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북미정상회담’ 기대만큼 진한 아쉬움

기사승인 2019-03-05 0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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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북미정상회담’ 기대만큼 진한 아쉬움“앞으로 잘 풀려서 북한에도 올라가면 좋을 텐데.”

2차 북미정상회담을 하루 앞뒀던 지난달 28일, 점심에 만난 유통업 관계자와의 식사 화제는 자연스레 정상회담에 대한 이야기로 흘렀다. 반신반의해도 그 역시 정상회담에 많은 기대를 드러냈다. “두 정상이 서명만 하면 되지 않겠나.”라고 긍정적 전망으로 이야기를 맺었지만, 이게 웬걸 ‘핵 담판’은 결렬로 끝났다. 모두의 아쉬움 섞인 탄식이 안 봐도 들리는 듯했다. 

며칠 전만 해도 김정은이 롯데센터 하노이에 오르네, 삼성 공장을 시찰하네 등 산업계는 물론 언론들도 핑크빛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이른바 '하노이 선언' 기대감으로 베트남 내의 한국 기업의 인지도도 오르는 ‘하노이 특수’도 일었다. 더 나아가 70년의 적대관계가 끝나고 앞으로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것 아니냐는 기대도 솔솔 피어났었다. 

하지만 두 차례의 만남으로 그간의 세월을 봉합하기엔 모자랐던 모양이다. 양 정상은 추후 협상의 여지는 남겨 놓은 채 하노이를 뒤로하고 떠났다. 물론, 북미회담 그 자체만 해도 큰 성과가 아니었으랴. 트럼프를 웃으며 보내는 김정은의 미소는 앞으로의 가능성을 시사했다.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 한 켠엔 여전히 지울 수 없는 큰 아쉬움이 남았다. 

이번 회담으로 남북 경협 활성화는 물론, 북한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는 것 아니냐는 기대가 컸기 때문이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이 재개되는 것은 물론, 남북의 철로가 이어지면 그 시너지는 어떤 효과를 가져올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뛴다. 물론 북한은 진정성 있는 비핵화를 약속하고, 미국은 이에 따른 제재 해제, 경제 지원을 가정했을 때의 이야기다.

현재 국내 산업계는 큰 위기를 맞고 있다. 보호무역 기조 속에 수출은 맥을 못 추고 있고, 줄어드는 인구에 앞날은 예측조차 어렵다. 이런 상황에 ‘통일’에 거는 기대는 당연할지 모른다. 이념, 민족 등 정치적 구호를 걷어내고 미래 지향적 측면에서 보면 통일은 혁신의 기회기 때문이다. 2500만 인구의 신시장이 열리고, 한국은 섬에서 벗어나 유라시아 대륙과 연결되어 동북아의 허브로 거듭날 수 있다. 

생각해 보라, 러시아와 중국을 접하고 있는 원산이 국제도시로 발전하고, 그곳에 호텔과 면세점이 들어서고, 평양과 주요 도시엔 마트와 백화점이 북한 주민들로 붐빈다. 기차를 타고 북한을 거쳐 세계로 여행을 가는 국민들, 국내의 관광, 물류, 유통 등 산업 전반이 호황을 누리고, 한반도가 한 차원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물론 이런 핑크빛 전망에 대해 회의를 품는 시각도 많다. 남북한 통일 비용이 10년에 걸쳐 최소 2조 달러(2134조원) 이상이 될 것이란 추정도 있다. 여기에 남북의 정치적 상황만 고려하더라도 통일로 가는 길은 그리 순탄치 않아 보인다. 해결이 불가능해 보이는 갈등도 산적해 있을뿐더러 이는 앞으로도 큰 불씨일 것이다. 

하지만 갈등과 비용 등을 이유로 통일 자체를 부정하는 일은 발전적이지 못하다. ‘지금도 잘 사는데, 왜 통일을 하나’라는 말은 근시안적 시각이다. 과연 작금의 우리가 누리는 풍요는 과연 영원할 것인가. 현실을 보면 그렇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20년 30년 뒤에는 인구 절벽이 오는 데다, 성장 동력은 점점 꺼지고 있다. 한국은 한반도 남쪽의 섬으로 쪼그라들지 모른다. 

현재의 풍요는 혁신과 발전을 지속해 얻은 과실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통일은 향후 100년을 준비하는 현 세대의 혁신 과제다. 향후 몇 년간의 골든타임을 활용해 ‘혁신’ 하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헬조선이 펼쳐질지 모른다. 방관자적 태도는 도움이 안 된다. 저 멀리 떠나지 않는 이상, 통일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코앞에 마주한 일이기 때문이다. 

처음 김 위원장이 기차를 타고 베트남에 간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 기차를 타고 해외를 간다는 것을 나는 그동안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던 것이다. 서울역에서 열차를 타고 베트남을 가는 것도 과연 가능한 일일까. 나는 그동안 섬에 살고 있었는지 모른다. 분단된 현실은 나의 사고까지 지배하고 있었다. 

한전진 기자 ist1076@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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