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화의 영문학 기행] 서른 번째 이야기

기사승인 2018-11-09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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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브릿지를 지나면 남쪽 강변으로 사우스워크 성당의 지붕이 보이고, 이어서 픽포드 부두(Pickfords Wharf)라는 이름의 건물이 나타난다. 픽포드 부두 건물과 그 왼쪽의 건물 사이에 황금색 갤리온선이 숨어있다. 16세기에 세계일주에 성공한 최초의 영국인 프랜시스 드레이크(Sir Frances Drake)경의 배, 골든 힌드(The Golden Hind)이다. 

이 배의 원래 이름은 펠리컨이었다. 항해를 지원해준 크리스토퍼 해튼경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가졌던 드레이크경이 1578년 항해 도중 해튼경의 관모를 장식한 황금색 힌드(암컷 붉은 사슴)를 기억해내고 이름을 바꾼 것이다. 마스트가 3개에 배수량이 100톤인 골든 힌드는 1577년 다른 4척의 갤리온선과 선단을 이뤄 보물을 찾아 플리머스항을 떠나 남대서양을 거쳐 태평양으로 진입했다.

선단은 1579년 3월 1일 에콰도르 연안에서 조우한 120톤의 스페인 갤리온선, 누에스트라 세뇨라 데 라 콘셉시온(Nuestra Señora de la Concepción, 순결한 성모님)을 교전 끝에 나포했다. 이 배에 실려 있던 6톤의 보물과 26톤의 은, 0.5톤의 금을 비롯해 도자기, 주화 등을 옮겨 싣는데만 6일이 걸렸다. 

이 배에서 약탈한 재화가 36만 페소였다는데, 2017년 기준으로 4억8000만 파운드 한화로 약 6742억여 원에 달한다. 드레이크경의 항해를 일부 지원한 엘리자베스1세 여왕에게 돌아간 지분은 1만6000파운드였으며, 전체 이익금 가운데 절반은 여왕과 나라에 귀속됐다. 당시 이 배의 투자 수익금은 1파운드 당 47파운드였다. 

골든 힌드를 복사한 갤리온선은 런던의 템즈강을 비롯해, 에섹스의 어드벤처섬의 모험공원에 있는 피터 팬 놀이터, 데본(Devon)의 브릭스햄(Brixham) 항구 등에 전시돼있다. 이 배는 해리포터의 런던 도보 투어 일정에도 포함된다. 하지만 이 배가 해리포터 시리즈에 등장한 바는 없다.

사우스워크 브릿지를 지나면 역시 템즈강 남쪽 강변에 빅토리아양식의 하얀색 벽을 가진 건물이 나타난다. 셰익스피어 글로브(Shakespeare's Globe)이다. 이 건물은 1970년 미국의 배우이자 감독인 샘 워너메이커(Sam Wanamaker)가 설립한 셰익스피어 글로브 트러스트 (Shakespeare Globe Trust)와 국제 셰익스피어 글로브 센터 (Shakespeare Globe Centre)가 주도해 세운 건물로 셰익스피어가 활동했던 글로브 극장(Globe Theatre)을 재현한 것이다. 

원래 글로브 극장은 1599년에 지어졌으나 1613년 화재로 소실됐다가 1614년에 재건됐고, 1644년에 철거됐다. 지금의 셰익스피어 글로브보다 230m 위쪽에 있었다. 당시 템즈강은 지금보다 넓었고 글로브 극장은 강둑에 있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비어있던 강변부지에 건물들이 들어섰기 때문에, 글로브 극장의 분위기를 살릴 수 있도록 강변으로 옮겨 지은 것이다. 

새롭게 지어진 건물은 1599년과 1614년의 건물에 대한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설계됐다. 다만 현대의 안전요구를 고려해 3000석으로 운영되던 본래 극장과 달리 1400석으로 운영한다. 건물은 강철을 사용하지 않고 영국산 참나무로만 지었기 때문에 16세기의 목재골조 건물이라고 할 수 있다. 

1666년 런던 대화재 이후 런던 시내에서 허용되지 않던 초가지붕을 올린 유일한 건물이기도 하다. 대신 난연제를 사용했고, 지붕에 스프링클러가 장착돼있다. 바닥에 콘크리트를 타설한 것이 원래 극장이 흙바닥이었던 것과의 차이라면 차이다.

1997년 개관 당시 ‘헨리5세’를 무대에 올렸고, 매년 여름 새로운 작품의 공연이 시작된다. 2015년까지는 글로브극장의 분위기를 재현하기 위해 조명 없이 낮에 공연하거나, 저녁에 공연하는 경우에는 실내 투광조명을 사용했다. 마이크나 스피커와 같은 증폭 장치도 없다. 모든 음악은 악기를 연주한 생음악이었다. 

하지만 2016년 엠마 라이스(Emma Rice)가 예술감독으로 부임하며 조명과 사운드 장비를 실험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현재 이곳에서 공연된 작품은 종종 영화관에서 상영되거나 DVD로도 출시된다. 2015년부터는 랩톱과 모바일에서도 볼 수 있는 서비스가 시작됐다.

