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인터뷰] 이나영 “저 정말 평범한 사람이에요”

이나영 “저 정말 평범한 사람이에요”

기사승인 2018-11-16 00: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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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나영의 예전 별명은 ‘외계인’이었다. 조막만한 얼굴과 큰 눈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건 그에게서 풍겨 나오는 아우라다. 세상과 쉽게 섞이지 않을 것 같은 느낌. 정확히 말하자면, 세상과 섞이기 위해 자아를 지우지 않을 것 같은 사람. 이나영은 그랬다. 늘 이방인 같았다. 정작 자신은 “저 정말 평범한 사람인데…”라며 멋쩍은 듯 웃었지만.

오는 21일 개봉하는 이나영의 새 영화 ‘뷰티불 데이즈’도 이방인에 관한 작품이다. 중국에서 살던 탈북 여성이 남한으로 도망가게 된 사연을 그린다. 여성은 어느 사회에도 완전하게 소속되지 못한다. ‘탈북’에서 기인한 온갖 고난들이 그를 얽매와서다. 새터민을 소재로 한 ‘히치하이커’와 월경한 북한 여성을 다룬 ‘마담B’ 등 이방인에게 애정 어린 시선을 보내왔던 윤재호 감독은 ‘뷰티풀 데이즈’에서 다시 한 번 그들의 삶을 카메라 앞으로 옮겨 왔다.

“감독님이 이방인에 관한 생각을 워낙 많이 하세요. 그래서 이런(극중 탈북 여성)의 삶에도 관심이 많으셨던 것 같아요. 저요? 저는 구성이 색다르다는 점이 끌렸어요. 주제를 강압적으로 주입하지 않는다는 점도 좋았고요. 여기에 감독님 특유의 색감이 접목돼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졌죠.”

‘아름다운 날들’이라는 뜻의 제목과 달리 영화는 탈북 여성의 고된 삶을 조명한다. 19세에 북한에서 도망 나와 중국으로 간 그는 팔려가듯 조선족 남성과 결혼한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동안 여인의 삶은 평탄을 찾아가는 듯 했지만, 그를 중국으로 빼낸 브로커가 다시 나타나며 불행은 시작된다. 브로커는 그에게 빚을 갚으라고 독촉한다. 여인은 이후에도 몇 번의 도망을 계속한다. 가정에서 도망 나와 술집에서 일을 하고, 브로커에게서 도망쳐 남한으로 넘어간다. 여인의 삶은 늘 궁지로 내몰린다. 

이나영은 생존을 위한 이 여인의 여정이 마음이 움직였다고 한다.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여성 캐릭터가 마음에 들었어요. 어떤 고난이 닥쳐도, ‘그래도 나는 살아간다’는 태도가 좋았죠.” 영화에서 그는 10대부터 30대까지 다양한 연령을 연기한다. 수수한 시골 아낙이었다가 가발과 짙은 화장을 뒤집어 쓴 술집 여자가 되기도 한다. 시골 여성을 꼭 연기해보고 싶다던 이나영은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욕심이 채워지지 않았다)”며 웃었다.

[쿠키인터뷰] 이나영 “저 정말 평범한 사람이에요”영화는 잔혹한 진실을 숨기고 있다. 여인의 과거에 대한 진실이다. 남한에서 술집을 운영하며 살던 여인에게 중국에서 살던 아들 젠첸(장동윤)이 찾아오면서 진실은 밝혀진다. 윤 감독은 진실을 드러내는 방식을 두고 고민을 거듭했다. 젠첸이 엄마의 이야기를 우연히 알게 할지, 아니면 여성이 직접 자신의 사연을 밝힐지 몇 번이나 시나리오를 고쳐 썼다. “결국 정면 승부하기로 했어요. 사자가 새끼를 절벽 아래로 떠밀 듯이, 엄마의 역사를 알려주고 아들의 삶은 아들의 결정에 맡기로요.”

“(극중 배역이) 나를 이해시키려는 엄마는 아닌 것 같아요. 단지 ‘나는 최선을 다했고 그래서 떳떳이 살고 있다. 이런 나를 받아들일 거냐’라고 물을 뿐이죠. 이 여성이 살아온 역사도 구구절절 나열되지 않아요. 그런데 이야기가 흘러가면서 감정과 캐릭터가 쌓이더라고요. 그게 제겐 크게 와 닿았어요.”

이나영은 ‘뷰티풀 데이즈’의 시나리오를 보면서 장예모 감독의 ‘인생’이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걸어도 걸어도’, 장이머우 감독의 ‘붉은 수수밭’을 떠올렸다고 했다. 담담한 연출 때문이다. 영화 안에서 이나영의 표정은 일견 공허해 보인다. 하지만 영화의 결말을 알고 난 뒤부터 그의 얼굴은 다르게 읽힌다. 이나영은 “때론 가만히 응시하는 것이 더 세게 느껴졌다. 그래서 어떤 표정도 짓지 않았다”라고 설명했다.

호들갑스럽지 않은 영화의 태도는 이나영의 성격과도 닮았다. 영화 ‘하울링’ 이후 6년 만, 배우 원빈과 결혼한 뒤의 첫 작품. 세상의 호기심 어린 시선에도 이나영은 무덤덤했다. 그저 “내가 하고 싶고 좋아하는, 그래서 자신 있게 내보일 수 있는 작품으로 돌아오고 싶었다”고 말할 뿐이었다. 주변 사람들의 걱정을 몰랐던 건 아니다. 하지만 그는 판단 기준이 타인의 편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혼란과 부담이 더 커질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제게 가장 중요한 기준은 ‘느낌’이에요. 콕 짚어 말하긴 어렵지만, ‘뷰티풀 데이즈’의 어떤 면들이 그 때 저의 감성을 끌어당겼겠죠. 나이가 좀 더 들어서 돌아보면, 제 필모그래피에도 어떤 경향이 생길지도 몰라요. 하지만 지금은 그 때 그 때의 상황이나 상태, 순간에 집중하고 있어요. 요즘 가장 빠져 있는 거요? 차기작인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에 대한 고민이 커요. TV 화질이 너무 좋아져서 걱정인데…. 하하. 폐 끼치지 않게, 어떻게든 잘 해내야죠.”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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