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화의 영문학 기행] 서른네 번째 이야기

기사승인 2018-11-24 11: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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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 갤러리에서 나왔을 때는 점심 무렵이었다. 점심을 먹기로 한 한식당 아리랑은 갤러리에서 그리 멀지 않아 걸어서 갔다. 가는 길에 양초 조각으로 유명한 마담 투소 박물관(Madame Tussauds)을 지나게 됐다. 박물관에는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사와 영화에서 인기 있는 인물들의 밀랍인형이 전시돼 있다. 

1761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태어난 마담 투소는 16살이 되던 1777년 첫 밀랍인형을 만들었다. 1802년 밀랍인형 전시를 위해 런던을 방문했다가 나폴레옹 전쟁이 발발하면서 귀국하지 못하고 런던에 자리잡았다. 1835년에 런던에 박물관을 열어 자신의 작품을 전시했다. 마담 투소 박물관은 유럽, 북아메리카, 아시아 등의 여러 도시와 시드니 등에도 있다.

런던의 밀랍박물관에서는 공포의 방(Chamber of Horrors)이 유명하다. 그녀의 스승  필리페 쿠티우스(Philippe Curtius)박사의 대도의 동굴(Caverne des Grands Voleurs)을 잇는 전시관으로, 대도의 동굴에 전시되었던 작품의 일부를 포함하고 있다. 마라(Marat), 로브스피어(Robespierre), 루이 16세, 그리고 마리 앙투아네트 등 프랑스 대혁명과 관련된 사람들의 데드마스크를 비롯해 칭기스칸과 아돌프 히틀러 등의 밀랍인형이 전시돼있다. 

1996년에는 구성을 개선해 지난 500년 동안의 범죄와 처벌의 역사를 정리하고, 고문도구의 복제본을 새롭게 전시했다. 어린이나 임산부에게는 관람을 권장하지 않는다. 공을 반으로 갈라놓은 듯한 초록색 건물은 런던 천문대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마담 투소 박물관 소속이다. 양초로 만든 조각도 궁금했지만, 역시 구경보다 먹는 것이 더 중요하다. 식당으로 가는 걸음이 빨라졌다.

김치찌개와 불고기로 점심을 먹고 식당을 나오는데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우리 일행은 처마 밑에 모여든 제비처럼 이곳저곳의 건물입구에 옹기종기 모여 버스를 기다렸지만, 금세 오지 않았다. 관광버스는 시내에서 정차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대기하는 장소에 있다가 연락을 받고 출발한다. 

문제는 여왕의 행차와 맞물리는 바람에 1시간이 넘게 걸렸다는 것이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중에 셜록 홈즈 박물관(Sherlock Holmes Museum) 앞을 지났다. 마침 도로 사정이 좋아진 탓에 마음이 급한 기사가 쌩하고 지나치는 바람에 외관마저도 제대로 구경하지 못했다.

셜록 홈즈 박물관은 아서 코난 도일(Arthur Conan Doyle)경의 유명한 탐정소설에 등장하는 셜록 홈즈와 닥터 왓슨이 세들어 살던 건물이다. 리젠트 파크에 가까운 베이커 스트리트(Baker Street)의 237 번과 241 번 사이에 있다. 조지양식의 단독주택으로 1860년부터 1936년까지 기숙사로 운영되던 건물이다. 

비영리단체인 셜록 홈즈 협회가 인수받아 1990년 박물관을 개관하면서 웨스트민스터시로부터 소설에 나오는대로 221B 주소를 허가받았다. ‘주홍색 연구(A Study in Scarlet)’에서  처음 만나는 왓슨박사와 셜록 홈즈가 의기투합해 베이커가 221B에 있는 허드슨부인의 하숙집에서 같이 살기로 결정하는 장면이 나온다.

