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돌이 왜 그 꼴인지 궁금하다면… '월간 아이돌' 악덕사장 체험기

내 아이돌이 왜 그 꼴인지 궁금하다면… '월간 아이돌' 악덕사장 체험기

기사승인 2018-10-15 00:00:00
- + 인쇄

장안의 화제라는 게임 ‘월간 아이돌’을 플레이하기 시작했다. 그 사실을 후배들에게 말하자, 가장 먼저 돌아온 질문은 정산이었다. 세상 어딜 가도 돈 얘기가 가장 궁금하다더니 게임도 그랬나 보다. “콘서트 정산비율 얼마로 하셨어요?” “나? 5:5.” 지극히 상식적인 비율이라고 생각했는데, 후배들의 탄식이 떨어졌다. 

“너희들은 얼만데?” “저는 1:9요.” “저는 2:8….” 성실한 줄만 알았던 우리 팀 후배들이 이렇게까지 악덕 업주였다니. 당황하지 않고 후배들에게 게임을 플레이하며 궁금했던 점을 질문했다. 남들 다 일어난다는 돌발 이벤트가 통 일어나지 않는다고. 그러자 게임 플레이를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이 돌아왔다. 자랑스럽게 나의 멋진 사장님 일기를 늘어놨다. 힘들면 체력 꼬박꼬박 회복시켜주고, 2년차인데 앨범도 벌써 열 장이나 내 주었다고. 

하지만 이 말을 들은 주변의 ‘고인물’(‘고인 물은 썩는다’는 속담에서 파생된 게임 용어. 오래된 유저들을 일컫는 말)들은 다시 한 번 장탄식했다. “돈 잘 주고 체력 관리 잘 해 주니까 그렇죠. 애들은 탈주도 좀 하고 문제도 일으키며 사는 거예요.” 그러니까, 일부러 극한 상황으로 몰아가 문제를 만든다는 이야기다. 돈도 안 주고 링거 맞아가며 일하게 하고. 그래야 재미있단다. 게임 ‘월간 아이돌’은, 그렇게 멀쩡한 사람도 악덕 사장으로 만든다. 심지어 현업 아이돌 멤버까지도.

#. 선생님, 그건 선생님이 하실 말씀이 아니잖아요

며칠 전 후배가 팀 단체 메신저에서 “퇴근하고 심심하면 모두들 해 보라”고 ‘월간 아이돌’을 권했다. 퇴근하면 집에서 몸져 눕기도 바쁜 처지에 무슨 게임인가. 그러나 우연히 인터넷에서 본 그룹 비투비 멤버 정일훈의 한마디가 게임을 다운로드하게 만들었다. “연애하는 거 좋아. 누가 하지 말랬니? 들키지 말고 하라는 소리야.” 귀를 의심했다. 전국의 팬들이 하던 소리를 현직 아이돌의 입에서 들을 줄이야. 결국 호기심에 게임을 다운로드했다. 

기획사 대표의 마음을 십분 이해하게 된다는 인기 게임, ‘월간 아이돌’. 모바일 게임을 즐기지 않기에 처음에는 인터페이스를 익히기도 쉽지 않았다. 픽셀 도트 그래픽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3D도 지겨워 VR로 게임하는 시대에 웬 도트. 

그러나 나의 시선을 붙잡은 것은 튜토리얼을 끝내고 주어진 연습생들의 이름이었다. 다카키 마사오와 박근애, 그리고 채태민. 겪어본 적도 없는 유신시대가 21세기에 하필 나의 휴대전화 속에서 펼쳐질 위기였다. 빠르게 연습생들을 퇴출하고 새 연습생을 모집했다. F급 연습생들만 다섯 명. 하지만 새 연습생을 모집하기에는 시간도 돈도 없었다. 광고를 볼 때마다 연습생 한 명씩을 지급한다는 메시지가 들어왔지만, 몸져눕기에도 바쁜 처지에 30초씩 휴대전화를 붙들고 ‘멍’ 때리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F급 연습생들 중 고르고 골라 세 명으로 그룹을 결성했다. 

#. 사장님들, 오해해서 미안합니다.

그룹을 결성하고 보니, 가요 기자로 일하던 시절, ‘알못’인 눈에도 “기획사 사장이 돈이 많나봐?” 소리를 하게 만들었던 수많은 그룹이 떠올랐다. 그 그룹이 바로 내 휴대전화 속에 있었다. 미안합니다, 그동안 스쳐 지나간 수많은 사장님들…. 돈이 많기는커녕 시간도 돈도 없었던 당신들에 대해 부자라고만 오해했습니다. 