이어 나타나는 다리는 밀레니엄 브릿지다. 밀레니엄 브릿지 남쪽 끝에는 네모난 굴뚝이 있는 붉은색 건물이 있다. 테이트 모던(Tate Modern)이다. 웨스터민스터의 밀뱅크(Millbank)에 있는 테이트 브리튼(Tate Britain), 리버풀에 있는 테이트 리버풀(Tate Liverpool), 콘월에 있는 테이트 세인트 아이브스(Tate St Ives) 그리고 테이트 온라인(Tate Online) 등과 함께 영국의 국제 현대미술을 주도하는 테이트 그룹의 하나다. 현대미술과 컨템포러리 미술 부문에서는 세계적으로 가장 큰 박물관이다. 

테이트 모던은 폐업한 뱅크사이드 발전소의 건물을 재개발해 박물관으로 활용한 사례다. 뱅크사이드 발전소는 1891년부터 석탄을 주 연료로 하여 발전을 시작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8년 4월 1일, 영국정부가 전기산업을 국유화하면서 석유를 주 연료로 하는 발전시설을 설치했다. 

1973~74년간에는 연간 662.6GWh를 발전해 정점을 찍었다. 하지만 대기오염과 템즈강 오염이 문제됐고, 국제 유가의 상승세로 인해 발전량을 줄이다가 1981년 발전을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재개발 이전의 발전소 건물은 길이 200m의 강철 프레임 구조에 벽돌을 쌓아 만든 건물이었고, 중앙에 99m 높이의 굴뚝이 있었다. 

폐쇄 후 철거하기로 했지만, 역시 보존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고, 재활용을 검토한 끝에 1994년 테이트 갤러리의 제안이 받아들여졌다. 피에르 드 뮤론(Pierre de Meuron)이 설계를 맡아 1995년 시작한 재개발은 2000년에 완공돼 개장하게 됐다. 

테이트 모던으로 가는 밀레니엄 브릿지는 공식적으로 런던 밀레니엄 풋브리지 (Millennium Footbridge)이다. 뱅크사이드와 시티 오브 런던을 연결하는 보행자용 현수교로 1998년에 건설을 시작해 2000년 완공했다. 2개의 교각을 가지고 있으며 8개의 서스펜션 케이블이 교각에 미치는 장력은 무려 2000톤이나 된다. 

알루미늄 갑판 너비가 4m이고, 총 길이 325m인 밀레니엄교에는 한 번에 5000명이 올라설 수 있도록 설계됐다. 하지만 2000년 6월 10일 개통했을 때 다리가 흔들리는 현상 때문에 이틀 만에 폐쇄됐다. 다리의 움직임은 동기식 측면 여기 (synchronous lateral excitation)로 알려진 ‘포지티브 피드백 (positive feedback)’현상으로 인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문제는 수평운동을 제어하는 37개의 유체 점성 댐퍼(에너지 소산)와 수직운동을 제어하는 52개의 조정 질량 댐퍼(관성)를 개조해 해결됐다. 밀레니엄 브릿지는 ‘해리 포터 (Harry Potter)와 혼혈 왕자 (Half-blood Prince)’에서 죽음을 먹는 자들의 공격이 있을 때 다리가 무너지는 장면에 등장한다.

유람선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밀레니엄브릿지의 북쪽으로 조금 더 가면 세인트 폴 대성당이 있다. 시티 오브 런던의 러드게이트 힐에 있는 세인트 폴 대성당은 바티칸에 있는 성 베드로성당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성당이다.

영국 베네딕토 수도회의 수도사로 ‘영국 사람들의 교회사’를 지어 ‘영국 역사의 아버지’라고도 하는 베데(Bede)가 남긴 기록에 의하면, 604년에 동색슨왕국의 새베르트(Sæberht)왕과 그의 삼촌인 켄트왕국의 애텔베르트(Æthelberht)왕이 런던에 성 바오로에게 헌정하는 교회를 지었다고 했다.

성당을 지은 장소는 이전에 다이애나 신전이 있던 곳이라고도 한다. 성당은 각각 962년, 1087년, 1136년에 발생한 화재로 전소됐다가 복구되기를 반복했다. 결국 한 세기가 지난 1666년에 일어난 런던 대화재 당시 전소됐다.

1669년 올드 세인트 폴 대성당을 대체할 새로운 성당의 건설은 크리스토퍼 렌(Christopher Wren)에게 맡겨졌다. 대성당을 설계하는 과정은 켄터베리 대주교와 런던과 옥스포트의 주교들의 동의와 왕실의 승인을 받아야했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렸다. 렌은 영국의 중세 성당의 전통과 로마와 프랑스 등의 성당을 참조해 17세기의 바로크양식으로 설계했다. 

길이 158m, 너비 75m에 높이 111m이며, 중앙에는 85m 높이의 돔을 세우고, 양쪽에 높이 67m의 첨탑을 세웠다. 본당의 회중석은 68m이고 합창단석은 51m이며, 회중석의 너비는 37m이다. 대성당은 런던 대화재가 발생한지 32년 3개월이 지난 1697년 12월 2일 봉헌됐다. 

글·양기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진료심사평가위원회 평가수석위원

[양기화의 영문학 기행] 서른 번째 이야기
1984 가톨릭의대 임상병리학 전임강사
1991 동 대학 조교수
1994 지방공사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1998 을지의대 병리학 교수
2000 식품의약품안전청, 국립독성연구원 일반독성부장
2005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2009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상근평가위원
2018 동 기관 평가수석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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