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그린벨트, 공존 위한 최후의 선

기사승인 2018-10-18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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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그린벨트, 공존 위한 최후의 선

‘함께’라는 가치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배려다. 그리고 이 배려는 상당부분 공간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혼자가 아닌 함께인 만큼 서로의 공간을 지켜주며 살자는 것. 이는 비단 사람과 사람 사이 공간에만 해당하는 얘기가 아닐 것이다. 인간과 자연, 그 사이 공간도 우리는 배려해야만 한다.

그린벨트 해제를 두고 국토교통부와 서울시는 타협점을 찾지 못한 채 여전히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국토부 측은 서울과 일부 수도권 지역의 주택시장 과열 현상을 막기 위해 그린벨트를 해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서울시내 그린벨트를 해제해 주택공급을 하게 되면 수요가 분산돼 집값이 안정화를 이룰 거란 주장이다. 

국토부는 그린벨트 중 보존가치가 낮은 3등급 이하 부지를 활용하면 된다고 말한다. 그린벨트 평가등급은 1~5등급으로 나뉜다. 이 가운데 환경적 가치가 낮은 3~5등급지를 해제하면 된다는 설명이다. 현재 서울에 3등급 이하 그린벨트 면적은 29.0㎢다.

언뜻 보면 3등급 이하 부지를 주택공급에 활용해도 환경적으로 크게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기서 하나의 생물군집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특성을 놓치고 있다.

영국 생물학자 조너선밸컴의 책 ‘물고기는 알고있다’에 따르면, 생물학적으로 인간에 의해 붕괴된 문화는 복구될 수 없다. 문화란 유전자에 코딩되는 게 아니어서, 일단 상실되고 나면 문화정보를 다시 획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문화가 한번 붕괴된 생물군집은 이미 이전의 집단기억을 상실한 상태라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렵다. 

17일 서울시는 이번 3등급 그린벨트 부지가 비오톱 기준에 걸려 해제는 절대 불가하다는 입장을 다시 한 번 발표했다. 비오톱은 특정 생물군집이 생존할 수 있는 환경 조건을 갖춘 지역으로 2010년부터 지정해오고 있다. 

서울시는 3등급 이하 그린벨트에도 비오톱 1·2등급지가 다수 분포해 있으며, 생물학적으로 3등급 이하 부지가 1·2등급지를 보호하는 완충지 역할을 하기 때문에 해제 시 다양한 부작용을 야기할 것으로 우려했다.

먼 미래를 보고 추진되어 온 그린벨트를 집값 억제와 같은 단기목적 때문에 해제한다는 것은 너무 근시안적인 정책이 아닐 수 없다. 박원순 서울시장 말대로 그린벨트 해제는 최후의 보루다. 한번 훼손된 그린벨트를 다시 조성하기 위해선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는 그린벨트 해제 카드를 꺼내기 이전에, 수도권 외곽지역과 서울을 잇는 교통 인프라를 확충하는 쪽으로 사업 방향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서울에 수요가 몰리는 이유는 서울에 직장뿐만 아니라 모든 생활 인프라가 밀집해 있기 때문이다. 서울로의 접근성을 키워 신도시 등 수도권 외곽지역으로 서울 거주 수요를 분산시킬 수 있다면, 서울 집값은 적어도 지금보다는 안정화에 이를 것이다. 

최근 한 방송에서 인간과 동물이 공존하는 따뜻한 모습을 봤다. 졸망박쥐는 사람이 사는 집 지붕 틈에서 생활하며 밤마다 외출 후에 다시 돌아오곤 했다. 야생너구리 식구는 이름과는 다르게 공원에 출몰해 사람들에게 재롱을 부리며 먹을 것을 요구했다. 

서울은 인간만 사는 공간이 아니다. 인간의 무수한 개발로 동식물들이 설자리를 잃었지만, 그만큼 다시 그들에게 돌려줄 책임도 인간에게는 분명 있을 것이다. 함께의 공간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 때, 보다 멋진 개발을 이뤄낼 수 있지 않을까.

안세진 기자 asj0525@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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