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역’ 사태 부른 허술한 감염병 예방관리 시스템

산업안전보건법 ‘의료기관 종사자 예방접종’ 의무, 가이드라인은 無

기사승인 2019-01-21 0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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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교훈 잊었나…복지부‧질본‧고용노동부, 역할‧권한 구분 지어

최근 대구 소재 의료기관을 이용한 영‧유아 및 의료기관 종사자에서 홍역 환자가 잇달아 발생하고 있는 가운데 의료진 대상의 홍역 감염관리체계가 허술한 것으로 드러났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사업주는 ‘병원체 등에 의한 건강장해’를 예방하기 위해 종사자에게 보호구 지급, 예방접종 등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하지만, 홍역 등 일부 법정감염병 예방을 위한 관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에 보건당국은 홍역 감염이 확산되자 뒤늦게 선별진료소를 설치하고, 대구지역 종합병원 및 소아과병원에 근무하는 의료인력, 보건소, 119소방서 등에 근무하는 직원들의 항체여부를 검사한 뒤 홍역예방 접종을 시작했다.

의료진 대상 감염병 관리를 담당하는 부처도 모호한 상황이다. 국민 보건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는 중앙행정기관인 보건복지부는 해당 법령이 고용노동부령이기 때문에 이를 위반하고 있는 의료기관을 단속할 수 없다는 입장이고, 질병관리본부는 예방접종 기준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는 기관이라고 단정 짓고 있다. 고용부는 관리‧감독 권한은 있지만 의료기관 종사자에 대한 별도 규정이 복지부에도 있을 것이라고 하는 등 책임을 분산시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MMR 접종 권고 대상 아닌 생후 6~11개월 영아, 항체 없는 성인 환자 발생

지난 2018년 12월 17일 대구 동구에 있는 ㅈ 소아청소년과 의원을 거쳐 파티마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생후 21개월 남자아이와 생후 8개월 여자아이가 홍역 판정을 받았다. 그 후 현재까지 발생한 홍역 확진자는 총 16명이다. 13명은 대구, 2명은 경북 경산 지역에 거주하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감염 경로가 확산돼 보건당국의 역학조사 및 접촉자 관리는 난항에 빠졌다. 다만 대구에서 번지고 있는 홍역은 이전까지 국내에서 발견된 적이 없고, 해외에서 유행하는 바이러스라는 점을 감안해 해외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된다.

환자는 1월 20일 기준 1세 미만이 7명, 2세 1명, 20대 5명, 30대 3명으로, MMR 접종 권고 대상이 아닌 생후 6∼11개월 영아와 한 번만 예방 접종을 받았거나 항체가 없는 청년층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어린이 홍역 예방접종률은 MMR(홍역‧유행성이하선염‧풍진) 1차 97.8%, 2차 98.2%로 높은 상황이다. 그러나 접종시기가 안 된 영아(12개월 미만)나 면역력이 저하된 고위험군을 중심으로 홍역이 유행될 수 있다. MMR은 1차는 생후 12∼15개월, 2차는 만 4∼6세에 총 2회에 걸쳐 접종해야 하며, 모두 맞아야 예방률이 97% 수준까지 올라간다.

이에 보건당국은 홍역 추가 확산을 막기 위해 항체가 없는 대구 지역 영유아 4만 명에 대해 가속접종을 시행하고 있다. 또 선별진료소가 설치된 5개 상급종합병원(경북대·영남대·계명대동산·대구가톨릭대·칠곡경북대)과 2개 종합병원(파티마·대구의료원), 동네 병·의원 소아과 등 의료진 1만 6500여명과 8개 구·군 보건소 직원 및 119 구조·구급대원 1500여명에 대해 홍역 항체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의료인 환자 6명 발생, ‘감염병’ 예방 위한 조치 의무지만 관리는 허술

의료인이 항체가 없거나 면역력이 떨어진 환자를 진료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감염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의료기관 종사자 등을 대상으로 MMR 접종을 시행하고 있지만, 문제는 이미 확진 판정을 받은 의료인이 6명이나 된다는 점이다.

다행히 현재까지 역학조사 결과로는 확진 판정을 받은 간호사, 간호조무사 등의 의료인으로부터 감염된 환자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의료인은 감염병 환자와 접촉할 가능성이 높고, 반대로 의료인이 다른 환자들에게 감염병을 전파할 수 있기 때문에 철저한 감염병 관리체계가 요구된다.

게다가 홍역으로 인한 치사율은 낮지만 감염력은 90% 이상으로 매우 높다. 임정혁 고대구로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홍역은 기침이나 재채기 등 공기를 통해 전파돼 감염력이 강하다”며 “면역력이 없는 사람이 홍역 환자와 접촉하면 감염될 확률이 90%”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의료인의 홍역 감염예방관리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의료기관 종사자의 감염병 관리는 의무이다. 산업안전보건법 24조(보건조치)와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사업주는 원재료·가스·증기·분진·흄(fume)·미스트(mist)·산소결핍·병원체 등에 의한 건강장해 예방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 

