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화의 영문학 기행] 열 번째 이야기

기사승인 2018-08-18 13: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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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길에 맞는 세 번째 아침이다. 밤늦게까지 구경을 다니다보니 아침에는 여유 있게 숙소를 출발하는 일정이다. 9시에 숙소를 나서 전날 밤에 다녀온 칼턴 힐로 갔다. 에든버러의 구시가지와 북해로 나가는 항구의 모습이 손에 잡힐 듯하다.

이 지역은 1456년 제임스2세가 에든버러에 하사한 땅으로 당시에는 크락인갈트(Cragingalt)라고 했다. 이는 옛 웰시어 혹은 옛 영어에서 ‘작은 숲이 있는 곳’이라는 의미였다. 1591년 남부 리스의 소교구교회의 기록에는 칼드토운(Caldtoun)이라는 이름이 남아있는데, 이는 추운 동네(cold town)이라는 의미로 영어화 된 것으로 보인다. 

이 이름은 18세기 초까지 남아 있었지만, 1725년부터는 칼턴, 혹은 칼턴 힐이라는 이름이 등장했다. 제임스2세 시절 이곳은 병사들의 훈련장소로 이용됐다. 1518년에는 작은 수도원이 세워졌던 것이 1560년 스코틀랜드 종교혁명 이후 비워졌다가 1591년 나환자를 위한 시설로 이용됐다. 1718년에는 남서쪽 등성이에 묘지가 들어섰고, 철학자 데이비드 흄이 그곳에 묻혔다. 

이곳에는 앞서 적은 것처럼 수많은 기념비와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먼저 언덕보다 낮은 곳에 있어 쉽게 눈에 띄지 않는 정치적 순교자 기념비(Political Martyrs' Monument)부터 시작한다. 이 기념비는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에 이르는 정치개혁과정에서 죽은 토마스 뮤어(Thomas Muir), 토마스 피셔 파머(Thomas Fyshe Palmer), 

윌리엄 스커빙(William Skirving), 모리스 마가로트(Maurice Margarot), 조셉 제랄드(Joseph Gerrald) 등 다섯 명의 순교자를 기념하기 위하여 27미터의 사암블록을 쌓아 만든 오벨리스크 형태이다. 영국과 스코틀랜드 의회개혁의 친구들이라는 단체의 주도로 1844년에 세웠다.

스코틀랜드 국가기념물(The National Monument of Scotland)은 나폴레옹 전쟁기간 중에 죽은 스코틀랜드의 군인과 수부들을 위한 것이다. 1823년부터 26년까지 챨스 로버트 카커렐Charles Robert Cockerell)과 윌리엄 헨리 플레이페어(William Henry Playfair)가 아테네의 파르테논신전을 참고해 설계했다. 

1826년 건축을 시작했지만, 예산이 충분하지 않아 1829년부터 공사가 중단된 채로 남아있다. 그런 이유로 스코틀랜드의 불명예(Scotland's Disgrace), 에든버러의 불명예(Edinburgh's Disgrace), 스코틀랜드의 자부심과 빈곤(the Pride and Poverty of Scotland) 그리고 에딘버러의 바보짓(Edinburgh's Folly) 등의 별명으로도 부른다. 

넬슨기념비는 1805년 카디즈 항구 인근 해역에서 벌어진 트라팔가 해전에서 프랑스와 스페인 연합함대를 궤멸시킨 해군제독 호라티오 넬슨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칼턴 힐에서 가장 높은 해발 171미터 언덕에 세워진 32미터 높이의 넬슨기념비는 건축가 로버트 번(Robert Burn)이 설계한 것으로 넬슨제독과 밀접한 망원경을 거꾸로 뒤집어 놓은 모습이다. 

143계단을 오르면 전망대에 오를 수 있다. 일반인의 기부금을 바탕으로 1807년 건축이 시작됐지만, 완성단계에 접어든 다음 해 자금이 바닥나고 말았다. 결국 1814년에서 1816년 사이에 기념비의 기단이 되는 오각형의 탑 모양의 건물을 토마스 보나르(Thomas Bonnar )가 완성하면서 완공을 보게 됐다. 에든버러에 들어오는 배에서는 넬슨기념비를 가장 먼저 볼 수 있다. 

시립천문대는 에든버러 천문연구소의 소장 존 플레이페어(John Playfair)를 기념한 그리스 사원 양식의 건물과 옛 천문대 건물인 고딕탑으로 구성됐다. 천문대에는 6인치 반사망원경과 6인치 투과망원경을 보유하고 있다. 북동쪽에 있는 돔에는 22인치 반사망원경이 설치돼있다. 

1776년 토마스 쇼트(Thomas Short)는 동생 제임스 쇼트(James Short)가 만든 3.7m짜리 반사망원경을 가지고 에든버러로 돌아왔다. 에든버러대학과 천문대 건설을 협의를 하게 됐는데, 대학측은 다른 목적으로 모금해뒀던 기부금을 쓰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제임스 크레이그가 고딕양식으로 설계한 천문대는 1788년 쇼트가 죽을 때까지 완공되지 못하고 1807년 최종 폐기되고 말았다. 에든버러 천문연구소는 1818년부터 플레이페어 빌딩을 짓기 시작했다. 1822년 조지4세의 재정지원이 있었지만 완공이 늦춰지다가 1831년에 완공됐다. 

두갈드 스튜어트 기념비는 스코틀랜드의 철학자 두갈드 스튜어트에게 헌정된 것이다. 그는 1786년부터 1828년 죽을 때까지 에든버러 대학에서 도덕철학을 강의했다. 스코틀랜드 건축가 윌리엄 헨리 플레이페어(William Henry Playfair)의 설계로 1831년 완공됐다.

