 간에 공방이 이어지다 20179월 중의원이 임기 중 해산되면서 여야가 각각 제출한 두 법안은 임기 만료돼 폐기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올해 516일 정기국회에서 자민당안으로 통합된 법안이 참의원 본회의에서 최종 통과됐다.

후보자 남녀균등법의 제정으로 여성 후보의 공천이 늘어나면 여성 의원 수도 증가할 것이란 기대와 함께 과연 효력을 발휘하겠느냐는 의구심도 커지고 있다. 그 이유는 후보자 남녀균등법이 지닌 치명적인 한계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법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정당 차원의 노력 의무만 규정했을 뿐, 균등 추천을 의무화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균등 추천시 어떤 지원을 하겠다거나 이를 미이행 했더라도 이렇다 할 제재요건 역시 법문화되지 않았다. 당장 내년으로 예정된 참의원 선거와 통일지방선거에서 법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단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그럼에도 일본에서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 제고를 위해 처음으로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는 데 나름의 의미가 발견된다. 입법과정 역시 다양한 민의를 반영하고자 폭넓은 조사와 연구를 진행했다는 점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한국과 일본 모두 여성의 정치 참여가 서구 국가와 비교해 낮다는 점을 감안하면, 일본 정치 분야에서 남녀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법의 실효성 확보 과정은 우리에게도 여러 시사점을 준다.

정치의 남녀평등 실현은 현재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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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 각국 의회는 여성의원 수를 늘리기 위해 여러 형태의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세계의회연맹은 여성의원의 비율이 높은 상위 20개국 중 여성의원이나 여성후보자 할당제를 대부분의 국가에서 도입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OECD 회원국 35개국 중 29개국이 공직선거에서 여성할당제를 실시하고 있으며, 특히 1995년부터 2017년까지 여성의원 비율이 15%이상 증가한 13개 국가 모두 할당제를 도입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 어떨까. 여성정치할당제와 관련해, 지난 20002월 정당법 개정사항 중 비례대표제 여성후보 30% 할당조항이 채택되는 등 여러 노력이 있었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다. 실제로 지난 지방선거에서 총 9266명이 후보자 중 여성후보는 2321(25%)의 출마율을 보였으며, 최종 당선된 4015명 중 여성은 1070(26.7%)에 불과했다.

관련해 한국여성개발원은 해방 후 한국여성의 정치참여 현황과 향후 과제에서 여성들은 여성의 정치참여가 확대되도록 지역구 할당제 도입을 위한 노력과 함께 여성에게 유리한 정책을 제시하는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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