“홈즈와 나는 정한 시간에 만나 그가 말했던 베이커가 221B번지의 집을 살펴보았다. 하숙집은 안락한 침실 두 개와 공시가 잘 통하는 큰 거실 하나로 돼있었다. 거실에는 밝은 색깔의 기구들이 놓여있었고, 두 개의 넓은 창으로 햇빛이 들어왔다. 집은 어느 모로 보나 흠잡을 데가 없었고, 하숙비용도 둘이 나누니 적당한 수준이어서 우리는 즉석에서 입주 계약을 체결했다.” 박물관 내부는 1984년에 그라나다 텔레비전에서 방영된 셜록 홈즈 시리즈의 무대를 재현한 것이라고 한다. 코난 도일이 설명한 실내 분위기와 다른 느낌이 든다. 

시내를 빠져나가는 것도 어려워서 1시간 넘게 걸려 윈저성에 도착했다. 버크셔 카운티 윈저에 있는 윈저 성(Windsor Castle)은 런던의 버킹엄 궁전, 에든버러의 홀리루드 궁전과 더불어 영국 군주의 공식 주거지 가운데 한 곳이다. 성채의 면적은 4만4965평방미터에 달한다. 노르만이 영국을 침략한 뒤인 11세기 무렵 정복자 윌리엄왕이 전략적으로 중요한 템즈강을 감시하고 런던 외곽을 지키기 위하여 이 장소에 성을 세웠다.

현존하는 성채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남작이라 불리던 지주들이 존왕의 폭정에 반발해 벌인 1차 남작전쟁(First Barons' War, 1215–1217) 기간 중의 오랜 포위공격에서도 살아남았다. 남작전쟁은 존왕이 마그나 카르타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종료됐다. 윈저성은 크롬웰이 이끄는 의회파와 찰스1세를 지지하는 왕당파가 격돌한 시민혁명 기간에 의회군의 본부였으며 뒤에 찰스1세를 가두기도 했다.

헨리1세 시기부터 궁전으로 사용됐는데,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궁전이기도 하다. 13세기 중반 헨리3세는 호화로운 궁전을 지었고, 14세기에는 에드워드3세가 역시 궁궐을 더욱 웅장하게 재건축했다. 1660년 왕정복고 뒤에 찰스2세는 원저성의 많은 부분을 바로크양식으로 화려하게 재건했다.

18세기 동안에는 궁전이 방치됐지만, 19세기 들어서면서 조지 3세와 조지 4세가 막대한 비용을 들여 각각 로코코양식 그리고 고딕 양식으로 개축하고 바로크식 가구로 채웠다. 1992년 15시간 동안 타오른 화재로 상방(upper ward)이 피해를 입자 조지시대와 빅토리아시대의 중세 양식을 바탕으로 한 디자인이 가미된 현대적 양식으로 재건했다.

윈저성은 인공적으로 쌓은 15m 높이의 언덕에 조성한 작은 숲(motte)을 주변으로 안뜰(bailey)이 배치된 중방(middle ward)을 중심으로 상방과 하방이 이어진다. 중방에는 헨리3세가 쌓은 원형탑이 있다. 중방의 서쪽에 출입구가 있는데, 템즈강을 내려다볼 수 있는 북쪽 테라스와 안뜰을 내려다볼 수 있는 동쪽 테라스로 연결된다. 상방은 주 아파트와 개인 아파트 등 건물이 안뜰을 둘러싸는 구조로 돼있다. 원형탑 서쪽에 있는 하방은 빅토리아양식의 건물들이 채워져 있다. 성조지 교회와 레이디채플, 가터 기사단의 숙소 등이 배치돼있다.

버스에서 내려 윈저성으로 가다보면 호화롭게 꾸민 기차가 서있다. 윈저와 이튼 중앙역(Windsor & Eton Central Railway Station)에 서 있는 여왕호(The Queen)라는 이름의 기관차이다. 그레이트 웨스턴 철도(Great Western Railway) 클래스 증기 기관차 3041의 원래 크기의 복제본이다. 검은색의 기관차의 옆면에는 왕실문양과 기관차의 이름이 표시돼있다.

