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화의 인문학기행] 이탈리아, 스물아홉 번째 이야기

기사승인 2019-03-06 00:00:00
- + 인쇄

판테온 신전 구경을 마치고 트레비 분수로 이동했다. 이동하는 길에 콜론나 광장(Piazza Colonna)을 지난다. 광장 가운데에는 대리석으로 만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원주가 서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승전을 기념하기 위해 193년에 건설된 것으로 높이 10m의 기초를 쌓고 세운 3m 높이의 기단 위에 직경 3.7m의 카라라 대리석 27~28개를 쌓아 만들었다. 원주의 높이만 29.72m에 달한다. 1589년에 복원했을 때 기초 가운데 3m 가량은 지하에 묻히게 됐다.

원주의 외벽에 나선형으로 새긴 부조들은 166년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지휘한 다뉴브 혹은 마르코마니 전쟁(Danubian or Marcomannic wars)과 그 승리를 기록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166년부터 180년까지 로마제국의 동북쪽을 흐르는 다뉴브강 유역에 살고 있던 마르코마니(Marcomanni)와 콰디(Quadi) 등 게르만족과 이아지게스(Iazyges)라는 사르마트족과 일련의 전투를 치렀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전투를 치르는 동안 ‘명상록’을 쓰기 시작했다. 원주 위에 서 있는 바오로 성인의 청동상은 교황 식스투스 5세(Pope Sixtus V)의 명령으로 1589년에 세운 것이다. 트라야뉴스 원주 위에 세워진 베드로 성인의 청동상과 맥을 같이하기 위해 조성된 것이다.

콜론나 광장에 있는 분수는 이탈리아 건축가 자코모 델라 포르타 (Giacomo Della Porta)의 설계에 따라 조각가 로코 로시(Rocco Rossi)가 1575년에서 1577년 사이에 건설했다. 델라 포르타는 1561년 교황 비오 5세가 시작해 1570년 교황 피오스 5세가 끝낸 아쿠아 베르기네(Acqua Vergine) 수로 재건을 마친 뒤 16개의 분수대를 세웠는데 그 가운데 하나다. 트레비 분수와 같은 수로에 속한다. 분수대의 수원이 해발 67피트에 불과해서 물을 높이 올릴 수가 없었다. 1830년에 복원된 것으로 아킬레 스토키(Achille Stocchi)가 조각한 한 쌍의 돌고래를 수조의 양쪽에 배치했다.

광장 북쪽에 있는 건물은 1580년에 완공돼 1659년부터 치기(Chigi) 가문에서 사용하던 치기궁전(Palazzo Chigi)이다. 1878년부터는 오스트리아-헝가리 대사가 살다가, 1916년 이탈리아 정부에 넘어갔다. 지금은 이탈리아공화국 총리관저로 사용되며, 2018년 6월 1일부터 주세페 콩테(Giuseppe Conte) 총리가 살고 있다. 

치기 궁전의 맞은편에는 예전에 교황청 우체국으로 사용되던 페라욜리 궁전(Palazzo Ferrajoli)이 있고, 그 옆의 작은 교회는 산티 바르톨로메오 알레산드로 데이 베르가마스(Santi Bartolomeo ed Alessandro dei Bergamaschi, 베르가모 주민들의 베르가모의 사도 바돌로매)교회다. 광장 서쪽에 있는 시계탑이 있는 건물은 팔라쪼 베데킨드(Palazzo Wedekind)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사원이 있던 자리로 1871년부터 이탈리아 교육부 (Ministry of Education)가 사용하고 있다.

콜론나 광장에서 조금 가면 트레비분수(Fontana di Trevi)가 있다. 분수의 오른쪽에 있는 골목길을 따라가다 보면 간판도 없는 작은 가방가게가 있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공주가 긴 머리를 단발로 자른 이발소였다고 한다. 

3개의 도로(tre vie)가 만나는 곳에 있다고 해서 트레비라는 이름을 얻은 분수는 높이 26.3m, 넓이 49.15m로 로마에서 가장 큰 바로크식 분수대이다. 동시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분수 가운데 하나다. 트레비 분수가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게 것은 ‘로마의 휴일’을 비롯해 우리나라에는 ‘애천’이라는 제목으로 개봉된 영화 ‘Three Coins in the Fountain(분수 속의 동전 3개)’ 등 수많은 영화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트레비분수가 있는 장소는 고대 로마의 수도체계 가운데 하나인 아쿠아 비르고(Aqua Virgo)의 말단에 해당한다. 기원전 19년 로마의 기술자들은 한 처녀의 도움으로 도시에서 13㎞ 떨어진 곳에서 발견한 샘으로부터 이곳까지 물을 끌어올 수 있었다. 1453년 교황 니콜라스 5세의 명에 따라 수로를 재건했다. 

1629년에는 교황 우르바누스8세가 건축가 지안 로렌초 베르니니(Gian Lorenzo Bernini)에게  분수대의 수리를 의뢰했지만, 교황의 사망으로 중단됐다. 1730년에 이르러 교황 클레멘트 12세가 공모를 통해 분수대를 재건키로 했고, 니콜라 살비(Nicola Salvi)의 설계가 선정돼 1732년에 공사가 시작됐다. 1751년 살비가 사망한 뒤로는 주세페 판니니 (Giuseppe Pannini) 등이 참여해 완성했다.