첫 앨범은 당연히 수익이 좋지 않았다. 사전 예약을 돌린 보람도 없었다. 띄엄띄엄 올라가는 금액을 보니, 안 팔리는 앨범을 10분씩이나 팔고 있어야 할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앨범 ‘사재기’라도 해 볼까 했는데 공정거래위원회를 의식해서 만든 게임인 걸까. 그런 편법은 쓸 수 없었다. 현실 그대로의 리얼한 게임이라더니, 음원 사재기는 왜 안 되는지 짜증이 나기까지 했다. 아이돌을 데뷔시키자마자 편법부터 쓰고 싶어지게 만들다니. 뭐하는 게임인가.

어쨌든 확실한 건, 돈이 없었다. 돈을 벌려면 안 팔리는 그룹이라도 행사에 돌려야 돈이 나온다. 그룹의 첫 행사비는 300만원. 그나마도 실패해서 수당이 50%깎였다. 화가 났다. “인간적으로 일을 시켰으면 성과에 상관없이 돈은 줘야 되는 거 아니냐?” 라는 소리가 나왔다. 그리고 이 말을 내뱉은 사람은 1시간도 안 돼서 곧 자신이 했던 말을 까먹게 된다. 


결국 게임에 시간을 투자해 보기로 했다. ‘월간 아이돌’은 30초짜리 광고를 보면 연습생 한 명을 랜덤으로 지급한다. 60번쯤 광고를 보고 F급 연습생만 지겹게 만나던 중, 그러니까 이게 무슨 짓인가 싶은 생각이 열 번쯤 들었을 때였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태국에서 온 18세의 SS급 연습생이 우리 회사에 들어온 것이다. 기쁨보다 당황이 앞섰다. 왜 이런 애가 우리 회사에…아니 이런 분이….

태국인이라는 설정까지 묘하게 현실감이 넘쳤다. 한국 물정을 잘 모르니 이런 회사에 데뷔하겠다고 온 것이 아닐까.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얼마나 급이 대단하신지, SNS 채널만 네 개를 가지고 있었다. 아무튼 빠르게 그를 기존 그룹에 투입했다. 이럴 수가. 당장 출연할 수 있는 행사의 급이 올라갔다. 그는 SS급 연습생인 만큼 팬도 어마무지하게 많았다. 그를 투입한 앨범은 당연히 대박을 쳤다.


#. 돈 버는 게 세상에서 제일 쉬웠어요

그 기세를 타고 콘서트를 개최했다. 잠실 주경기장? ‘껌’이었다. 해외 투어를 시작했다. F급 연습생들만 모여 있던 때와는 달리 콘서트를 개최하는 족족 매진됐다. 예전에는 열심히 하던 트레이닝에도, 스타일에도 투자하지 않았다. 그저 무대 위에 세우면 알아서 돈이 벌렸다. 팬들은 티켓값이 비싸도 매번 콘서트에 왔다. 앨범 한 장을 내면 콘서트를 세 번은 열었다.

잔고가 8조원쯤 쌓이자 그제야 ‘악덕 사장’의 심정을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흔히 팬들이 기획사 사장을 욕하며 주워섬기던 ‘X소기업 마인드’가 내게 탑재됐다. ‘스타일이 구리다, 노래에 돈 안 들였냐고 암만 욕해봐야 너희들은 내겐 그저 티켓 한 장일 뿐이지.’ 게임을 플레이해본 한 유저가 남긴 명언이다. 스케줄을 돌고, 콘서트를 할 때마다 밑에 뜨는 팬들의 멘트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쌓여가는 잔고만이 흡족함을 남겼다. 

그러나 진정한 악덕 사장의 마인드를 탑재하기에는 아직 일렀던 듯하다. 아이돌에게 40%를 정산해주면서도 ‘이래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어, 정산도 5:5로 해 주고 열정도 꼬박꼬박 회복시켜줬다. 체력도 매 턴마다 회복시켰다. 별다른 이벤트 없이 무사히 재계약을 앞뒀다. 이상했다. 왜 나만 이벤트가 없지. 

사건은 언제나 상황이 막장일 때 일어난다. 후배들의 충고에 힘입어 눈을 딱 감고 비율을 0:10으로 조정했다. -1:11도 있었지만, 아무리 상대가 0과 1로 이루어진 데이터라 할지라도 사람으로서 할 짓이 아니다 싶었다. 다만 -1:11로 플레이해본 자의 귀띔에 의하면, 팬이 10%쯤 떨어져나가는 부가 효과가 있다고 한다.


#. 아, 사장님들이여. 여기 또 하나의 악덕 업주가 탄생했습니다.

효과는 극명했다. 당장 아이돌 그룹 멤버들이 탈퇴를 원했다. 스캔들도 일으켰다. 연애도 한댄다. 그렇지. 인생이 고달프니 사랑에 매달리고 싶겠지. 내 아이돌 그룹 멤버가 연애를 한다는 기사가 났다. ‘5억 주고 기사를 막으시겠습니까?’ 메시지 창 앞에서 갈등했다. 나의 잔고는 8조 원. 5억 따위는 먼지와도 같다. 근데 희한하게…아깝다. 그 순간 또다른 유저의 멘트가 생각났다. ‘니 인생 망하지 내 인생 망하냐. 안 막아. 해외투어 뺑뺑이나 가라.’ 새로운 악덕의 세계가 눈앞이었다. 