빅토리아여왕이 윈저와 런던 사이 왕복할 때 탔던 열차의 기관차이다. 증기기관의 발명이 산업혁명을 이끈 핵심 요소라 할 것이며, 증기기관차 여왕호가 만들어졌을 때는 산업혁명이 본격화되던 시기이다. 빅토리아여왕은 1842년 6월 13일 최초로 기타를 이용한 영국의 군주였다. 여왕호가 서 있는 기차역은 지금은 쇼핑센터가 돼있었다.

입장권을 받아들고 검색대를 통과한 다음에서야 윈저성에 입장할 수 있었다. 1시간정도 주어진 자유시간이 빠듯하여 윈저성을 비롯해 전시물 등을 꼼꼼하게 들여다볼 수는 없었다. 여왕의 인형컬렉션을 비롯해 무구(武具)모음, 그리고 그림 등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화가와 그림 이름이 너무 작게 쓰여 있었다. 

필자처럼 시력이 약한 관람객들을 고려하지 않은 듯 불편했다. 프라도 미술관은 소장 작품 대부분을 스페인 왕실이 구입한 것이었다는 사실과 비교해 보면 예술품에 관한 영국 왕실의 관심수준을 가늠할 수 있을 듯하다. 조금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면 영국 왕실은 대륙의 왕궁에 비해 소박한 느낌이다. 

여행이 막바지에 이르니 이젠 집 생각도 난다. 서울은 얼마나 더울까 하는 걱정도 슬쩍 든다. 윈저에서 4시 무렵 출발한 버스는 여유 있게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다. 정해진 출발시간보다 15분 정도 늦은 7시 50분에 탑승구를 물러나 인천으로 출발했다. 인천까지의 비행은 특별한 점이 없었다.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까 생각하는 10시간이 넘는 비행시간을 지나 이튿날 오후 2시 13분, 예정된 시간보다 약 20분 일찍 인천공항에 착륙했다.

이윽고 비행기가 탑승구에 닿고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 열기가 훅 끼쳐 온다. 이날 서울 기온이 여름 들어 가장 높은 34.9도라 했다. 아침에 반팔이 서늘하다 싶지만 한낮에는 반팔이 딱 좋던 런던으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그래도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기 마련이다. 누군가는 집에 돌아오기 위하여 여행을 떠난다 했던가? 

사실 여행기를 쓰다보면 여행을 다시 다니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여행기 쓰기까지를 마쳐야 여행이 완결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행을 하면서도 알게 되는 것이 많지만 여행기를 쓰면서도 새롭게 알게 되는 점들이 적지 않다. 그렇게 알게 된 것들을 누군가와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것도 행복한 일이다. 특히 이번 여행은 여전히 부족하지만 많은 영문학 작품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참 좋았다. 

2017년 여름에 영국과 아일랜드를 다녀온 뒤, 가을에는 이스라엘과 요르단을 다녀왔다. 그 여행기는 순서를 바꿔 먼저 소개했기 때문에 다음에는 올 봄에 다녀온 이탈리아 여행기로 이어가려고 한다. 남미와 아프리카를 제외하고는 그동안 다녀온 해외 여행지들이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았던 장소였던 터라, 로마제국이 남긴 유적의 본질을 봐야겠다는 생각에서 정한 여행지였다. 이탈리아 여행도 많은 문학작품들과 함께 할 계획이다.

글·양기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진료심사평가위원회 평가수석위원

[양기화의 영문학 기행] 서른네 번째 이야기
1984 가톨릭의대 임상병리학 전임강사
1991 동 대학 조교수
1994 지방공사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1998 을지의대 병리학 교수
2000 식품의약품안전청, 국립독성연구원 일반독성부장
2005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2009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상근평가위원
2018 동 기관 평가수석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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