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자유특구법, 정말 대통령의 의지인가요?”

기사승인 2018-09-24 1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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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의료영리화를 촉발할 수 있다며 시민사회 및 노동계 단체들이 반대해온 ‘지역특화발전특구에 대한 규제특례법 전부 개정안’ 일명 ‘규제자유특구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를 두고 시민사회·노동단체는 물론 변호사단체 또한 ‘날치기’라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위원장 홍일표, 이하 산자위)는 이날 오전까지 중소벤처기업소위원회(이하 중기소위)에서 의견이 충돌했던 규제자유특구법을 소위 간사 합의하에 과거 박근혜 정권 당시 ‘최순실법’으로 통하는 ‘규제프리존법’과 병합해 오후 3시경 전체회의에 상정했다.

중기소위는 이 과정에서 “4차 산업혁명 경쟁시대를 선도하기 위해 다극화 지역발전전략을 통해 지역경제의 지속적인 발전과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며 “규제혁신을 통해 신산업을 육성·발전시키고 지역 및 국가의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세계 움직임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과감한 특례제도의 도입이 절실하다”며 이를 통과시켜달라고 호소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前 원내대표인 우원식 의원은 “법이 이렇게 통과되는 것에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규제프리존법에 대해 민주당과 정부가 그 법은 곤란하다는 측면이 있다”면서 지역공동화현상, 국민의 생명과 안전 등에 대한 필요한 규제 완화로 인한 부작용 등을 우려했다. 하지만 법은 전체회의 20여분 만에 통과됐다.

국회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당일 본회의에 법안을 상정하기 위해 법제사법위원회(위원장 여상규)는 오후 6시경 전해진 규제자유특구법을 소위원회 의결 없이 간사협의로 전체회의에 상정시켰다. 정족수조차 급하게 채운 상황에서 별다른 논의 없이 본회의로 넘겼다.

본회의에서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정의당 김종대 의원은 규제자유특례법을 두고 ‘위험한 개정안’이라고 평했다. 이어 “9월 국회에서 촛불과 서민은 존재하지 않는다. 민주당이 반대한 법안을 안전장치마저 해체해 통과시키려 한다”면서 국민 건강과 생명, 안전, 환경이라는 생존의 기본가치를 위협할 것이라며 제2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당초 19대 국회에서 법안 통과를 주도했던 한국당 소속 의원을 비롯해 민주당 최인호 의원 등도 보완토론에서 법의 필요성을 호소했다. 심지어 최 의원은 “규제프리존법에서 논란이 되는 안을 삭제한 것”이라며 “국민 생명, 안전, 환경 제외하고 조문을 보강했다. 다소 수용하기 어려운 점도 있었지만 대승적으로 수용했다”고 의원들의 법안 통과를 독려했다.

◇ 변호사들, 법 개정 절차 및 내용 “문제있다”… ‘경고’

더구나 일련의 법안처리 과정의 배경에 문재인 대통령이 있다는 발언들도 들려오고 있다.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야당 원내대표들과의 합의에 앞서 법안통과를 반대하는 당내 의원들과의 자리에서 공공연히 대통령의 의지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결과 산자위 중기소위에서 대안이 만들어지고, 전체회의와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는데 고작 4시간여가 걸렸을 뿐이다. 이를 두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개혁과제 실천과 감시TF는 21일 성명을 통해 국회의 규제자유특구법 졸속 의결에 깊은 유감을 표명했다.

TF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실체와 개념조차 불명료한 개념을 동원해 규제혁신이라는 미명하에 규제를 해체를 가져온 전형적 사례로 기록될 개연성이 크다”며 “규칙과 제도를 의미하는 규제는 사회적으로 합의된 규범과 가치의 표현임에도 ‘악마화’되거나 ‘조롱’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강조했다.

이어 “규제자유특례법 등은 산업혁신이라는 미명하에 거의 모든 기존 규제를 임시조치라는 이름으로 해제시킬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며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주요한 기본권과 가치를 반영한 규제들, 특히 국민의 건강과 안전, 환경, 국민의 알권리 보장 등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규제들이 개발과 이윤의 논리로 무력화돼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여기에 “구체적인 긍정적 효과나 결과는 상상하기 어려운 반면 부정적 결과가 초래될 가능성은 쉽게 예견된다. 개인의 정보인권을 침해할 가능성 또한 적지 않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 환경을 지킬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도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고 꼬집었다.

