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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화의 영문학 기행] 열네 번째 이야기

다크 헤지스와 자이언트 코즈웨이, 판타지의 한 장면

기자입력 : 2018.09.05 13:30:00 | 수정 : 2018.09.10 21:11:51

여행길에 맞는 네 번째 아침이다. 전날 역시 숙소에 늦게 들었기 때문에 이날 아침도 여유 있게 숙소를 출발하는 일정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침 5시에 눈이 떠진다. 이날도 비가 내렸다. 여행을 시작하고부터 하루도 빼놓지 않고 비가 오는 셈이다. 

출발을 약속한 9시 10분 전에 로비로 내려갔는데, 글쎄 버스가 아직 도착하지 않고 있다. 기름을 넣으러 갔단다. 여행을 다니면서 처음 있는 일이다. 어쩌면 우리 일행이 약속시간을 지키지 않기 때문에 버스 기사도 제멋대로인 모양이다. 약속시간보다 늦게 숙소를 출발해서 자이언트 코즈웨이로 향한다. 대규모 주상절리가 구경거리가 되는 곳이다. 

도로 옆에 있는 야트막한 야산 중턱까지 구름이 내려왔다

가는 길에 보니 구름이 얼마나 낮게 깔렸는지 야트막한 산봉우리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구름은 비를 부르기 마련이다. 실비가 오락가락한다. 잘 달리던 버스가 갑자기 좁은 시골길로 들어서더니 멈춰 선다. 다크 헤지스(The Dark Hedges)를 구경하기로 했단다. 

다크 헤지스는 북아일랜드 북부 안트림(Antrim) 카운티의 아모이(Armoy)와 스트라노쿰(Stranocum)을 연결하는 브레가길(Bregagh Road)에 있다. 여기를 들르는 여행상품도 있다고는 하지만, 우리 일정에는 없던 것을 가이드의 특별한 배려로 구경하게 됐다. 다크 헤지스는 차량 두 대가 비껴가기에도 좁은 시골길 양편으로 커다란 너도밤나무가 늘어서 터널을 이루고 있는 가로수길이다.

1775년 제임스 스튜어트(James Stuart)가 아내 그레이스 린드(Grace Lynd) 사후에 그레이스힐 하우스 (Gracehill House)라는 집을 새로 지었다. 이때 진입로를 꾸미기 위하여 150그루의 너도밤나무를 심었던 것이 오늘날 멋있는 풍경을 만들어냈다.

다크 헤지스 왼편의 밀밭

유령이 나타나 가로수 길을 건너간다는 소문도 있다. 유령의 정체에 대해서는 제임스 스튜어트의 딸 크로스 페기(Cross Peggy)라거나, 미심쩍게 죽은 하녀라고도 한다. 그밖에도 할로윈축제 때 다른 유령을 방문하기 위해 들판에 버려진 묘지에서 나온 영혼이라는 주장도 있다. 가로등이 없는 듯해서 밤에 오면 꽤나 으스스 하겠다.

2016년까지 90그루가 남았다고 하는데, 최근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손상을 입는 경우가 생겨서 2017년 10월말부터 출입을 통제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곳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미국의 케이블방송 HBO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판타지 드라마 ‘왕좌의 게임(Game of Thrones)’에서 ‘왕의 길(King's Road)’의 촬영장소로 사용됐고, 2017년에는 영화 ‘트랜스포머: 마지막 기사(Transformers; The Last Knight)’도 촬영했기 때문이다. 

‘왕좌의 게임(Game of Thrones)’은 소설가 조지 마틴의 판타지 시리즈 ‘얼음과 불의 노래(A Song of Ice and Fire)’을 바탕으로 한 드라마다. 미국의 케이블방송 HBO에서 2011년 4월 17일 방영되기 시작해 2017년 8월 27일까지 시즌7이 방영됐고, 마지막 시즌8이 2019년 방영을 위해 준비 중이라고 한다. 시즌1을 250만 가구가 시청했고, 시즌7은 1026만 가구가 시청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같은 이름의 보드게임도 나와 있다.

