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성폭력 피해자 욕하는 세상

기사승인 2018-09-23 00: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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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는 사이버성폭력을 처음부터 끝까지 근절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사성의 활동 중에서 인터넷을 통해 유포된 불법 촬영 영상 삭제와 상담 등의 활동은 피해 당사자들에게 매우 시급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현재와 같이 원활히 피해 지원이 이뤄진 건 아니다. 활동가들은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부어 현재와 같은 피해 지원 프로세스를 완성해냈다.       

“처음에는 막막했어요. 지금이야 성폭력 처벌법을 전부 꿰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개별 사안이 어떤 법에 해당하며 처벌이 가능한지, 또 재판 과정이나 유의해야 할 점 등을 완전히 숙지하지 못했어요. 어디에 문의를 해야 할지도 막막했어요. 아는 변호사도 없었거든요.” -효린 활동가

효린 활동가는 피해자와 함께 방문한 경찰서에서의 일화를 들려줬다. 효린 활동가를 의지하던 피해자. 그러나 효린 활동가는 처음 가본 경찰서의 딱딱한 분위기에 위축됐다고 했다. 

“피해자는 제가 옆에 있으니까 든든하게 여겼죠. 근데 사실 전 속으로 바들바들 떨었거든요. 걱정되는 거예요. 경찰 조사를 처음 받으니까요. 그런데도 피해자는 제게 의지하면서 이렇게 와줘서 너무 고맙다고 했어요. 우린 사실 서로를 의지하면서 조사를 받았던 겁니다.”

한사성 활동가들은 각자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이전까지는 경찰서를 가본 적도, 재판도 경험해본 적 없었던 이들은 그렇게 조금씩 변해갔다. 스스로 공부도 하고, 외부 전문가 등의 자문을 적극 활용하는 방식으로 수사 법률 지원 프로세스를 발전시켜 나갔다. 

◇ 피해자들의 고통과 트라우마

한사성에 찾아오는 피해자들은 불법 유출 영상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호소했다. 심리치료 및 상담이 필요했다. 그렇지만 당시 활동가들은 관련 분야에 있어 문외한이나 마찬가지였다. 심리치료 전문기관과의 연계 지원은 녹록치 않았다. 일일이 적합한 기관을 발굴해내는 지난한 과정이 반복됐다. 

“전활 걸어 성폭력 피해자의 심리치료 및 상담이 가능한지, 여성 상담사가 있는지 등을 문의했습니다. 이렇게 지속적으로 발굴해서 현재는 기본 풀이 갖춰져 있습니다.” -효린 활동가

그러나 서울과 달리 지방의 경우는 이러한 상담 기관을 찾기가 더욱 어려웠다. 박정현 활동가는 “선택지 자체가 좁았다”고 말했다. 

“연계할 만한 기관이 없는 경우가 부지기수였습니다. 피해자에게 2차 가해성 발언을 하지 않는, 신뢰할 수 있는 상담이 가능한지 신중을 기해야만 했습니다.”-박정현 활동가 

당시 심리 상담 전문기관들조차 사이버 성폭력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 않았다. 한사성 활동가들은 사이버 성폭력이 무엇인지, 그 피해의 규모가 얼마나 광범위하며, 치명적일 수 있는지를 몇 번씩 반복해 설명했다. 

“동의 없이 성관계 영상이 유포되었고, 피해자들이 어떤 심리상태인지, 사이버 성폭력의 특성을 충분히 이해하도록 재차 설명 해야만 했죠.”-효린 활동가 

◇ 컴맹에서 범죄영상 삭제 활동까지

불법 유포 영상을 삭제하는 건 매우 많은 시간과 품, 고통이 요구되는 작업이다. 아울러 상당한 자원, 즉 돈, 인력, 전문가 등이 요구된다. 자원도 돈도 없던 한사성 활동가들은 노력으로 없는 자원을 메워야 했다. 효린 활동가는 “이 일에 투신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반드시 관련 전문성을 갖춰야만 했다”며 “그래야 이 일을 해낼 수 있다”고 말했다. 

리아 활동가도 ‘맨 땅에 헤딩’하며 삭제 지원을 했던 경험을 들려줬다. 관련 지식이 부족해 IT 업계에 종사하는 지인들에게 “물어가며” 삭제 지원 활동을 했다고 그는 말했다.      