법이 국회에서 통과된 대로 시행될 경우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라돈침대 사건 등을 예방하기는커녕 발생한 후에도 각종 면책권을 부여하거나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방안을 국회가 만들어주는 꼴이기에 금번 국회 본회의에서의 동의는 문제를 확대·확신시킬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무분별한 묻지마 규제완화가 아닌 진정 국민을 위한 규제혁신을 촉구했다.

◇ 시민사회 및 노동계, “독소조항 아직 남았다”… ‘우려’

반면, 의료계는 의료계가 우려하는 독소조항이 모두 제거됐다며 환영의 뜻을 전했다. 대한의사협회는 21일 성명을 통해 “규제특례법은 규제프리존법이 내포하고 있던 의료영리화와 비의료인의 의료기기 허용 문제 등으로 의료의 상업화를 초래하는 문제점이 지적돼왔다”며 “국민건강을 위해 보건의료분야를 제외하고 통과한 국회의 결정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의료는 이익창출의 수단이 아닌 국민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수단으로 남아야하며 상업화 혹은 영리화로부터 수호해야할 가치로 통과된 법안이 일련의 우려를 내포한 독소조항을 모두 삭제해 불식시켰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시민사회와 노동계는 달리 판단했다. 개별항목으로 있던 의료영리화, 비의료인의 의료기기 사용, 원격의료 등에 대한 문구는 사라졌지만, 사실상 규제가 모두 제거돼 기업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는 특구가 지정될 우려가 여전해 영리목적의 의료법인이 설립되는 등의 영리화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특히 이들이 문제 삼는 조항은 규제자유특구법 41조와 42조로 한약도매상이 약사나 한약사, 한약업사 또는 한약관련학과 졸업자를 고용할 수 있도록 해 사실상 약국을 차릴 수 있도록 했으며, 의료법에서 제한하고 있는 의료관련 특화사업을 하는 의료법인의 부대사업을 확대 허용하고 있다.

게다가 의료 등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분야가 전략산업이라는 탈을 쓰고 생명을 지키기 위한 각종 규제로부터 풀려날 경우 이를 제제할 수단이나 방법을 제대로 담고 있지 않은데다 사후 규제적 성격이 커 국민들이 생명을 잃고서야 제한하는 ‘사후약방문’을 조장할 우려가 크다고 봤다.

“규제자유특구법, 정말 대통령의 의지인가요?”

이와 관련 참여연대는 “규제특례법은 새롭게 도입된 규제자유특구 안에서는 기존 법의 개정 없이 규제특혜를 허용하는 것”이라며 “사실상 대기업과 지자체의 유착과 시장독점을 가능하게 하고, 법의 내용을 회피하는 특혜를 주거나 특허와 같은 효과를 갖게 하는 위헌의 소지마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민주당은 규제프리존법의 독소조항을 모두 제거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규제의 범위조차 특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 위험으르 제거했다는 것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여전히 시민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하고 환경을 파괴하는 무분별한 규제완화가 이뤄질 위험을 배제할 수 없다”고 국회의 날치기 통과를 규탄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하 보건의료노조)도 성명을 통해 그간 시민사회와 노동계가 강력히 반대해 온 독소조항에 대한 충분한 검토없이 ‘규제자유특구법’을 10여분 만에 확정하고 졸속으로 통과시킨 것은 스스로 ‘촛불정부’라고 자임한 문재인 정부와 집권여당이 책무와 역할을 포기한 것이라고 평했다.

무상의료운동본부는 “문재인 대통령이 주도적으로 규제프리 지역특화특구법을 통과시킴으로써 박근혜 정권 계승자가 됐다. 더불어민주당은 적폐세력과 규합해 정체를 드러냈다”면서 “평화분위기를 날치기에 이용하고, 모두가 단 꿈을 꾸게 하고 뒤통수를 내리쳤다. 정말이지 치졸한 작태”라고 강하게 비난하기도 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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