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으로 치닫는 의사-한의사 직역다툼

한의학 존재자체 부정하는 의료계 vs 세계적 흐름 역행한다는 한의계

기사승인 2018-09-12 00: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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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은 ‘전통의학’이라고도 불리며 19세기 말까지 국민들의 건강을 책임져왔다.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급속도로 사회가 서구화되며 불과 100년여만에 국내에서의 위상이 현대의학과 뒤바뀌었다. 심지어 현대의학을 기반으로 한 의료계가 한의계와의 공생을 거부하고 나서며 직역갈등이 극화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을 비롯해 전국의사총연합(이하 전의총), 대한개원의협의회(이하 대개협)는 10일 한의학 무용론을 일제히 주장했다. 의협은 한방관련 제도와 정책, 행정부서의 폐지를 요구했고, 전의총은 “정부는 의사와 한의사 중 하나만 택하라”는 극단적 선택까지 종용했다.

이들의 주장을 종합하면 크게 2가지다. 한의학이 현대과학으로는 검증이 되지 않아 안전성과 유효성을 확인할 수 없다는 것과 오해나 소문, 전통에 대한 막연한 기대로 건강보험 재정이 축나고 환자의 부담이 증가하고 있음에도 정부는 이를 방관하고 있어 문제가 사회적으로 확산·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최대집 회장은 “국민은 안전성과 유효성이 철저히 검증된 의료서비스만을 받을 권리가 있다. 한방은 역사적 유물이 될 수는 있어도 환자에게 적용할 수 있는 의학은 아니다. 교육 또한 과학적인 근거 중심의 의학교육으로 통일돼야 한다”고 기자회견에서 말했다.

전의총도 “의학적으로 뚜렷한 이상이 보이지 않는 환자를 대상으로 자기 배를 불리는 것이 한방의 현재 모습”이라며 “한방치료로 인한 2차적 피해 때문에 병의원에서 치료를 받는 환자들의 사연을 하나하나 언급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하지만 정부는) 이를 방치하고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대개협은 “기존 한방의료행위에 대한 안전성 보장을 위해 모든 한약재의 제조, 유통 경로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시술을 객관화해야한다”며 “서로 다른 영역을 하나로 만든 기형적인 건강보험을 즉각 폐기하고 한방건강보험을 분리하라”고 의협 등의 주장과 같은 입장을 제시했다.

이에 한의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한의생태계연구소는 의료계의 주장은 세계적으로 전통의학을 지원하고 연구하는 흐름을 역행하는 교만함의 극치라고 비평했다. 의학만으로 인간에게 나타나는 모든 질병을 해결할 수 없으며 미국과 유럽에서 임치료에 한의학을 접목하는 비율이 40~70% 이상으로 점차 늘고 있는 상황을 외면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특히 “의학과 한의학은 서로 다른 의학체계로 오랜 시간 서로 발전해왔다. 한의사들 또한 정직하고 충실하게 국민의 질병치료를 위해 노력해왔고, 그리 할 것이다. 우리 사회도 더 이상 타 학문을 폄하하고 자기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교만한 태도를 수용하지 않을 만큼 성숙했다”고 조언했다.

이어 정부를 향해서는 오히려 한의학 또한 국민건강에 제대로 활용될 수 있도록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허가하고 커뮤니티케어, 난임사업, 치매국가책임제를 비롯해 장애인주치의제, 만성질환관리제 등 보건의료정책에 한의학을 접목하는 방안에 대한 검토가 이뤄져야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시한의사협회는 나아가 의료계의 주장과 요구에 강한 불만을 제기하며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하기도 했다. 한의학은 “치욕스러운 일제 강점기의 유산이라는 의협의 주장은 허위사실이며 민족정기를 말살코자했던 일제의 행태를 답습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한방의 안전성과 유효성에 대한 의료계의 비난에 대해서도 “근거 없는 폄훼”라고 못 박았다. 이어 “한의사들은 한의과대학에서 6년 이상의 정규교육을 이수하고 국가면허시험을 치뤄 면허를 취득해 국민보건향상에 이바지하고 있다”고 답했다. 

극단으로 치닫는 의사-한의사 직역다툼

이어 “패혈증을 유발한 마늘주사 등 유사의료행위에 대한 내부 단속을 먼저 철저히 하고 제 눈에 있는 대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 생김을 지적하는 망발”이라며 오히려 “한의학의 우수성을 현대과학의 장비들로 증명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구비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시 한의사협회는 의료계와 한의계가 서로 폄훼하고 충돌하는 모습으로 보일까 부끄럽고 우려스럽다며 “(의료계의 주장에) 조목조목 반박하지는 않겠다. 묵묵히 국민들의 건강과 비양심적 의료행위로 고통받는 환자들을 보살피고 한의계 내부로는 국민들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부족한 점을 반성하고 다시 살피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한편, 사태가 확산되자 대한한의사협회는 12일 오전 일련의 사태와 의료계의 주장에 대한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히는 기자회견을 갖기로 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의료계의 의료기관 밖 응급의료 무개입 입장과 한의학에 대한 비난을 반박하는 내용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이에 사태가 쉽게 가라앉지는 않을 전망이다.

이와 관련 한 여성(36)은 “평소 한의원을 잘 다니지는 않지만 각자의 장점과 단점이 있을 것”이라며 “서로의 장점을 잘 살리고 단점을 보완해 상생할 수 있는 길은 없는지 궁금하다. 왜 서로 못 잡아먹어 난리인지 모르겠다. 이러니 국민의 건강을 위한다는 말은 다 거짓으로 들리는 것”이라고 힐난하기도 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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