분수는 로마에서 동쪽으로 35㎞ 떨어진 티볼리(Tivoli)에서 채석된 석회암으로 만들어졌다. 분수대 중앙에는 두 명의 트리톤이 끌고 있는 2마리의 말을 맨 조개전차 위에 오케아누스(Oceanus)가 우뚝 서 있다. 두 명의 트리톤 가운데 왼쪽은 격동의 바다를 오른쪽은 잔잔한 바다를 상징한다.

오케아누스는 우라노스와 가이아 사이에서 태어난 티탄 12남매 중 장남으로 대양과 대하(大河)의 신이다. 역시 우라노스와 가이아 사이에 태어난 테티스와의 사이에서 나일강의 신 네일로스 등 3000명의 아들(포타모이)와 이승과 저승 사이를 흐르는 강 스틱스의 님프 엘렉트라 등 3000명의 딸(오케아니데스)을 낳았다.

분수의 배경에 서 있는 건물은 폴리궁전(Palazzo Poli)인데, 트레비분수와 같이 조성된 것은 아니다. 분수가 완성된 다음 분수와 조화를 이루도록 건물 가운데 분수대를 향한 쪽만 다시 지었다. 오케아누스의 뒤쪽으로 아치형의 개선문을 뒀고, 그 양편으로 코린트양식으로 장식한 두 개의 기둥을 2층에 해당하는 높이로 세웠다. 아치 양편에 있는 벽감에는 각각 물을 쏟아내는 항아리를 가진 풍요의 신과 뱀이 마시는 컵을 들고 있는 건강의 여신이 서있다.

트레비분수에 동전을 던지면 이곳을 다시 찾아온다고 한다. 동전을 던지는 것에도 법칙이 있는 모양이다. 오른손에 든 동전을 왼쪽 어깨 너머로 던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분수대에 던져지는 동전이 자그마치 하루 평균 3000유로로 2016년에는 150만 유로에 달했다고 한다. 분수대에서 수거된 동전은 고대 유적을 복원하는데 사용하거나, 혹은 로마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슈퍼마켓 보조금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트레비 분수대에 동전을 던지는 행동은 1954년에 발표된 영화 ‘애천’에서 등장한 뒤의 일이다. 영화가 가지는 영향력이 그만큼 크다는 이야기겠다. 세상에 볼 게 너무 많아서 로마에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싶기도 해서 필자는 동전을 던지지 않았는데, 아내도 필자와 함께가 아니라면 올 일이 없을 것 같다며 역시 동전을 던지지 않았다. 다만 큰 아이는 아직 젊으니 언젠가는 오지 않을까 싶어 동전을 던졌다.

동전 던지기를 한 다음 분수대 앞에 있는 작은 교회를 구경했다. 트레비의 빈센초와 아나스타시오 성인의 교회(Santi Vincenzo e Anastasio a Trevi)다. 마르티노 롱기(Martino Longhi)의 설계로 1646년에 짓기 시작해 1650년에 완공된 바로크 양식의 건물이다. 

전면에서 보면 아래층에 10개, 2층에 6개의 코린트양식 기둥을 촘촘하게 세운 것이 특징이며, 천사들이 받쳐 들고 있는 문장과 추기경의 모자가 볼만하다. 내부에는 동방정교의 특징인 아이콘으로 장식된 제대를 볼 수 있다. 또한 식스투스 5세부터 레오 13세에 이르기까지 22명에 달하는 교황의 심장을 방부처리해 보관하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트레비 분수와 덤으로 교회도 구경한 다음에는 교회 앞 길모퉁이에 있는 ‘바 트레비’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셨다. 설탕을 듬뿍 넣은 이탈리아식 에스프레소를 마시면 진한 쓴맛과 단맛이 어우러지면서 정신이 번쩍 든다. 다만 양이 너무 작아 홀짝 마시다보면 잔까지 목을 넘기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약속 시간에 가까워지면서 대부분 일행들이 모여들었는데, 딱 한 쌍만 나타나지 않았다. 이 분들은 자유시간이면 어디를 구경하는지 매번 늦는다. 늦게 나타나면서도 서두르는 기색도 없다. 그런데 늦게 나타나서는 꼭 시계를 본다. 카프리섬에서 나폴리로 나와 버스를 탈 때 양해도 구하지 않고 필자의 자리를 차지했던 사람들이다.

늦게 온 사람들을 기다려 다음에 구경할 장소인 스페인광장으로 갔다. 스페인광장은 로마에서 가장 유명한 광장 가운데 하나다. 스페인 대사관 앞 광장에 로마를 지배했던 스페인의 카를로스 5세 시절을 기념하기 위해 스페인계단과 배의 분수가 만들어지면서 스페인광장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글·양기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진료심사평가위원회 평가수석위원

[양기화의 인문학기행] 이탈리아, 스물아홉 번째 이야기
1984 가톨릭의대 임상병리학 전임강사
1991 동 대학 조교수
1994 지방공사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1998 을지의대 병리학 교수
2000 식품의약품안전청, 국립독성연구원 일반독성부장
2005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2009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상근평가위원
2019 현재, 동 기관 평가책임위원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