“처음 삭제 지원을 했을 때는 플랫폼을 하나하나를 찾아다니며 해당 영상을 삭제하라고 연락했습니다. 연락할 창구를 찾는 것조차 어려웠어요. 플랫폼이나 마그넷 등 기본적인 기술에 대한 이해가 어려워 IT 관련 일을 하는 친구들에게 자주 묻곤 했습니다.”

삭제 지원 프로세스는 이런 시행착오와 고군분투를 거름삼아 완성되어 갔다. 한사성의 삭제 프로세스는 정부도 신뢰할 정도의 수준이지만, ‘완전한’ 유포 근절이 되진 못한다. 피해자들이 원하는 대로 단기간 내에 모든 유포 영상을 삭제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플랫폼이 계속 변하기 때문에 삭제 방식도 다양화되어야 하고 그 방법도 발전되어야만 합니다. 가해 방식이 지능화될수록 저희도 여기에 맞춰 대응해야만 하니까요. 이렇게 아무리 범죄영상을 지워 나가도 1~2일 만에 전체를 다 삭제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실제로 한 피해자는 작년 후반부터 지금까지 삭제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효린 활동가 

박정현 활동가도 “완전한 피해회복은 어렵다”고 말했다. 영상을 삭제를 해도 매번 새로운 사이트에서 새롭게 게시되는 일이 반복된다. 다른 썸네일을 붙여 위장해 게시하는 ‘꼼수’도 비일비재하다. 박 활동가는 “오랜 기간 삭제 지원을 했는데 한 번에 이전보다 더 많은 양의 범죄영상이 올라올 때가 있다”고 했다. 

리아 활동가도 답답함을 토로했다. 무엇보다 이처럼 악의적인 가해 유포 행위가 피해자들에게 끼칠 영향을 그는 우려했다. 

“삭제 지원을 통해 범죄 영상이 거의 사라졌을 때, 피해자와 함께 안도했다가도 그 다음 달에 갑자기 수백 개의 영상이 유포되기라도 하면. 피해자의 심정이 어떨지 상당히 우려됩니다. 영상 유포 가해자들도 한사성이 추적하면서 영상을 삭제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삭제되기 전에 보세요’라고 써서 영상을 유포하기도 합니다. 삭제를 해놓으면 다음날 다시 올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심지어 영상을 유포하는 가해자들은 ‘누가 이기나보자’는 글을 써 놓기도 한다. 리아 활동가는 “삭제 후 5분 만에 다시 영상이 올라오면 또 지우기를 반복한다”면서 “이렇게 평생을 쫓아다니면서 5분 간격으로 지울 순 없지 않느냐”고 답답해했다. 

“범죄영상을 삭제 하지만 원본 영상을 물리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하지 않으니까, 사후처리밖에 될 수 없습니다. 우린 피해자들에게 100% 삭제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처음부터 고지합니다. 다 지울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삭제를 멈출 수가 없는 거죠.”-리아 활동가

◇ 피해자 욕하는 세상

관련법의 미비함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디지털 성폭력에 대한 관련 개정안들이 국회에 제출되어 있지만, 언제 본회의에 통과되어 시행될지는 미지수다. 효린 활동가는 “성폭력 처벌법 안에 포함되지 않는 피해의 경우가 매우 많다”며 “민형사 고소도 피해 회복을 위한 하나의 시도일 뿐, 이를 통해 피해자의 안전이 완벽하게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효린 활동가는 한 피해 경험자의 사례를 들려줬다. 삭제 지원이 상당히 진행됐고, 가해자에 대한 처벌도 이뤄진 케이스였다. 한사성이 할 수 있는 물리적인 지원이 모두 투입되어 사후 관리만 남아있던, 가능한 조치가 모두 진행된 사례였다. 

“피해자는 저와 전화 통화를 할 때마다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그 눈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린 계속 이야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불법 촬영 영상이 삭제되고 가해자를 처벌해도 피해자가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는지, 행복해질 수 있는 건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효린 활동가 

불법 촬영 영상이 유포되어 피해를 입은 여성들은 잘못을 자신에게 돌릴 때가 많다. ‘그때 그 영상을 찍지 않았더라면’, ‘내가 그 영상을 보내지 않았다면’, ‘그 화장실을 이용하지 않았다면’ 등등. 한사성 활동가들이 피해자들에게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고 강조해 설명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에 대해 리아 활동가는 되레 피해자 여성을 비난하는 우리 사회의 비상식적인 분위기를 강하게 비판했다. 

