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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쿡기자] 화염병 하나에 흔들린 법치주의 근간

화염병 하나에 흔들린 법치주의 근간

정진용 기자입력 : 2018.11.30 07:00:00 | 수정 : 2018.11.30 08:03:45

1년 전 일입니다. 쿡기자는 아동학대 재판이 열리는 법정 맨 앞줄에 노트북을 켜고 앉아 있었습니다. 습관적으로 다리를 꼬았나봅니다. “다리 꼬지 마세요” 법정 수위의 경고가 들려왔습니다. 당혹감은 잠시, 의문이 들었습니다. ‘뭐 이런 것까지?’ 발끈했지만 별 수 없었습니다. ‘싫으면 나가든가’ 수위 눈빛이 매서웠습니다. 

법정에서는 갖춰야 할 예의가 많습니다. 재판관이 법정에 들어서면 방청객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예외는 없습니다. 재판관이 착석하고 “모두 앉아주십시오”라는 말이 나온 뒤에야 앉을 수 있습니다. 심리 과정에서는 정숙해야 합니다. ‘법정 소란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에 대한 공판 직후 퇴정하던 검사에게 폭언 한 50대 남성은 감치 5일 처분을 받고 서울구치소에 수감됐습니다. “법정 질서 유지를 위한 재판장 명령을 위반하고 폭언함으로써 재판 위신을 현저하게 훼손했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법정에서는 재판장 말이 곧 법입니다. 

물론 판사 개인에게 예의를 표하기 위해 규칙을 따르는 것은 아닙니다. ‘국민 인권과 정의를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 사법부에 대한 존중과 신뢰의 의미로 만들어진 사회적 합의죠. 더 나아가 공정(公正·어느 한쪽으로 치우침 없이 공평하고 올바른)한 재판에 승복하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사법부에 대한 존중은 판결이 법과 양심에 따라 이뤄진다는 전제 위에서 성립합니다. 사법부는 행정부, 입법부와 달리 ‘선출되지 않은 권력’ 입니다. 필연적으로 정당성이 부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법부의 부족한 정당성을 채워주는 것은 바로 국민의 신뢰와 존중입니다. 오로지 공정한 재판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가치입니다.

‘재판은 공정하다’는 전제가 흔들리면 어떻게 될까요. 불행히 이는 우리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부 이야기입니다. 재판은 정권 입맛 따라 요리됐습니다. ‘판사님’들 안중에 억울한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그런 영화 같은 일은 없었습니다. 자기 밥그릇 키우기에 바빴기 때문입니다. 사법부는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습니다. 대법관 수를 늘리자는 의견은 무시됐습니다. 상고법원 추진 목적은 대법관의 희소성을 지켜 힘과 권위를 높이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재판은 거래 대상이 됐습니다.

현실은 이러한데, 사법부는 국민에게 재판 결과에 승복하라고 요구할 수 있을까요. 재판 결과에 불만을 품은 한 70대 남성은 지난 27일 김명수 대법원장이 탄 차량을 향해 화염병을 던졌습니다. 김 대법원장은 그 다음날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과 민갑룡 경찰청장을 만나 사과를 받았습니다. “죄송하다”며 고개 숙이는 행정부 수장을 향해 김 대법원장은 “(법관을 향한 공격은) 법치주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라고 엄중히 말했습니다. 특별재판부, 법관 탄핵 요구에도 침묵을 지키는 김 대법원장. 자체 조사로 유야무야 사법농단을 마무리 짓겠다는 의도가 아닌지 불안한 예감이 엄습하고 있습니다. 존중과 권위는 강요로 얻을 수 없습니다. 과연 법치주의 근간을 흔든 것은 화염병이었을까요.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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