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화의 영문학 기행] 그 세번째 이야기

기사승인 2018-07-24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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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710년 성 프라이드와이드가 색슨 수도원을 설립했다. 서기 727년 성 프라이드와이드가 소천한 뒤, 수도원이 문을 닫았다가, 서기 1122년 어거스틴 수도사들이 수도원을 다시 열었다. 1524년 토마스 울지(Thomas Wolsey) 추기경의 명령으로 수도원이 폐쇄하고, 1525년에는 카디널대학을 설립하면서 성당을 대학 예배당으로 변경했다. 1529년 울지 추기경이 몰락한 다음, 1532년 헨리8세는 이곳에 킹스 칼리지를 설립하고, 1546년에는 대학과 성당을 합쳐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로 개편했다. 


도로변에 서있는 건물은 메도우 빌딩(Meadow Building)이다. 빌딩 앞으로는 처웰강과 템즈강이 에두른 널따란 목초지를 나무들이 둘러싸고 있다. 메도우 빌딩을 지나면 대강당으로 들어가는 계단실이 나타난다. 1638년에 만들어진 계단실은 기둥을 중심으로 천정이 부채꼴로 펼쳐진다. 계단실 맨 아래 있는 문에는 ‘노 필(No Phil)이라고 적혀있다. 1929년에 내무장관을 지낸 이 대학출신 로버트 필경이 가톨릭교도를 위하여 더 많은 자유를 보장하자고 제안한 것에 대한 항의의 표시였다고 한다. 

계단실을 올라서면 대강당(The Great Hall)으로 들어갈 수 있다. 학생들과 대학관계자들은 이곳에서 아침, 점심, 저녁 식사를 한다. 공식행사에는 가운을 입어야 한다. 학부 교수 한 사람이 성서대에서 라틴어로 기도를 하고, 상급생들은 주빈석에서 식사를 한다. 대 강당은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에서 가장 큰 빅토리아 양식의 강당으로 300명이 동시에 앉을 수 있다. 대강당의 벽에는 크라이스트처치 출신인 13명의 내무장관을 비롯한 저명인사들의 초상화가 걸려있다. 크라이스트처치가 왕실재단이기 때문에 대학의 설립자인 헨리8세의 초상화는 물론 엘리자베스2세 여왕의 초상화가 주빈석 위에 걸려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크라이스트처치의 대강당에서 영화 해리포터의 대강당 장면을 찍었다. 크라이스트처치의 교수와 학생들이 식사를 하는 것처럼 호그와트 마법학교의 식당장면에 등장한다. 또한 신입생들의 기숙사를 결정하는 행사라던가, 학생생활과 관련된 중요한 발표가 이뤄지는 장소가 바로 이곳이다. 어린 해리포터가 호그와트 마법학교에 처음 입학해 기숙사를 배정받는 장면에서 처음 등장한다. 마법학교의 학생들은 모두 4개의 기숙사에 배정돼 생활한다.

호그와트를 창설한 네 명의 마법사의 건학이념을 담고 있다. ‘용감하고 대담한 자들을 위한 기숙사’를 세운 그리핀도르는 ‘그 이름에 걸 맞는 용기를 보여주는 아이들은 누구나 다 가르치도록 하세’, ‘재간꾼을 위한 기숙사’를 세운 슬리데린은 ‘가장 순수한 혈통을 지닌 아이들만 가르치도록 하세’, ‘지혜롭고 사려 깊은 자들을 위한 기숙사’를 세운 래번클로는 ‘가장 똑똑한 아이들만 가르치도록 하세’, ‘진실하고 거짓이 없는 자들을 위한 기숙사’를 세운 후플후프는 ‘나는 그 아이들을 똑 같이 가르칠 걸세’라고 내세웠다. 마법학교에 처음 도착한 신입생들은 대강당에 모여 기숙사 배정을 받는다. 마법의 모자가 학생들의 특성을 감안해 각각의 기숙사 건학이념에 맞게 배정해준다. 


대강당에서 나와 계단을 다시 내려오면서 왼쪽으로 나가면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의 정방형 캠퍼스가 나온다. 입구 위쪽으로 토마스 울지 추기경을 새긴 조각을 볼 수 있다. 토마스 울지는 입스위치(Ipswich)라는 시골마을에서 정육점 주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총명함이 빛났던 그는 옥스퍼드 대학을 나왔다. 능력 있는 서민을 발탁하여 귀족세력을 견제하려한 헨리 7세의 눈에 띄어 관리가 되었다. 헨리 8세 때는 추기경, 대주교와 대법관을 겸한 막강한 위치에 올랐다.

헨리8세의 신임을 얻으면서 나랏일마저도 왕을 대신해 주무르게 되었다. 사람들은 그를 ‘또 하나의 왕(alter rex)’이라 부르기에 이르렀다. 결국 허영과 사치에 빠져 온갖 나쁜 일을 저질러 사방에 적을 만들었다. 당시 헨리8세는 앤 불린과 사랑에 빠져 결혼하기를 원했다. 그러기 위하여 교황청으로부터 캐서린과의 이혼을 승인받아야 했다. 울지 추기경이 교황청과 협의를 맡았지만, 수년이 지나도록 성사시키지 못하면서 헨리8세의 신임도 식어 결국 파국으로 몰렸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요, 영원한 권력은 없는 법이다.