“영상을 찍히고 유포되어 피해를 입은 여성들이 힐난당할 이유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인터넷 댓글을 보면 피해 여성들을 미워하는 감정들이 많이 느껴집니다. 가해자의 잘못일 뿐,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라는, 이 당연한 사실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피해자들이 한사성에서 상담을 받으면 잠깐 괜찮아졌다가 세상에 나가 잘못된 시선을 받으며 힘든 일을 많이 겪게 되고, 다시 피해를 처음 경험했던 이전의 상태로 돌아오는 상황을 막아야 합니다.” 


◇ 성폭력을 대하는 우리사회의 태도

박정현 활동가도 성폭력, 그중에서도 사이버 성폭력 범죄를 대하는 우리사회의 인식에 깊은 문제의식을 표했다. 그는 “성폭력 범죄를 강력 범죄로 대하지 않는 그릇된 인식이 팽배하다”고 우려했다. 

“살인 등의 범죄에 대해 대중은 피해자에게 감정이입을 하는 반면, 성범죄는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에게 감정이입을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피해 여성이) 너무 예민해서 가해자 인생 망쳤다고 말하는 반응이 대표적이죠.”-박정현 활동가

“사이버 성폭력 가해자들은 거대합니다. 피해자 한 명과 다수, 세상과의 싸움입니다. 불법 유포영상의 조회 수가 수백만, 수천만에 이르는 상황에서 피해자들이 자신을 탓하고 자기 안으로 숨거나 세상과 단절하길 선택합니다. 만약 아무도 이런 범죄영상을 보지 않는다면 이 문제의 규모가 단숨에 줄어들 수 있습니다.”-리아 활동가

“포르노 사이트는 처참한 폭력의 현장입니다. 여성을 향한 온갖 폭력의 실태를 날것으로 보여주는 현장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해당 사이트 유저들은 유희의 목적으로 사이트를 이용합니다.” -효린 활동가

◇ 생계와 피해자 지원이란 고민

한사성 활동가들의 매일은 생계와의 싸움이다. 삭제 지원 활동은 상당한 에너지를 소모시킨다. 리아 활동가는 “먹고 싶은 거라도 마음껏 먹고 싶은데, 사먹을 돈이 없다”고 말했다. 리아 활동가의 걱정은 생계의 어려움으로 더 이상 한사성 활동을 못하게 되는 상황이 오는 것이다. 그는 “최저시급을 월급으로 받고 싶다”고 했다.   

“망고가 먹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못 사니까 망고 생각을 하면서 잠들기도 해요. 과일을 사 먹는다거나 하는 보통 사람들이 하는 소비를 제 돈으로 못한 지 너무 오래됐어요. 마치 마른 우물의 밑바닥을 파서 물 한 방울로 목을 축이는 상태에요.”-리아 활동가

효린 활동가는 최근까지 당구장에서 알바를 했다. 한사성 퇴근 이후나 주말 시간을 할애해 알바를 한 이유는 하나다. 생계 때문이다. 한사성의 업무 강도가 높은 상황에서 그는 피해자의 절박한 연락을 뒤로하고 알바를 하러 가는 길이 “고통스럽다”고 했다. 

“피해자 지원은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때문에 지원 활동은 계속 누적될 수밖에 없죠.  한 번에 수십 명의 피해자를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적인 여유가 없습니다. 지금 당장 저는 월세를 마련해야만 합니다. 활동과 생활 중 택일해야 한다는 건 활동가로서 굉장한 고통입니다.”-효린 활동가 

박정현 활동가는 체력의 한계를 토로했다. 퇴근 후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다보면 새벽 1시를 넘기기가 일쑤. 이튿날 한사성 사무실에 출근하면 쌓인 피로가 밀려와 피해 지원 업무 능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는 “돈이 없어 대체 인력을 채용하거나 휴가를 갈 상황이 안 된다”고 했다. 

“삭제 지원은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상당히 지치는 일입니다. (새벽까지 알바를 하고) 사무실에 나와서 삭제 지원을 하자면, 너무 힘들고 집중이 안 되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삭제를 하지 않으면 피해자가 고통을 받잖아요. 빨리 삭제를 해야 하는데, 체력은 따라주질 않는 굴레가 반복되는 겁니다.”-박정현 활동가

효린 활동가는 “한사성 활동가들은 150%이상의 에너지를 소진해가면서 디지털 성폭력 문제에 맞서고 있다”며 “최소한 생계를 위협받지 않는 상황에서 활동을 지속해나가고 싶다”고 덧붙였다.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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