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에서 살아남았는데 일을 못 해. 쓸모없는 장롱 같더래요”

국립암센터·고양시, 유방암 환자 및 생존자들에 일자리 연계 사업 실시

기사승인 2018-08-14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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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환우분들 피로감은 말로 형용할 수가 없습니다. 밥 먹다가도 누워서 5분 쉬어야 해요. 다들 젊고, 일할 수 있고, 의욕도 있는데 체력이 안 따라주니까 집에만 있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쓸모없는 장롱 같은 기분이 든다고도 하고요. 직업이라는 거요. 경제적 이유 때문에만 필요한 게 아니에요. 얼마를 버느냐도 중요하지만 내가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거, 소속감이라는 걸 느끼게 해주는 것도 중요해요.” 

암을 이겨낸 암 생존자들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일자리이다. 치료 기간 중 중단했던 일을 마친 뒤 다시 시작하려 해도 복직과 구직의 장벽은 높다. 유방암 환우 자조모임 민들레회 안연원 회장에 따르면 암 생존자들은 치료가 끝난 후에도 수술 부위에 대한 통증과 재발에 대한 두려움을 간직한 채 살아간다. 암 치료 후 나타나는 ‘피로감’과 떨어진 면역력은 일상생활로의 복귀를 포기하게 만든다.

안 회장은 “암 생존자들의 피로감은 일반인이 이해하지 못할 정도다. 암 치료 후에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하더라. 밥을 먹다가도, 웃고 떠들다가도 피로감이 몰려온다”며 “체력이 이러니 풀타임으로 일하는 것이 어렵다. 나도 직장생활을 하고 싶지만 민폐가 되니까 전업주부가 됐다. 어떻게 보면 반강제적인 것이나 다름없다”고 호소했다.

그에 따르면 암 생존자에게 ‘직업’은 단순한 돈벌이 수단을 넘어선 의미로 다가온다. 그들에게 일자리는 사회로의 복귀, 자아정체성의 확립, 그리고 가족 관계를 유지하는 희망이었다. 안 회장은 “체력만 저하된 것이지 일을 하겠다는 의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모두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데 집에만 있으니 환우분들은 ‘집에 안 쓰는 장롱처럼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한다”며 암 생존자들의 고충을 전했다.

이어 “긴병에 효자 없고, 좋은 가정 없다고 제일 먼저 가족들에게 왕따를 당하는 것 같다. 가족들도 지치니까”라며 “사회에 참여하면 세상 돌아가는 것도 알고 가족들과 대화도 하지 않을까”라고 희망했다.

이에 국립암센터는 13일 고양시와 ‘사회적경제 활성화 및 암환자 대상 일자리 창출 업무 협약’을 맺고, 민들레회 유방암 생존자들의 일자리 창출에 나서기로 했다. 암 환자의 직업 복귀와 업무능력·기능 향상을 위해 지자체와 공공보건의료기관이 국내 최초로 직접 발 벗고 나선 것이다.

 

“암에서 살아남았는데 일을 못 해. 쓸모없는 장롱 같더래요”

이번 협약으로 국립암센터는 고양시와 함께 ▲사회적경제 분야 사업 발굴을 통한 비즈니스 환경 구축 ▲암환자 대상 일자리 창출 관련 네트워크 연계 및 각종 인프라, 정보 공유 및 사업에 대한 전반적인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오는 9월부터 암 치료 환자 대상으로 관련 교육과 컨설팅을 실시하고, 12월에는 환우회 주축의 사회적협동조합을 설립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유방암 생존자들이 여성, 주부인 점을 두고 도시락 등 요식업, 공예품, 디자인 등 분야의 사업을 중점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김대용 국립암센터 국가암관리사업본부장은 “앞으로는 암 생존자에 대한 사회복귀에 초점이 맞추어질 것이다. 이번 암환자 일자리 창출 프로젝트는 현 정부의 기조에 맞추어 커뮤니티케어의 일부분이고, 첫 시작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안 회장은 “사실 (암생존자들은) 스스로에게 받는 상처가 가장 크다. 이전에 거리낌 없이 했던 행동들을 못 하게 되면서 상실감이 커지고, 무언가 시작하기를 더 두려워한다”며 “혼자 하면 어렵지만 같이 하면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서로의 고충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이번 일자리 창출 업무 협약은 암 치료비로 소득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환우들뿐만 아니라 그 외의 이유로 직업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걸려도 계속 지원이 됐으면 좋겠다. 엄마가 아프면 가정이 흔들리고, 가정이 건강해야 지역사회도 건강해지기 때문”이라며 “환자 본인도 긍정적인 사고를 갖고 생활해야 한다. 환우회 활동 등을 통해 사회로 나오면 외롭지 않게 암을 이겨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협약식에서 이재준 고양시장은 “사회적경제를 통해 취약계층인 암환자를 대상으로 지역사회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것은 매우 유의미한 일이다. 향후에도 양 기관이 사회적경제 분야를 통해 공공성 강화에 시너지를 낼 것”이라고 했으며, 이은숙 국립암센터 원장 또한 “고양시와 함께 암환자와 생존자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바꿀 수 있는 지원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유수인 기자 suin92710@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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