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혜화역 시위 불붙는데” 공석·백래시에 흔들리는 총여학생회

기사승인 2018-11-30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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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여학생회? 저희 학교에 그런 기구가 있다고요?” 

광운대학교 14학번 김모(여)씨는 총여학생회 폐지 찬반 투표 여부를 묻는 말에 아리송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광운대 총여학생회는 현재 총학생회칙상으로만 남아있는 ‘유령’ 단체다. 총여학생회장단도 총여학생회실도 없다. 각 단과대에 설치된 ‘여학생휴게실’을 통해 과거 총여학생회가 활동했다는 것을 추측할 뿐이었다.  

대학 내 총여학생회가 사라지고 있다. 인하대학교와 단국대학교, 홍익대학교 등 지난 2008년 이후 총여학생회가 폐지된 대학교는 48곳에 달한다. 최근 각 대학에서 총여학생회를 학칙에서 삭제하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10년 이상 공석” 입후보자 없어 속속 사라지는 총여학생회 

광운대는 지난 27일부터 29일까지 사흘간 학생총투표를 실시했다. 안건은 총여학생회 폐지 및 총학생회칙 상 삭제다. 투표 둘째 날인 지난 28일 오전 서울 노원구에 위치한 광운대를 찾았다. 학생총투표 찬반에 대해 묻자 다수의 학생은 “총여학생회의 존재조차 몰랐다”고 말했다. 

광운대 총학생회에 따르면 총여학생회는 최소 10년 동안 설립되지 못했다. 입후보자가 없어 선거 자체가 성사되지 못한 것이다. 총여학생회 설립 무산은 10년 이상 이어져 왔을 가능성이 크다. 학교 측이 지난 2008년 이후 자료만 보유하고 있기에 이전 상황은 알 수 없다. 

인터뷰에 응한 학생들은 총여학생회 폐지가 당연하다고 답했다. 광운대 옥의관 앞에서 만난 14학번 김모(24)씨는 “여자 동기들에게 물어봐도 총여학생회로부터 혜택받은 게 전혀 없다고 했다”며 유명무실한 총여학생회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표했다. 미디어영상학부에 재학 중인 18학번 이모(20·여)씨는 “총여학생회가 존재하는 것 자체가 여성을 약자로 인식하는 것 같다”며 폐지에 찬성했다. 

광운대뿐만이 아니다. 서울시립대학교의 총여학생회도 학칙으로만 존재한다. 서울시립대는 지난 2002년부터 총여학생회를 구성하지 못했다. 성균관대학교 또한 지난 2009년 이후 공석 상태였다가 지난달 15일 폐지를 결정했다. 부산대학교 총여학생회의 경우에도 지난 2004~2006년, 지난 2008~2012년 총여학생회장 입후보자를 내지 못했다. 부산대는 2012년 총여학생회를 학칙에서 삭제했다. 일각에서는 취업난의 심화, 학생 자치 활동에 대한 무관심, 총여학생회 내 ‘롤모델’ 선배의 부재 등을 장기간 공석의 이유로 꼽았다.

▲학내 페미니즘 포스터·현수막 찢기고 욕설까지 “백래시 심각” 

일부 학내 구성원의 반발도 총여학생회의 존재를 위태롭게 한다. 이른바 ‘백래시(사회·정치적 변화에 자신의 영향력이 줄어든다고 느끼는 기득권층의 반발 현상)’다.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학생회관 앞에는 ‘총여학생회 폐지 및 관련 회칙 삭제, 성폭력담당위원회 신설에 관한 학생 총투표 서명’ 플래카드가 나부꼈다. 플래카드에는 서명을 받기 위한 QR코드가 포함됐다. 중앙도서관 앞에도 같은 내용의 포스터와 개인 명의의 대자보가 붙었다. 대자보에는 “총여학생회를 폐지하는 일은 진리를 세우는 일이고 빼앗긴 우리의 정의를 되찾는 일”이라며 “총여학생회의 활동은 대체 가능하거나 남녀불평등적인 활동”이라는 주장이 담겼다.  

지난 5월 연세대 총여학생회는 페미니스트 은하선씨의 강연을 강행해 학생들의 반발에 부딪혔다. ‘29대 총여학생회의 퇴진 및 전면 재개편’ 주장도 일었다. 이후 총여학생회 재개편에 대한 학생총투표가 진행, 가결됐다. 지난 23일 30대 총여학생회가 새롭게 당선됐으나 논란은 여전하다. 

특히 온라인에서의 반발이 컸다. 페이스북 연세대학교 대나무숲 페이지에는 “총여학생회는 집단의 중요성으로 학교를 둘로 나누고 분란을 조장한다”는 글이 게재됐다. 총여학생회 폐지 저지를 위한 온라인 서명에는 제출자의 이름·학번 대신 ‘페미니즘은 정신병’ ‘멍청한 X들이 XX한다’ 등의 욕설이 적혔다. 교육과학대학 16학번 양모(24·여)씨는 “학교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성평등’을 이야기하면 격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총여학생회가 필요하다는 점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라고 전했다. 

타 대학에서도 백래시 문제가 제기됐다. 지난해 한양대학교에서는 총여학생회장 후보가 SNS에서 성희롱 댓글에 시달리는 등 사이버 폭력을 당했다. 오프라인에서도 학내 페미니즘 관련 대자보나 현수막이 훼손되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   

“미투·혜화역 시위 불붙는데” 공석·백래시에 흔들리는 총여학생회▲미투·성평등 창구로서의 총여학생회 “공감 얻어 더 큰 참여 이끌어야” 

총여학생회의 존치를 바라는 목소리도 있다. 강의실 내 성희롱과 단체채팅방 성희롱 등 학내 성폭력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할 기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총여학생회는 대학 내 ‘미투(me too·나도 고발한다)’ 운동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다. 피해자의 대리인으로서 사건의 공론화와 해결을 촉구했다.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15학번 윤모씨는 “지인이 성폭력 피해를 당했을 때 총여학생회에서 나서서 문제 해결을 위해 힘써줬다”며 “총여학생회는 존치돼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학내 페미니즘에 대한 반발을 막고 설득할 창구로 총여학생회가 더욱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연세대 생명과학대학 16학번 김모(21·여)씨는 “학내 성폭력에 대한 문제 제기가 지속되고 있음에도 일부 학생들은 ‘여학생이 받는 차별이 무엇이냐’고 주장한다”며 “총여학생회는 여학생의 의견을 대변해줄 수 있는 기구로 존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외에도 총여학생회의 구성원이 아닌 ‘남학생’을 포함한 전체 학생투표로 폐지를 논하는 것이 불합리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총여학생회가 학생들의 참여를 끌어낼 수 있도록 고민하고 변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혜경 전북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독자적인 조직이 있어야 여성들의 목소리를 쉽게 모을 수 있다”면서 “성차별 문제를 제기하면서 공감을 얻는 과정이 필요하다. (여성의 실생활과 맞닿은 문제들이) 더 많은 참여를 끌어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최윤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평등문화교육연구센터장도 “여성 등 학내 다양한 소수자의 목소리를 모아 학생 인권을 변화시키는 ‘적용’ 사례를 보여줘야 한다”면서 “혜화역 시위 등에서 나타난 동력을 학내로 끌어오려는 고민을 해야 한다. 세상과 화합하는 페미니즘 등을 고심해야 할 시기”라고 전했다. 그는 “없어진 조직을 살리는 것은 매우 힘들다. 다시 만들려면 몇 배의 세력과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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