기사를 막지 않자 팬들이 떨어져나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콘서트는 꽉꽉 찼다. 너무 큰 경기장에서 하는 것보다, 그룹의 규모에 약간 못 미치는 작은 경기장에서 티켓값을 한도까지 높이고 공연을 치루는 게 돈은 더 잘 모였다. ‘이 그룹이 대체 왜 이렇게 작은 곳에서 콘서트를 하지?’ 하고 생각했던 취재 경험이 떠올랐다. 아, 사장님들이여.


잔고가 10조원이 됐다. 그제야 ‘고인물’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밴도 최고로 업그레이드했고 연습실도 최고로 업그레이드해도 돈이 남았다. 할 게 더 이상 없었다. 그런데 아이돌한테는 절대로 돈을 쓰지 않았다. 태국에서 와 물정을 모르고 우리 회사에 들어온 아이돌 멤버는 링거를 맞으며 무대에 섰다. 열정만 있으면 괜찮아. 체력은 놔두고 비싼 알약을 사 먹였다. 착한 태국인 멤버는 너덜너덜한 몸을 이끌고 스케줄을 돌고 공연을 했다. 연애부터 질병, 탈퇴, 온갖 이벤트가 일어나는 와중 꿋꿋이 1:9의 정산비율을 유지했다. 바야흐로 진정한 악덕 업주로 거듭난 것이다.

#. 게임은 게임일 뿐, 오해하지 말자

그렇다면 실제로 현업과는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 이미 수많은 아이돌 그룹 멤버들이 ‘월간 아이돌’을 플레이하고 있기에 체감 차이가 궁금했다. 한 대형 가요 기획사 관계자와 이야기 중에 ‘월간 아이돌’ 이야기를 꺼냈다. “그 게임이요? 저도 플레이하는데, 현실하고 다른 거 없던데?” 웃음이 터졌다. 그나마 기사는 돈 줘도 못 내린다는 이야기가 오갔다. 자리에 함께한 다른 가요 기자는 “5억원이 아니라 5만원도 받아본 적 없다”고 성토했다. 어쨌든 그것 빼곤 다 현실과 다른 점이 없는 걸까.

이 기사의 시발점이 된 비투비 정일훈에게 직접 물었다. 정일훈은 “게임 속 생리와 현실은 많이 비슷하지만, 사실 현직 아이돌로서 체감하는 현실은 게임과는 아무래도 큰 차이가 있다”고 진지한 답변을 내놨다. “예를 들면 실제 가수가 되어 활동할 때, 단지 돈 문제만으로 열정이 식거나 하는 일은 드물다고 생각한다”는 정일훈은 “하지만 현실에서도 돈 문제는 중요하니만큼, 돈을 위주로 돌아가는 게임 속 메커니즘이 실제와 좀 닮은 부분이 아닐까 싶었다”고 말했다. 게임은 게임일 뿐이며, 0과 1로 이루어진 데이터가 비슷한 시스템을 구현할 수는 있지만 실제 사람 사는 일과 비교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내 아이돌이 왜 그 꼴인지 궁금하다면… '월간 아이돌' 악덕사장 체험기

‘월간 아이돌’은 사실 여태껏 마켓에 나왔던 여타 육성 게임과 크게 다른 점은 없다. 공주를 키우는 게임부터 시작해 붕어빵을 굽고, 롤러코스터를 세우거나 하는 게임들과 주체만 다를 뿐 무언가를 키우고 성장시켜 좋은 결과를 낸다는 메커니즘은 같다. 

다만 그 주체가 아이돌이라는 점이 다른 게임과의 차별화라면 차별화일 수 있겠다. 흔히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과 ‘같이 성장한다’거나, ‘잘 자랐다’는 표현을 쓰곤 한다. 자신들이 시간과 돈을 투자해 그들을 사랑하는 만큼, 아이돌이 인기가 많아지고 좋은 결과를 내는 것에 대해 성장의 키워드를 쓰는 것과 일맥상통한 것이다. 다만 게임에서는 사장님의 입장이 되다 보니, 본의 아니게 악덕 사장의 길을 걷게 된다는 것이 웃기고도 슬픈 점이다. 

‘월간 아이돌’을 개발한 608Factory측은 조만간 숙소 등의 대규모 업데이트를 예고했다. 돈을 쌓아두고 사는 ‘고인물’ 악덕 사장들의 돈 쓸 곳을 마련해주기 위해서다. 아직 늦지 않았다. 모두 악덕 사장이 되어 내 아이돌 그룹의 스케줄이 왜 그 모양 그 꼴인지 알아보도록 하자.

이은지 기자 onbge@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