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던 곳에서 돌봄 받기…‘선택과 집중’ 필요하다

권용진 단장 “빈곤노인 방문의료 안 되면 사회적 입원 도돌이표”

기사승인 2019-01-12 0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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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6월 한국형 커뮤니티케어 선도사업 실시
의료기관 간 역할 확립~의료-복지 연계 등 해결과제 여전
정신질환자 관리 ‘인력’ 문제 해결 위해 보건소‧의료기관 연계 필요

올해 6월부터 전국 8개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역사회 통합 돌봄(커뮤니티케어) 선도 사업이 실시된다. 노인이나 장애인, 정신질환자 등 케어가 필요한 사람들이 자신이 살던 곳에서 지역주민들과 함께 어울려 살 수 있는 환경이 멀지 않은 미래로 다가온 것이다. 커뮤니티케어란 케어(care)가 필요한 주민들이 자기 집 등 지역사회에 거주하면서 개개인의 욕구에 맞는 서비스를 누리고, 지역사회와 함께 어울려 살아가며 자아실현과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서비스 체계이다. 여기서 ‘케어’는 좁은 의미의 돌봄 뿐 아니라 주거·복지·보건의료서비스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각자에게 필요한 주거, 보건의료, 요양, 돌봄 서비스 등 독립생활을 지원하는 이 정책은 현재 우리가 처한 현실 속에서 매우 이상적이다. 퇴원 및 탈시설을 하고 싶어도 돌봄을 받기 어려워 결국 다시 병원(시설)을 이용해야 하는 ‘회전문 현상’이 만연한 지금 상황은 “불편해도 평소 살던 곳에서 지내고 싶다”는 국민 욕구와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돌봄이 필요한 대상자를 명확하게 구분해 서비스를 지원하고, 의료기관 간 역할도 확립해 그에 맞는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되면 보건-복지-의료 영역 간 연계도 수월해질 것이라는 의견이다.

우리나라의 복지정책은 선별적복지와 보편적복지로 나뉜다. 보편적복지라고 하면 모든 국민이 혜택을 받는 것을, 선별적복지라고 하면 도움이 필요한 저소득 계층만 혜택을 받는 것을 말한다. 두 정책의 차이는 효율성과 형평성이다. 전자는 복지정책으로 또 다른 차별을 만들지 않기 위해 재원을 지원하는 반면, 후자는 정해진 예산으로 더 큰 효과를 보기 위해 우선 필요한 곳에 투입한다. 

정부가 추진하는 ‘지역사회 통합 돌봄(커뮤니티케어)’ 정책은 보편적복지라고 할 수 있다. 올해 6월 시행하는 선도사업은 노인, 장애인, 정신질환자, 노숙인 등을 대상으로 지역의 실정에 맞는 다양한 모델을 발굴·검증하기 위해 마련됐다. 보건복지부가 10일 발표한 선도사업 추진계획에 따르면, 2022년까지 선도사업을 실시해 핵심인프라를 확충하고 2025년까지 커뮤니티케어 제공기반을 구축, 초고령사회로 진입될 것으로 예상되는 2026년 커뮤니티케어 제공을 보편화할 예정이다.

   

 

◇빈곤노인 vs 중산층노인, 돌봄 필요한 대상 명확하게 조정해야 

정부는 노인 대상 사업모델을 중점적으로 추진한다. 7년 후인 2026년이 되면 베이비부머 세대가 노인으로 전환돼 국민 5명 중 1명 이상이 노인이 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고, 돌봄 사각지대 발생은 대다수 국민이 당면한 문제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서비스 대상 노인은 요양병원 입원 환자 중 지역사회 복귀를 원하는 환자 또는 급성기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마치고 퇴원을 준비 중인 환자이다. 집이나 지역사회에 거주하고 있으나 노화, 사고, 질병, 기능상태 저하 등으로 돌봄이 충족되지 않을 시 요양병원 입원이나 시설 입소가 불가피해 질 수 있는 노인인 셈이다. 

그러나 커뮤니티케어의 핵심인 ‘탈병원’, ‘탈시설화’를 실현시키기 위해선 대상자를 가난한 노인으로 조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경제적 자립생활이 가능한 환자라면 외래-입원-퇴원이 보다 능동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의학적 케어는 물론 기본적인 생활유지조차 어렵다는 것이다. 권용진 서울대병원 공공보건의료사업단장에 따르면 커뮤니티케어 도입 배경에는 현재 한국사회에 직면한 주요 문제점인 ‘고령화’, ‘만성질환 증가’, ‘양극화’ 등이 있다. 이를 합치면 곧 ‘가난한 만성질환을 가진 노인’ 문제로 좁혀진다. 그는 “커뮤니티케어가 이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정책 효과를 볼 수 없을 것이다”라고 단언했다.  

