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인터뷰] 정인선 “첫 방송부터 공감 간다는 칭찬… 허락받은 기분이었어요”

정인선 “첫 방송부터 공감 간다는 칭찬… 허락받은 기분이었어요”

기사승인 2018-11-29 00: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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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너무 큰 기회가 찾아와서 정신을 못 차리겠더라고요.”

배우 정인선에게 MBC ‘내 뒤에 테리우스’는 큰 부담감이었다. 지상파 드라마 첫 주연에 베테랑 배우 소지섭과의 호흡 등 잘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부담감이 그의 어깨를 짓눌렀다. 워킹맘과 경력단절 여성 등 시대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역할의 무게감도 느끼고 있었다. 잘 해내야 하는 이유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최근 서울 도산대로 한 카페에서 만난 정인선은 당시의 부담감을 떠올렸다. 촬영이 전체 회차의 절반 정도까지 사전 제작으로 진행돼 시청자들의 반응도 알 수 없었다. 본인이 하는 연기가 맞는 건지 확인하지 못하고 그저 열심히 했다.

“‘내 뒤에 테리우스’는 큰 작품이고 역할도 컸어요. 부담감이 컸죠. 역할이 가진 매력을 제가 잘 표현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고요. 피드백을 받지 못하고 계속 촬영하니까 답답하더라고요. 차라리 누가 혼내줬으면 하는 마음까지 들었죠. 첫 방송을 보면서 지금 시점이 내가 혼나고 올라갈 타이밍이라고 생각했어요. 일부러 실시간 반응을 읽으면서 봤는데 칭찬해주셔서 놀랐어요. 제일 눈에 들어온 건 실제 애린이와 비슷한 삶을 살고 계신 분들이 공감 간다고 해주신 댓글이었어요. ‘그래, 첫 시작은 잘 끊은 것 같다’, ‘앞으로 잘해보자’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허락받은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캐릭터에 대한 해석과 책임감도 지금까지의 드라마와 달랐다. 열심히 하다보면 되겠지 하는 정도로는 안 됐다. 지금 시대에 평범한 엄마를 다른 각도로 조명하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정인선이 연기하는 방식에 따라 해석이 갈릴 수 있었다. 경력 단절 여성에 대한 이야기도 잘 전달해야 했다.

“책임감이 정말 크게 다가왔어요. 사실 처음 대본 리딩을 하던 날부터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는 말을 입에 붙이고 다녔어요. 그런데 서이숙 선배가 ‘너 이번에 열심히 하면 안 돼. 잘해야 돼’라고 하셨어요. 맞는 말씀인데 정말 미치겠더라고요. 지금 시대에 이 역할을 매력적으로 표현하면 우리나라에 더 좋은 작품들이 많이 나올 수 있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고요. 혹시나 민폐 캐릭터로 비춰질까 하는 걱정도 들었죠. 그래서 더 대범하고 용감하게 보이길 원했어요. 작가님은 애린이를 통해 ‘지금 당신의 집에도 이런 영웅이 있어요’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드라마 내내 큰 도움이 됐던 건 배우 소지섭의 존재다. 말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정인선에게 필요한 이야기들을 던졌다. 사물이나 작품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자세에 놀라기도 했다. 소지섭의 ‘꿀팁’들을 5개월 동안 속성으로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다.

[쿠키인터뷰] 정인선 “첫 방송부터 공감 간다는 칭찬… 허락받은 기분이었어요”

“전 연기를 얇고 길게 하고 싶었어요. 마치 행성처럼 겉돌고 싶었던 사람이었죠. 그래야 연기를 오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큰 세계가 저에게 찾아온 거예요. 정말 잘 해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 다음부터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도 돼서 소지섭 오빠에게 많이 여쭤봤어요. 그랬더니 ‘얇고 길게’ 말고, ‘굵고 길게’ 가라고 얘기해주시더라고요. 앞으로 제가 계속 잘 살아나가려면 신변을 정리하고 바꿔가야 하는데, 그 타이밍이 지금 온 거라는 얘기였어요. 저만의 삶의 방식을 만들라는 얘기도 하셨고요. 항상 정확하게 말해주시는 분이세요. 그래서 더 여쭤본 거고요.”

정인선은 많은 매체와 인터뷰를 진행하며 5개월 동안 달려온 작품이 끝났다는 실감을 느꼈다. 그동안 꿈꾼 것 같은 상태로 지냈는데 이제야 현실 감각이 돌아오는 것 같다는 얘기도 했다. 다음 작품에선 어떤 모습을 보여줘야 할지에 대한 고민도 시작했다.

“‘내 뒤에 테리우스’를 만나서 다행이구나 싶어요. 이거 정말 잘 끝난 거 같다는 생각이 들고. 어릴 때부터 연기를 해서 ‘작품 앓이’가 없는 편이에요. 계속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환경에서 커오니까 헤어지는 것도 제겐 당연한 일이었죠. 그런데 연기를 다시 시작하고 갈수록 ‘작품 앓이’가 커져요. 자꾸 몽롱한 상태로 지내는 것 같아요. 드라마를 끝내자마자 다음엔 다른 매력을 보여드려야 하나 싶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시청자들이 제 에너지를 좋게 봐주신 거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제 밝은 에너지를 잘 표출하면 괜찮지 않을까 싶어요.”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 사진=씨제스 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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