594조(감염병 예방 조치 등)에는 사업주가 근로자의 혈액매개 감염병, 공기매개 감염병, 곤충 및 동물매개 감염병을 예방하기 위해 ▲감염병 예방을 위한 계획의 수립 ▲보호구 지급, 예방접종 등 감염병 예방을 위한 조치 보호구 지급, 예방접종 등 감염병 예방을 위한 조치 ▲감염병 발생 시 원인 조사와 대책 수립 ▲감염병 발생 근로자에 대한 적절한 처치를 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를 위반할 시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벌금, 근로자가 사망할 시 7년 이하의 징역 도는 1억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그런데 의료기관에서 의료인력을 대상으로 취하고 있는 감염병 예방조치 범위는 병원마다 다르고, 매우 한정적이다. 서울의 ㄱ 대학병원에서는 의료진 채용 시 B형 간염과 수두, 인플루엔자 백신만 의무적으로 제공하고, 홍역과 A형 간염 등 그 외 바이러스에 대해서는 접종을 권고만 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다른 ㄱ 대학병원은 B형 간염과 인플루엔자만 의무적으로 제공하고, 홍역, 수두 등은 직원 할인을 통해 접종을 권고하고 있었다. 일부 동네 의원에서 B형간염만, 또는 인플루엔자만 백신접종을 제공하고 있었다. 즉 모든 의료기관이 준해야 하는 검사항목 등의 가이드라인은 없고, 모든 관리를 의료기관에 전적으로 맡기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감염병 관리시스템에 따라 의무 접종 항목은 병원마다 다를 것이다. 우리도 국가에서 별도로 지령이 내려온 것은 없고, 병원 차원에서 예방을 위해 일부 항목에 대해 의무 접종을 시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임정혁 교수도 “큰 의료기관이나 대학병원은 근무 의사나 파견 인력, 준의료진에 대해 항체 검사를 진행한다. 예전에 비해 (항체가 없는 경우) 필수로 접종해야 하는 항목들이 늘었지만, 홍역은 필수인 곳이 많지 않을 것이다. 항체검사를 안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역’ 사태 부른 허술한 감염병 예방관리 시스템

◇복지부‧질본 “관리‧감독 권한 없다”, 고용부 “모든 사업장 조사 어려워”

2015년 186명의 환자가 발생해 전 국민을 공포에 떨게 했던 메르스 사태 이후 정부가 감염병 관리체계를 강화하겠다고 매년 발표해왔지만, ‘의료기관 종사자’에 대한 감염병 관리체계를 관리‧감독하는 부처는 모호하다. 국민의 건강과 보건을 위한 정책 및 사무를 관장하는 보건복지부는 ‘산업안전보건법’이 고용노동부 법령이기 때문에 의료기관에 대한 관리‧감독 권한이 없다는 입장이다.

복지부 질병정책과 관계자는 “법에 따르면 의료기관이나 보육기관은 감염병을 전파하지 않아야 하는 의무가 있다. 감염이 되는 이유는 기관에서 의무를 다하지 않았거나, 예방접종 효과가 100%가 아니기 때문이다”라며 “그런데 산업안전보건법은 고용부 법이다. 의료기관에서 의무를 다하고 있는지 아닌지, 했는지 안 했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해당 부처에서 관할할 것”이라고 일축했다.

감염병에 대한 방역·조사·검역·시험 등을 시행하는 질병관리본부도 같은 입장을 보였다. 김유미 예방접종관리과장은 “질본에서는 정기적으로 홍역 등 감염병 예방접종에 대해 권고를 하고 있다. 문제는 MMR 2차 접종이 1997년부터 시작됐다. 국가예방접종이 전산화된 시점은 2012년 이후다”라며 “그러니 1차만 맞은 사람, 맞지 않은 사람에 대한 파악이 어렵다”고 답했다.

김 과장은 “또 본부는 예방접종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의료기관에 예방접종을 강제할 방법이 없다. 다만 의료기관이나 병원협회 측에 권고 공문을 보내고 있다”며 “이번 홍역 사태를 계기로 의료진들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고용부는 의료기관 사업주에 대한 관리‧감독 권한이 있다고 밝히면서 주무 부처인 복지부에도 구체적인 프로세스가 존재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해당 법령은 바이러스, 곰팡이 등 병원체 노출 위험이 있는 작업장과 근로자가 대상이다. 고용부에서 이에 대해 관리‧감독을 하는 것이 맞고, 정기적으로 혹은 사고가 발생했을 때 조사를 한다”며 “그러나 모든 사업장을 조사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특히 새롭게 의료기관이 개설된다고 해서 조사를 나가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의료인은 채용 시 건강검진를 해야 한다는 등 별도의 관리 규정이 있다. 의료기관 내 의료행위, 운영관리에 대해서는 주무 부처인 복지부에서도 프로세스가 따로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전했다.

◇2014년 이후 국내 홍역 환자 거의 없어…“지금이라도 백신 맞아야”

한편 ‘홍역’에 대한 의료인의 관심 저하도 이번 사태에 기여를 했다는 지적도 있다. 2014년 우리나라가 홍역 퇴치 국가로 인정받은 이후 ‘홍역’에 대한 의료인의 관심이 떨어지고, 이에 따라 대처도 미흡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임정혁 교수는 “지금 홍역이 이슈가 되고 있는 이유는 우리나라에서 홍역 환자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7년에는 7명, 2016년에는 18명밖에 없었다. 이는 의료진이 실제로 본 홍역 환자가 거의 없다는 얘기”라고 밝혔다. 그는 “또 예방백신이 있기 때문에 (홍역에 대해) 크게 인지하지 않았을 것이다. 증상도 발열, 기침, 콧물 등 비특이적이기 때문에 진단도 어려웠을 것이고, 그런 시점에서 감염 환자가 확 퍼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임 교수는 “바이러스라는 것이 감염돼도 증상이 나타나는 것은 면역력의 차이다. 홍역임을 모르고 지나간 사람도 있을 것”이라며 “지금 모든 사람에게 항체가 있는지 검사하는 것은 무리수일 수 있다. 현 단계에서는 12개월 미만의 영아라도 예방접종을 실시하고, 기침예절 등의 감염 전파를 차단하는 노력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유수인 기자 suin92710@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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