권 단장은 “보편성을 이유로 모든 노인에게 차별 없이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취지는 좋지만, 차별이 사라지려면 빈곤노인의 소득도 해결해줘야 한다”며 “현재 문제가 되는 대상은 중산층이 아니다. 가난한 노인이 퇴원을 하면 주거, 건강 등 여러 차원의 빈곤문제가 온다”고 지적했다. 이어 “의료적 니즈가 끝났다고 병원이 퇴원을 시키면 돌봄 사각지대에 놓인 노인은 갈 곳이 사라진다”며 “다차원의 빈곤문제에 직면해 있는 장기요양보험수급자들은 결국 집이 아닌 병원이나 시설로 갈 수밖에 없다. 서비스 지원 대상을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복지부는 재가서비스가 불충분한 상태에서 집에서 돌봄이 이뤄지면 가족, 특히 여성에게 엄청난 돌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임강섭 커뮤니티케어 추진팀장은 “이번 사업은 보편적으로 서비스를 지원한다는 취지로 마련됐다. 다만 소득보다는 케어 필요도 순으로 대상자가 고려될 것”이라고 말했다.

 

살던 곳에서 돌봄 받기…‘선택과 집중’ 필요하다

◇‘회전문 현상’ 막으려면 방문의료 가이드라인 필요

환자가 퇴원 후 집에서도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받으려면 ‘방문의료’, ‘방문간호’서비스 제공은 필수다. 그러나 노인을 위한 방문간호서비스는 매우 제한적이고, 혼자 개원한 의료진은 저수가 등의 이유로 병원을 닫고 방문의료(왕진)를 다닐 수 없는 상황이다.  

권용진 단장은 방문의료에 대한 ‘가이드라인’도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특이한 병적 증세가 나타났을 때 의료진이나 복지사는 책임을 피하기 위해 경중에 상관없이 병원으로 이송시킬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그는 “방문 의사, 간호나, 복지사 등에게 가이드라인을 줘야 한다. 어느 정도 중증이면 병원으로 보내고, 그렇지 않으면 집에서 가이드라인에 따라 처치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현재 우리나라 시스템에서는 무조건 입원시키려고 할 것이다. 책임을 물며 소송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보건-복지 연계 미흡…인력은 턱없이 부족

전용호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건사회연구 최신호에 공개한 ‘노인 돌봄의 연속성 측면에서 바라본 의료·보건·복지 서비스의 이용과 연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경우 의료와 보건 서비스, 보건과 복지 서비스 간 연계체계가 미흡한 상태다. 보건소 중심의 서비스는 공공에 기반하고, 의료서비스는 민간에 기반해 협조가 어렵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보건·복지 기관과 대상자 연계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인력난도 심각하다. 최근 발생한 강북삼성병원 의사 사망 이후 정신질환자에 대한 커뮤니티케어 정책을 서둘러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으나 현재 정신건강복지센터 사례관리자의 1인당 담당 환자수는 현재 60~70명으로 하루에 한 명 돌보기도 벅차다. 손지훈 서울대병원 공공보건의료사업단 교수는 “복지사 1명이 환자 50~100명을 관리하는 경우가 많은데, 물리적으로 환자를 한 달에 한 번 만나기도 어렵다. 지역센터가 환자를 모두 관리하기에 인력이 부족하다”라며, “센터 인력은 중증 정신질환을 관리하기 위해 구성된 전문인력이지만 현실은 우울증 등 일반적인 질환까지 다루고 있다. 오히려 지역사회와 밀접하게 있는 지역 보건소가 일반 질환을 담당하고, 센터가 중증질환에 집중하는 것이 효율적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센터와 병원 간 연계도 미흡하다. 센터는 사회복지기관 성격을 가지고 있고, 병원은 의료보험체계로 움직여 별도의 예산으로 움직이고 있다”며 “센터 인력도 환자들을 치료하고, 병원 인력도 센터처럼 나가서 환자를 볼 수 있도록 분위기를 바꿔야 환자들이 돌봄을 받는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래야 치료 접근성도 높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수인 기자 suin92710@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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