다크 헤지스의 너도밤나무 터널

가이드는 이곳에서 삶과 죽음이 만나는 경계라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하지만 아침인 탓인지 음산하다는 느낌은 별로 들지 않았다. 다만 오랜 세월에 걸쳐 비바람을 겪어온 탓인지 줄기가 부러진 나무도 있었다. 도로 왼쪽으로는 널따란 밀밭이, 오른편으로는 초지가 펼쳐진다. 마침 불어오는 거센 바람에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가 상쾌하다. 바람결에 실려 온 초원의 냄새도 오랜 옛날의 기억을 불러오는 듯해서 반갑고도 친근하다.

250년 가까이 된 너도밤나무가 터널을 이룬 길이 얼마나 됐는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1㎞는 되는 듯했는데, 끝까지 걸어가서 갈림길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여유시간을 내준 가이드에게 감사한다. 

길가로 펼쳐지는 밀밭과 초원을 내다보는 느낌도 각별했다. 생각해보면 전주와 군산 사이의 도로를 확장하기 전에 2차선 국도 40㎞길을 촘촘하게 잇던 벚꽃 길도 볼만했고, 경부고속도로의 청주 나들목에서 청주시에 이르는 플라타나스 가로수 길도 참 좋았었는데, 도로확장에 밀려 베어지고 말았던 것은 참 아쉽다.

다크 헤지스 오른편의 초원

속속 도착하는 버스들에게 자리를 내주기 위해 오래 머물 수는 없었다. 일행은 자이언트 코즈웨이(Giant's Causeway)로 출발했다. 북아일랜드의 북부 앤트림주에 있는 부시밀스(Bushmills)에서 4.8㎞ 떨어진 해안가에 4만 여개의 주상절리가 늘어서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1692년 이곳을 방문한 데리(Derry) 주교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고, 다음해 리차드 벌클리(Richard Bulkeley)경이 이곳에 관한 연구논문을 왕립 학회에 발표함으로써 주목을 받게 됐다. 1986년에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으로 지정됐고, 2005년 Radio Times의 조사에서 영국의 7대 자연 불가사의 가운데 네 번째를 차지했다.

주상절리는 유동성이 큰 현무암질 용암류가 급격히 냉각돼 수축하면서 부피변화가 일어나 형성된다. 용암의 표면에서 시작되는 수축은 육각기둥의 모양을 만드는데, 최소한의 변의 길이로 최대의 넓이를 유지하려는 경향 때문이다. 표면에서 시작된 균열은 아래도 전파되면서 기둥 모양의 구조를 만든다. 우리나라에서는 천연기념물 443호로 지정된 제주도 올레길 7구간 중문단지에 있는 주상절리가 대표적이다.

자이언트 코즈웨이의 주상절리는 지금으로부터 5000~6000만년 전 팔레오세기의 활발한 화산활동에서 분출된 용암이 백악기에 형성된 지대에 흘러들어가 만든 넓은 용암대지에서 형성된 것이다. 

거대한 주상절리의 위용(좌) 야트막한 봉우리 하나가 온통 주상절리로 되어 있고(우상), 심지어는 전설의 거인이 만들었다는 둑길의 흔적처럼 바다로 이어진다(우하)

이 지역의 대부분은 호수지역에 있는 윈더미어에서 소개한 내셔널 트러스트의 소유다. 코즈웨이의 주상절리는 영국의 유명한 록밴드 레드 제플린이 1973년에 발표한 정규 5집 앨범 ‘거룩한 집(Houses of the Holy)’의 표지를 장식해서 유명해지기도 했다. 금발의 여자 어린이들이 자이언츠 코즈웨이를 기어오르는 모습을 담아 선정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 장면은 영국 작가 아더 클라크(Arthur C. Clarke)가 1953년에 발표한 인기 공상과학소설 ‘유년기의 끝(Childhood 's End)’의 결말 부분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보니 이영도의 판타지 소설 ‘눈물을 마시는 새’의 결말부분에 등장하는 다섯 번째 종족이 ‘유년기의 끝(Childhood 's End)’의 결말부분을 연상케 한다.

