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간호사 '태움' 희생...해결책 어디에

간호사들 "간호사 갈아쓰는 병원,간호사 수만 늘리는 정부에 안타까운 희생 반복...근본 대책 세워야"

기사승인 2019-01-12 04:00:00
- + 인쇄

최근 서울의료원 간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와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11일 간호사 커뮤니티와 국민청원게시판 등에는 간호사가 희생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달라는 호소가 쏟아졌다. 지난해 서울아산병원 간호사의 사망 이후 1년여 지났지만 여전히 간호사가 희생되는 근본 구조가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날 간호사 커뮤니티인 페이스북 간호학과·간호사 대나무숲 페이지에는 ‘간호사 사망사건을 공론화 해달라’는 글이 올라왔다. 게시자는 “도대체 얼마나 같은 과정을 반복해야 바뀌는 것이냐”며 “여전히 병원은 간호사를 갈아 넣느라 여념이 없다. 죽고 싶지 않아 그만둔 간호사를 대체하기 위해 만든 법이 간호대학 입학정원 증대냐”며 비판의 날을 세웠다.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도 ‘서울의료원 간호사 자살사건에 대한 진상조사를 해달라’는 내용의 청원이 여럿 올라왔다. 한 청원자 A씨는 “왜 의사는 죽어서 법을 만드는데 간호사는 죽어도 ‘불쌍하다’에 그치냐”며 “죽음 기사 뜬 순간에만 반짝하지 말아달라. 언제까지 죽어가는 간호사 수만 셀 것이냐”며 대책을 촉구했다.

또 다른 청원자 B씨는 “간호사가 왜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 직장 내 괴롭힘이 이번 사건에도 주요원인이었는지 철저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간호사의 근무환경 개선 요구'는 이미 지난 해부터 국민청원 게시판에 꾸준히 올라왔던 주제다. 지난달 20일에는 '간호사도 사람답게 살게 해달라'는 청원에 2만여명이 참여한 바 있다. 청원에서는 간호사의 근무환경 개선이 아닌 간호대 정원 수를 늘리는 방향으로 간호사 이탈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정부의 정책을 꼬집었다.

대한간호협회도 이날 입장문을 내고 “안타까운 죽음에 깊은 애도와 유가족 분들께 위로의 뜻을 전한다”며 “고인의 갑작스런 사망소식에 대한 공식적이고 책임 있는 입장 표명이 없어 여러 의혹과 주장들에 있는 것에 대해 깊이 우려하고 있다. 이에 서울의료원과 서울시의 철저한 진상조사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故 서지윤 간호사는 앞서 지난 5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인은 약물 과다투여. 서 간호사는 당초 서울의료원 병동에서 일했으나 지난해 말 간호행정부서로 발령을 받고, 근무한 지 12일 만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의료계에 따르면, 서 간호사는 부서 이동 후 내부 분위기 등으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한 것으로 알려진다. 5년차 간호사인 그는 병원 내에서 ‘친절 직원상’을 받을 정도로 인정받던 직원이었다.   

일반적인 태움과는 다른 양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신규 간호사뿐만 아니라 간호사 사회 전반의 문제라는 것이다. 태움은 선배 간호사가 신임간호사를 교육시키는 과정에서 괴롭힘 등으로 길들이는 규율 문화를 말한다. 그런데 서 간호사의 경우 병원 내에서 능력 있는 간호사로 인정받아온 상급 간호사였기 때문. 

이에 유족 등은 ‘직장 내 괴롭힘 의혹’을 제기하고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유족에 따르면 서 간호사는 유서에 “나 발견하면 우리 병원은 가지 말아 달라. 조문도 동료들이 안 왔으면 좋겠다”고 적었다.

서 간호사의 동생은 SNS 글을 통해 ”누나가 일터에서의 스트레스와 복합적인 우울증상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며 “유서에는 병원 사람들 본인이 죽어도 조문받지 말아달라고 한다. 가족들의 마음은 미어진다. 누나 힘들게 한 사람들 벌 받았으면 좋겠다”며 울분을 토했다.

또 간호사 '태움' 희생...해결책 어디에

함께 일하던 동료의 죽음으로 병원 내부 분위기도 무겁게 가라앉았다. 심현정 서울의료원 제1노조위원장은 “동료를 잃었다는 슬픔에 침울한 상황이다. 함께 일했던 병동간호사들은 오늘 아침에도 눈물 흘리면서 근무하고 있었다”며 “서 간호사와 관련한 진상조사와 산재 추진 등 계속 돕고자 한다. 서 간호사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근무환경 개선에도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의료원 측은 지난 7일 서 간호사 죽음이 알려진 직후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 자체 조사에 착수했다고 전했다. 8일에는 병원장이 유족을 찾아 애도의 뜻을 전했다고 밝혔다. 의료원 관계자는 “서 간호사가 왜 극단적 선택을 했는지 자체 진상조사위원회 중심으로 확인 중이다. 괴롭힘이 있었는지, 일을 하면서 소통의 문제인지 자세한 정황은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 또 다른 2차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1차 조사에서 부족한 부분이 있을 시 서울시 등에 요청해 2차 조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유족과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새서울의료원분회(제2노조)는 병원 측의 진상조사위원회 구성이 잘못됐다며 반발하고 있는 상황. 위원회 구성이 대부분 병원 내부 인사를 중심으로 이뤄져 공정성이 훼손됐다는 지적이다.

이들 유족과 노조는 “서울시는 이 사건의 진상조사위원회를 서울의료원 부원장 등 내부인사 8명으로 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고 하고, 오늘 추가 추천을 받아 외부인사 2명가량이 참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며 “서울의료원의 은폐 의혹까지 나온 상황에서 이 조사에 서울의료원 관계자를 넣겠다는 것은 철저한 진상조사 의지가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서울시는 엉터리 진상조사위원회 구성을 즉각 중단하고 유족과 노동조합의 의견을 존중하여 객관적인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며 병원 측에 면담에 임할 것을 요구했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