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차라리 일찍 볼래요” 추석 없는 학생들

기사승인 2018-09-25 00:00:00
- + 인쇄

“시험 차라리 일찍 볼래요” 추석 없는 학생들중·고등학생이 연휴를 즐기지 못하고 있다. 추석 직후 치르는 중간고사 때문이다. 

대부분의 중·고등학생들은 추석 직후인 9월 말과 10월 초 중간고사를 본다. 경기 성남시 분당 용인지역의 경우 40개 고교 중, 추석 이전 중간고사가 끝나는 곳은 두 곳에 불과하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경우 7개 고등학교 중 추석연휴 전 중간고사를 치르는 학교는 한 군데다. 경기 군포시와 평택시에 위치한 중고등학교 역시 추석 이전에 중간고사가 끝나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명절에 쉬지 못하는 학생들의 고충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2015년에도 서울 지역 고교 248곳 중 추석 연휴가 끝나는 주와 그 다음주에 중간고사를 시작하는 학교가 68.5%(170곳)에 달했다.

추석 이후에 중간고사를 보는 이유는 학사 일정 때문이다. 9월 중순에 중간고사를 치르면 학생들 입장에서는 사실상 개학을 하고 나서 한 달여 지난 상황에서 시험을 보는 셈이다. 그러면 시험 내용이 부실할 수밖에 없다. 교사들도 연휴가 지난 뒤 시험을 보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서울 동작구 모 중학교 교사 김모(27·여)씨는 김씨는 “추석 이전 중간고사를 본다면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간에 시험 범위 차이가 크게 나는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며 “생각보다 일주일에 나가는 진도 양이 많다”고 부연했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차라리 시험을 빨리 끝내고 쉬고 싶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지난 9일 “추석 이후 중간고사를 금지해달라”는 청원글이 올라왔다. 자신을 경기 소재 모 고등학교 재학생이라고 소개한 글쓴이는 “명절은 가족끼리 화목한 시간을 보내는 날이라고 배웠다. 그런데 시험공부를 하면 집안 분위기가 가라앉고 마음도 불편하다”며 “시험을 연휴 전에 실시하면 공부를 더 효율적으로,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강조했다.

학교는 문을 닫지만 공부는 해야 한다. 갈 곳 없어진 학생들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학원과 독서실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서울 마포구 모 중학교 2학년 재학 중인 서모양(14)은 “추석 연휴는 그냥 공부하는 기간”이라며 “집 인근 독서실에 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시험을 다 끝내버리고 명절에 맘 편히 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친구들끼리 얘기한다”고 했다. 연휴 시작일인 지난 22일부터 오는 26일까지 내내 학원을 가는 같은 중학교 3학년 김모군(15)은 “연휴에는 들떠서 평소보다 공부에 집중이 잘 안된다”고 설명했다. 

학부모도 마음이 불편하다. 시험 기간인 자녀를 홀로 두고 고향에 내려가기 애매한 탓이다. 이러다 보니 아예 가족 전체가 귀향하지 않기도 한다. 고등학생 자녀가 있는 경기 고양시 일산 주민 구모(45·여)씨는 “아이 입시에 집중하느라 연휴를 집에서 보낸 지가 꽤 됐다. 중간고사를 앞둔 중요한 시기에 흐트러지지 않도록 같이 있어주려 한다”며 “자녀가 대학에 입학하면 추석에 맘 놓고 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선 학원가는 추석 연휴가 대목이다. 추석이 다가오면 사교육 시장은 학부모와 학생들의 불안 심리를 이용한 단기 특강 등 고액 상품으로 넘쳐난다. 온라인 상에서는 ‘등급 역전의 마지막 기회’ ‘연휴, 그냥 놓치기에는 너무 아까운 시간’ ’한가위 1등급 특강’ 등 자극적 문구가 들어간 학원 광고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서울 양천구 목동 A 학원은 추석 연휴 4일간 총 12시간 면접 특강 수업비로 50만원을 책정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B 학원은 지방에서 올라오는 학생들을 위해 4박5일간 숙박과 수업을 함께 묶은 ‘패키지’ 상품을 내놓았다. 수업료는 한 과목 당 36만원이, 숙박은 26만원이 책정됐다. 2과목을 듣는다고 가정할 경우, 가격은 100만원에 육박한다. 특히 지난해에는 추석 연휴가 9월30일부터 10월9일까지 사상 최대 10일을 기록하며 사교육 경쟁이 과열되기도 했다. 추석 대목을 노리고 고액 논술, 면접 특강 등 학원 불법행위가 기승을 벌이자 교육부와 서울특별시교육청은 특별 점검에 착수했다. 

교육당국은 학사일정은 학교장 소관이라고 선을 그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추석 연휴 뒤에 중간고사가 예정돼 일선 학교에서 학생들이 겪는 어려움을 알고 있다”면서도 “학사 일정은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정하는 문제다. 교육청에서 관여하기는 힘들다”고 밝혔다. 인천 계양구 모 중학교 교사 김모(55·여)씨는 “마음 같아서는 학생들이 추석 연휴에 푹 쉴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선생님들 사이에서는 최근 체육대회, 각종 체험학습, 외부 활동이 증가한 탓에 수업시수가 줄어들어 차라리 한 학기에 시험을 한 번만 보면 어떻겠냐는 의견이 많이 나온다”고 전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