울지를 몰락시킨 앤 불린의 이혼문제는 결국 영국 가톨릭이 로마교황청과의 관계를 청산하고 영국 국교회를 창설하는 것으로 해결됐다. 문제를 해결한 것은 젊은 토마스 크롬웰(Thomas Cromwell)이었다. 뛰어난 지략가였던 울지 추기경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은 영국 가톨릭을 대표하는 추기경이라는 틀 안에 갇혀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한번의 칼질로 해결할 수 있었던 것처럼 문제에 매몰되지 않고 객관적으로 바라봤더라면 쉬운 해결방안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는 넓이를 가늠할 수 없는 정원을 둘러싸고 있는 2층 건물로 구성돼있다. 이 공간에 240명의 대학원생, 430명의 학부생들의 학습을 지도하는 100명의 교직원이 생활하고 있다. 정원 끝으로 시계탑이 보였다. 크라이스트처치의 정문에 해당하는 성 알데이트(St. Aldates)의 톰게이트를 이루는 톰 타워(Tom tower)이다. 역시 크리스토퍼 렌(Christopher Wren)이 후기고딕양식으로 설계해 1681-82년간에 건설됐다. 

시계탑의 꼭대기에는 6¼톤 무게의 종이 달려있다. 원래는 오스니 수도원(Osney abbey)에 있던 2톤 짜라 종을 수도원해산조치가 있을 때 이곳으로 옮겼다. 처음에는 ‘매리(Mary)’라고 부르던 것을 1545년부터 ‘위대한 톰(Great Tom)’이라는 애칭으로 바꿨다. 이 무렵 종에 문제가 생겨 1680년에서야 다시 주조하는데 성공하는데, 이때 지금의 무게로 늘렸다고 한다. 

종은 9시5분에 101번을 울려 통금을 알렸다고 한다. 101번의 종소리는 당시 학생 수이며 9시5분인 이유는 이곳 학생들의 자존심이었다. 그리니치시간으로 9시5분이 이곳 시간으로는 9시라는 것이다. ‘위대한 톰’이 울리면 옥스퍼드의 모든 대학이 문을 잠근다. 종은 ‘옥스퍼드의 늙은 톰(Old Tom of Oxford)’을 포함해 옥스퍼드셔 지방의 민속춤곡들과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의 학장이 작곡한 ‘위대한 톰이 울린다(Great Tom Is Cast)’와 ‘보니 크라이스트처치 벨(Bonny Christ Church Bells)’ 등을 연주한다. 
 

크라이스트처치 교회당은 톰타워와 정원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다. 교회당 안에는 곳곳에 아주 잘 만들어진 스테인드글라스를 볼 수 있다. 이 교회당은 옥스퍼드의 수호성인 프라이드와이드 성녀(St. Frideswide) 수녀원에 딸린 것이었다. 1122년에 지어진 당시의 교회당이 지금의 라틴예배당(Latin Chapel)이다. 7세기말 색슨의 귀족이던 프라이와이드성녀는 라이체스터(Leichester)의 알가(Algar)왕자의 청혼을 거절하고 수녀원을 설립했다. 색슨시대에 지어진 건물들은 모두 사라졌지만, 1170년부터 1190년 사이에 고대 수도원 교회의 대부분이 다시 지어졌다.

중앙제단 부근에 주교의 좌석이 있다. 제단 뒤쪽에 있는 스테인드글라스들 가운데, 위쪽 것은 장미의 모습을 본뜬 것이다. 중앙 회랑을 구성하는 아치형 천정은 교회당에서 가장 뛰어난 부분으로 12개의 석등에서 나온 늑재들이 천정을 버티고 있다. 천정의 중앙에는 서까래 역할을 하는 8개의 늑재가 모여 성전에서 가장 높은 곳에 별의 형상을 만들어 천국의 모습을 그려냈다. 다양한 주제를 바탕으로 한 스테인드글라스들이 교회당 곳곳에 흩어져 있어 볼만하다.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를 나서서 옥스퍼드의 명동이라는 거리를 구경했다. 거리는 수많은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었으며, 버스킹을 하는 가수가 혼신의 힘을 쏟아 노래하는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안타깝게도 대부분 사람들이 무심하게 지나칠 뿐, 발길을 멈추고 노래를 들어주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노래 솜씨가 못 들어줄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말이다. 

거리에는 다양한 상점들이 들어서 있는데, 선물가게에서 재미있는 인형을 구경했다. 엉덩이를 흔드는 모습이 깜찍하기는 했지만, 엘비스 프레슬리야 그렇다고 쳐도 근엄하신 여왕님까지도 경박하게 몸을 흔들어대는 모습으로 형상화한 것을 보면 영국 왕실이 대범한 모양이다. 15분의 자유시간이 지겨워진다 싶을 무렵 옥스퍼드를 떠났다.

글·양기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진료심사평가위원회 평가수석위원

[양기화의 영문학 기행] 그 세번째 이야기
1984 가톨릭의대 임상병리학 전임강사
1991 동 대학 조교수
1994 지방공사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1998 을지의대 병리학 교수
2000 식품의약품안전청, 국립독성연구원 일반독성부장
2005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2009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상근평가위원
2018 동 기관 평가수석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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