이 건물은 그리스 아테네에 있는 리시크라테스의 지휘자 기념비(Choragic Monument of Lysicrates)를 참조해 설계된 것이다. 원형의 기단 위로 높인 항아리에 세로로 홈이 새겨진 여덟 개의 기둥을 둘러 세운 신전의 형식이다.

자유 시간을 비교적 넉넉하게 얻었지만, 칼턴 힐에 흩어져 있는 기념물을 모두 돌아보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던 것 같다. 몇 곳은 훗날 다시 올 기회가 있기를 기대할 따름이다. 칼튼 힐에서 내려오는 산책길의 가로수 사이에서 가시가 많은 나무가 신기해서 물어보니 바로 히스(Heath)라고 한다.

히스하면 브론테 자매들이 생각난다.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 그리고 앤 브론테의 ‘아그네스 그레이’ 등에 공통적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녀들의 작품에 히스가 빠지지 않는 것은 아마도 자매들이 성장한 영국 중부의 작은 도시 하워스의 무어(moor)라고 부르는 황무지에 히스가 지천으로 피어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 대목씩 살펴보면, ‘제인 에어’에는 “거센 바람이 휘몰아치며 휩쓸고 지나간, 벌판에 자란 히스 덤불처럼”, “바위 옆 히스가 우거진 곳에 누우니 발이 히스에 묻혔다. 차가운 밤공기가 스며들 틈이 없을 만큼 양쪽으로 히스가 높이 솟아있었다”라는 대목이 있다. 심지어 ‘폭풍의 언덕’의 등장인물은 히스에서 이름을 딴 히스클리프이다. 

물론 “습지 옆 비탈에서 비석 세 개를 찾아보았다. 금방 눈에 띄었다. 가운데 것은 회색이었고 히스에 반쯤 묻혀 있었다. (…) 히스와 실잔대 사이를 파닥파닥 나는 나방들을 바라보기도 하고, 풀잎을 스치는 부드러운 바람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도 했다”는 대목도 나온다. 

‘아그네스 그레이’에서도 “‘나는 야생화를 좋아하지만 다른 것들은 한~두 개를 제외하고는 관심이 없어. 너는 어때?’, ‘앵초, 블루벨, 히스’”라는 대목이 있고, 우리나라에 소개되지 않은 앤 브론테의 ‘와일드펠 홀의 소유주’에서는 “집 뒤로는 그리 크지 않은 황량한 벌판이 있고, 언덕 꼭대기까지 갈색의 히스가 뒤덮여 있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히스는 진달랫과 에리카속에 속하는 작은 관목 종류이다. 전세계적으로 널리 퍼져 있으며 호주에서는 3700종이 남아프리카에서는 7000종이나 될 정도로 다양하다. 하지만 유럽의 경우 종류가 다양하지 못해서 히더(heather, Calluna vulgaris), 히스(heath, Erica species), 고르세(gorse, Ulex species) 등이 있을 뿐이다. 

크기는 20cm~2m에 이르며 특히 여름에 거칠고 건조하며, 산성이고 비옥하지 않은 모래땅이거나 배수가 잘되는 토양을 좋아한다. 벌이 꿀을 따는 밀원식물로 밤꿀보다는 색이 옅으며 젤리와 비슷한 질감을 보인다.

칼턴 힐에서 내려오다 보면, 주봉의 아래로 애든버러성 방향으로 깍여 나간 듯 급경사를 보이는 곳을 아더왕의 의자(Arthur's seat)라고 한다. 이 지역에 남아있는 바위를 조사해보면 341~335만년전 카본기의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 가이드가 아더왕이 에든버러성에서 나오는 켈트족 전사들을 활로 쏘았다고 설명한 것처럼 이곳은 아더왕의 전설과 관련이 있다. 아더왕의 의자는 때로 아더왕의 궁성이 있는 캐머럿성이 있던 곳을 의미한다고도 믿는다. 

에든버러에는 아더왕의 의자에 부합되는 전통적인 스코틀랜드 게일어 이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윌리엄 메이트랜드(William Maitland)는 화살의 높이(Height of Arrows)라는 의미의 게일어 아르드나 세이드(Àrd-na-Said)에서 궁수의 자리(Archer's Seat)를 거쳐 온 것이라 주장한다. 

아더왕의 의자 아래의 숲은 12세기 스코틀랜드의 왕 데이비드 1세의 전설과도 관련이 있다. 왕이 이 숲에서 사냥을 할 때 수사슴이 갑자기 튀어나오는 바람에 말에서 떨어져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그때 왕은 그를 해치지 않고 사라지는 사슴의 뿔 사이에서 십자가를 보았다.

신묘한 치료 덕분에 목숨을 구한 왕은 그 장소에 홀리루드 수도원(Holyrood Abbey)을 세웠다고 한다. 에든버러의 지구 가운데 캐논게이트(Canongate)의 무기에는 뿔 사이에 십자가가 있는 수사슴의 머리로 장식하고 있다.

글·양기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진료심사평가위원회 평가수석위원

[양기화의 영문학 기행] 열 번째 이야기
1984 가톨릭의대 임상병리학 전임강사
1991 동 대학 조교수
1994 지방공사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1998 을지의대 병리학 교수
2000 식품의약품안전청, 국립독성연구원 일반독성부장
2005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2009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상근평가위원
2018 동 기관 평가수석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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