자이언트 코즈웨이의 방문자센터에서 본 동영상에서는 이 지역의 주상절리에 관한 전설을 소개한다. 게일 신화의 페니안 사이클(Fenian Cycle)에서 온 이야기이다. 아일랜드에 사는 거인 피온 맥 쿠마일(Fionn mac Cumhaill)은 바다건너 스코틀랜드의 거인 베난돈너(Benandonner)에게 도전했다. 

화가 난 베난돈너가 바위를 던져 넣어 북쪽 해협을 가로지르는 둑길을 만들고 건너왔다. 막상 베난돈너를 가까이에서 보게 된 피온은 겁에 질리고 말았다. 위기의 순간 아내 우나(Oonagh)가 피온을 아기로 위장해 요람에 넣고 자신의 아들이라고 했다. 요람에 들어있는 피온을 본 베난돈너는 피온의 아버지가 자신보다 훨씬 큰 거인일 것으로 오해하고 다시 스코틀랜드로 달아났다는 것이다.

주상절리로 이뤄진 절벽의 끝에는 자세히 보면 굴뚝 모양의 주상절리가 서있다

방문자센터에서 주상절리가 흩어져 있는 바닷가까지는 꽤 떨어져 있어서 코끼리열차를 타고 가야 한다. 물론 걸어서 오가도 되지만, 자유시간이 그리 넉넉하지는 않다. 해안 절벽을 따라가면서 절벽을 장식하고 있는 거대한 주상절리의 모습도 구경하고, 거인이 쌓았다는 둑길의 흔적인 듯 바다로 이어지는 주상절리도 빠트릴 수 없다.

그 사이 비도 멎었고, 구름은 두텁게 깔렸지만 바람도 없어 코즈웨이의 장관을 구경하는 데는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바다도 잔잔해 두 거인의 치열한 공방이 끝난 뒤의 정적을 나타내는 듯했다. 

바닷가에 흩어져 있는 주상절리도 그저 잔잔한 파도가 핥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문득 1963년에 가수 안다성 씨가 발표한 ‘바닷가에서’가 생각난다. “파도소리 들리는 쓸쓸한 바닷가에 / 나 홀로 외로이 추억을 더듬네 / 그대 내 곁을 떠나 멀리 있다 하여도 / 내 마음 속 깊이 떠나지 않는 꿈 서러워라 ...”

바닷가에 떨어진 거인의 발

옛 노래를 떠올린 필자와는 달리 조석현 시인은 코즈웨이의 전설을 담은 시, ‘코즈웨이-주상절리’를 남겼다. “육중한 바위를 / 육각형으로 솟아올린 / 힘 // 바다거인과 / 땅의 거인과 / 바람과 파도의 관계역학 // 절편으로 분할을 이룬 / 균형 / 그 끝에 매달린 신화 // 모르는 길을 걷다가 / 다시 만나 가는 / 길” 코즈웨이를 다녀온 분들이라면 시의 의미를 잘 이해할 것 같다. 

절벽 중턱에 난 길을 따라 절벽 끝까지 가보았는데, 그 너머로 주상절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시간을 계산해보면 그곳까지 가볼 수가 없을 것 같아, 시인 프루스트처럼 ‘끝 간 데까지 바라보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고 말았다. 나중에 약속시간을 30분씩이나 넘겨 돌아온 사람들이 있을 줄 알았더라면 더 가봤을까?

이 여행에서는 약속시간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 적지 않게 불편했는데, 생각해보니 영국 다음에 여행한 이스라엘에서는 필자도 그런 잘못을 저질렀으니 뭐라 할 말은 없는 셈이다. 하지만 단체여행에서 약속시간을 지키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글·양기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진료심사평가위원회 평가수석위원

1984 가톨릭의대 임상병리학 전임강사
1991 동 대학 조교수
1994 지방공사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1998 을지의대 병리학 교수
2000 식품의약품안전청, 국립독성연구원 일반독성부장
2005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2009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상근평가위원
2018 동 기관 평가수석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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