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러남에도 타이밍이 있다

입력 2018-11-05 10:5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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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10여 년 전, 그러니까 MB 정권 때의 일로 기억된다. 그때 청와대 한 비서관이 불미스런 일로 구설수에 오르자 할 말은 많지만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더 이상 부담이 되지 않기 위해 눈물을 애써 참으며 자리를 물러난다면서 사퇴했다.

누군들 마찬가지겠지만 그도 그때 물러나면서 숱한 고심을 했을 게다. ‘할 말은 많지만’ ‘눈물을 애써 참으며등 표현에서 그런 흔적이 역력하다. 얼마나 좋은 자리이며 얼마나 어렵게 따낸 자리인데 하는 생각에 밤잠을 설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부담되기 싫다는 명분을 내세워 기꺼이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뜬금없이 까마득한 과거사를 꺼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요즘 경기도 고양시에서 한 고위 공무원의 자격과 자질 논란이 뜨거운 이슈로 대두돼 있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문득 그 일이 떠올라서다. 임명 때부터 나돈 그를 둘러싼 구설이 2개월여가 지나도록 잦아들기는커녕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이다.

홍중희 대외협력보좌관의 이야기다. 고양시 최초의 전문임기제 공무원인 그는 3급 상당으로서 시장을 제외하고는 최고위직이다. 직책 이름에서 나타나듯 여론수렴, 갈등조정, 홍보, 정책추진 등 대외업무를 총괄하면서 시장을 보좌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인물이다.

홍 보좌관은 임용 초기부터 지금까지 의혹의 대상이다. 공모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지만 채용 과정이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다만 서류심사와 적격여부 심사, 면접 등 형식적 절차를 거쳐 이재준 시장이 발탁했다는 것만 알려졌다. 그래서 홍중희가 누구야?’라는 말이 공무원들 사이에서도 끊임없이 나돌았다. 그런 중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계속 그의 경력과 능력을 문제 삼아 사퇴를 종용했다.

결국 지난달 고양시의회 행정사무감사 때 문제가 생겼다. 시의회 행정기획위원회의 인적담담관실 감사 때 홍 보좌관의 자격 문제를 따지는 과정에서 그와 관련한 자료제출 건으로 감사원 감사청구까지 결의하기에 이르렀다.

나중에 이 건은 시의회 본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반대로 부결됐지만 파장은 되레 더 커졌다. 자유한국당과 정의당이 민주당의 다수결 횡포라고 반발하면서 시의회 내분으로까지 번졌다(쿠키뉴스 고양시 대외협력보좌관 자격논란, 시의회 정파갈등으로 번져 보도). 거기다 그의 부적절한 언행과 관련한 자질 문제도 구설에 올랐다.

이상으로 홍 보좌관과 관련한 논란의 스토리를 대충 훑어봤다. 한 임명직 공무원 채용으로 인해 고양시 전체가 혼란스러운 상황을 충분히 알 수 있다.

물러남에도 타이밍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상황이 쉽게 해소되지 않을 거란 점이다. 시의회 한국당과 정의당은 채용비리로까지 규정하며 계속 문제시할 것을 천명했다. 이 논란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도 점점 커지고 있다.

따라서 되도록 빨리 문제의 해법을 찾아야 할 듯하다. 크게 중요치도 않은 문제로 고양시를 계속 혼란 상태로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리고 해법도 의외로 간단해 보인다. 바로 서두에서 밝힌 MB 정권 때 청와대 비서관이 모델이다. 홍 보좌관의 사퇴가 최선의 해법이라는 말이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일 게다. 생업이나 수입을 넘어서 위신이나 명예와도 연결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소간 억울함도 없지 않을 게다. 그래서 그의 진퇴 문제를 거론하는 게 참으로 조심스럽다. 하지만 대승적 차원에서 감히 그의 결단을 기대하며 부탁한다.

임명권자 입장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모르긴 해도 이 시장도 지금 홍 보좌관 논란으로 적지 않은 고심을 하고 있을 게다. 산더미 같이 쌓인 현안을 앞두고 불필요한 에너지를 쓰고 있을지 모른다. 실제로 임명권자에게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명분으로 사퇴하는 사례는 수없이 많다.

이 대목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게 있다. 이 시장의 인사 스타일이다. 이번 홍 보좌관 자격·자질 논란의 근원적 제공자는 바로 이 시장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어질 여러 임명직 채용에서 또 다시 말썽이 나올지 모른다는 우려도 있다.

실제로 시중에는 이 시장 주위에 문고리가 있다는 둥, 충청도 출신이 득세한다는 둥 여러 소문이 나돌고 있다. 심지어 새로 만들어지는 어떤 자리에 누가 내정돼 있다는 말도 들린다. 물론 낭설이라고 믿고 싶고, 낭설이어야 한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부디 연줄을 통한 인사가 없기를 바란다. 인사의 공정성과 합리성에 최선을 다해 줄 것을 부탁하고 싶다. 수많은 눈이 지켜보고 있다는 걸 늘 인식하기를 바란다. 식상할지 모르지만 인사가 만사라는 말은 불변의 진리다.

다시 본래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면, 지금이 홍 보좌관으로선 사퇴의 적기다. 매사가 그렇지만 물러남에도 타이밍이 있다. 본인으로선 받아들이기 어렵겠지만 타이밍을 놓치면 더욱 일을 키우기 십상이다.

대다수 고양시 공무원들은 물론 다수의 시의회 민주당 의원들까지도 그렇게 인식하고 있다. 지난번 홍 보좌관의 자격과 관련한 본회의 감사원 감사청구 건 표결을 앞두고 열린 민주당 회의에서도 1110으로 반대 당론이 정해졌다. 표결에서 기획행정위 위원장이 기권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일도 벌어졌다.

주역(周易)에서 적기에 물러나는 것을 호둔(好遯)’이라고 했다. 군자는 호둔하기에 명예롭고 아름답지만 소인은 그렇지 못해 추하게 된다고 했다. 하지만 집착과 욕심을 내려놓고 제때 물러나는 게 참으로 어려운 모양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례가 좋은 교훈이다. 다시금 홍 보좌관의 결단을 기대하며 부탁한다.

이형기 시인의 시 낙화의 한 구절을 인용한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정수익 기자 sagu@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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