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인터뷰] ‘국제 중식 요리대회 첫 우승’ 홍보각 정덕수 셰프

기사승인 2018-11-23 0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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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쌀한 늦가을이지만 주방은 열기로 가득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더운 바람이 훅 끼쳐왔다. 바쁜 점심시간이 지나 어느 정도 뒷정리 중이었지만 재료를 다듬는 소리와 화구에서 나오는 불 소리, 웍 돌리는 소리가 마치 들리듯 선명했다. 

지난 19일 서울 그랜드앰배서더서울풀만 홍보각에서 만난 정덕수 셰프는 여전히 앳되보였고 천진하게 웃었다. 요리에 집중했을 때 보여줬던 진지한 표정이 낯설어 보일 정도였다.

9월 19일과 20일 양일간 홍콩 중화주예학원에서 열린 ‘2018 이금기 영셰프 국제 중식 요리대회’에서 정 셰프는 ‘최우수 크리에이티브 상’과 ‘이금기 130주년 최고의 맛 계승 대상(대회 대상)’을 동시 수상했다. 한국인이 국제 중식 요리대회에서 우승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글로벌 소스 브랜드 이금기는 한국, 홍콩, 마카오, 일본, 대만, 미국, 캐나다, 네덜란드, 체코, 프랑스 등 총 17개국 관련협회와 협업해 대회를 열었다. 17개 나라에서 각 예서을 거친 40세 이하 젊은 셰프들이 참가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해 12월 국내예선을 통과한 정 셰프를 비롯해 이정훈(롯데호텔 도림), 안병훈(조선호텔 홍연) 셰프도 참가했다.

참가자들은 90분 동안 소고기, 돼지고기, 새우, 닭고기 중 1가지를 선택한 뒤 이금기 소스와 조미 제품을 활용해 요리를 선보였다.

심사위원단은 여경래 한국중식연맹 회장, 량페이헝 홍콩중식조리사협회회장, 천후이롱 네덜란드 중식셰프협회 명예회장, 재키 양 이금기 컨설턴트 셰프 등 7명이었으며 심사는 맛, 질감, 창의성, 외관, 위생 등을 평가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대회가 마무리된지 두달여가 지났지만 정 셰프는 그 때의 기억이 선명하다. 최종 4인에 꼽혀 무대에 오른 그는 대상을 수상하자 양 팔을 번쩍 들고 포효했다. 정 셰프는 천천히 그 날의 기억을 복기했다.

정 셰프가 선보인 요리는 ‘130주년 어향부귀완자’다. 빵가루 대신 말린관자를 갈아 튀기고 그 안에 계란 반숙을 넣어 부드러운 식감을 강조했다. 완자를 잘랐을 때 반숙이 흘러나오는 창의적인 연출로 호평을 받았다.

“양식을 섞은 특이한 퓨전요리를 해보고 싶었어요. 중식에서는 크림소스를 안 쓰는데, 크림소스를 활용한 부용기(芙蓉鸡, 계란 흰자와 닭고기를 함께 조리하는 음식)를 준비했죠. 크림소스와 우유를 섞어서 까르보나라 소스처럼 하는 방식인데, 요리 전체의 풍미를 살려야 하고 간도 맞춰야 하고 쉽지 않더라구요. 여 셰프님께 조언을 바랄 수도 없고요.”

9월 대회지만 부재료가 발표된 것은 5월, 그리고 주 재료가 발표된 것은 8월이었다. 준비할 시간이 촉박하다보니 자연히 손에 익은 요리로 가닥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퓨전요리는 독특함과 신선함을 줄 수 있지만, 위험부담이 컸다. 정 셰프는 튀김 쪽으로 마음을 돌렸다. 그러나 주제가 발표되자 정 셰프는 속으로 환호했다.

“제가 지금 홍보각 주방에서 식사와 튀김을 맡고 있다보니까 손에 익은 튀김 쪽으로 방향을 바꿨어요. 어향소스도 빼고 관자도 빼고, 전통 중식 방법으로요. 그러다가 (대회) 한 달 전에 주제가 나왔는데, 바로 ‘환구회체 돌파경전(전 세계 인재를 한 곳에 모아 고전을 뛰어넘는다)’였어요. 전통을 깨라는 뜻이죠. 그래서 곧바로 전부터 준비하던 퓨전 방식에 대한 연구를 계속했어요.”

정 셰프가 차별화 포인트로 둔 것은 바로 ‘반숙’ 이었다. 한식과 일식에서는 계란 반숙이 요리의 한 소재로 사용되지만, 중식에는 반숙이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홍콩에서 함께 일했던 친구에게 연락해서 다시 한 번 물어봤어요. 요리가 워낙 계속 바뀌고 발전하다보니까 새로운 트렌드가 나와 중식에서도 반숙을 사용하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일식당에서는 반숙이 나오지만 중식당에서는 여전히 반숙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이거다 싶었죠.”

정 셰프를 당황시킨 일은 대회 당일에 일어났다. 주최 측에서 90분이라고 공지했지만 실제 조리시간은 60분이었다.

“준비도 준비였지만 대회 당일도 쉽지 않았어요. 지난 대회도 그랬고 지침서에도 90분이라고 돼있어서 그 시간에 맞춰서 연습을 했거든요. 그런데 대회 당일에 가서 보니 재료준비시간이 30분이고, 그 안에 준비가 마무리돼더라도 칼을 잡을 수 없다고 했어요. 실제 조리시간은 60분이구요. 그래서 순간적으로 조리과정 몇 개를 빼야하나,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가 그냥 90분에 맞춰서 준비한 대로 조리하기로 결정했죠. 수상을 못하더라도 참여에 의의를 두기로 하고요.”

그나마 정 셰프가 도움이 됐던 것은 대회 둘째날 순서였기 때문에 주방을 한번 봐 둘 기회가 있었던 것이었다. 주방도 당일 공개가 됐기 때문에 어쩌면 이틀째 순서였던 것은 천운이었다. 정 셰프는 주방 구조 등을 눈에 담아 밤새 주방 위치에 따른 이미지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쿠키인터뷰] ‘국제 중식 요리대회 첫 우승’ 홍보각 정덕수 셰프

“정말 열심히 준비했어요. 수상이나 상금이 문제가 아니라, 홍보각 이름을 걸고 나가고, 또 한국 대표이기도 하고요. 여 셰프님에 대한 고마움까지 이 세 가지를 떠올리니까 열심히 안 할 수가 없더라구요.”

노력의 결과 정 셰프는 한국인의 세계 중식요리대회 첫 우승과 홍보각 첫 수상이라는 두 개의 ‘최초’ 타이틀을 거머쥐게 됐다.
 
정 셰프의 우승은 한국 중식업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간 화교 일색이었던 대회 우승자 중 순수 한국인이 글로벌 중식대회에서 우승한 것은 한국 중식 역사 100여년만에 이번이 처음이다.

“솔직히 부담이 큽니다. 최초라는 타이틀도 그렇고, 홍보각에서 우승자를 배출한 것도 처음이거든요. 두 개의 타이틀이 무겁더라구요. 이 부담감을 깨기 위해서는 다른 대회에서 다시 한번 결과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2020년께 한국에서 큰 중식대회가 열리는데, 기회가 된다면 그 곳에서 다시 한 번 결과를 내고 싶습니다.”

정 셰프는 지금 여전히 홍보각에서 식사와 튀김을 맡아 일하고 있다. 트로피와 상장은 자리하고 있지만, 상에 매몰되지 않도록 일에 집중하고 있다. 정 셰프는 요리사로서의 목표에 대해 묻자, ‘한식과 퓨전된 중식’이라고 밝혔다.

“처음 요리를 한식으로 시작해서인지, 한식과 중식을 한데 어울린 퓨전을 해보고 싶어요. 대회때 반숙 아이디어도 한식에 있는 ‘수란’ 때문에 떠올리게 됐고요. 양식에 분자요리가 있듯이 중식도 이런 한식 조리법 등을 활용해보고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조현우 기자 akgn@kukinews.com 

사진= 박태현 기자 pth@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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