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예고된 의료대란, 막을 순 없나

기사승인 2019-03-0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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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예고된 의료대란, 막을 순 없나

의사들이 투쟁의 끝이라는 ‘파업’에 준하는 집단행동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현 보건의료 제도와 환경 속에서 대한민국의 의료가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으면 붕괴될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실제 대한의사협회가 지난 5일 발표한 의사대상 설문조사에 따르면 의사들의 96.2%(2만1072명)가 현 보건의료 제도와 환경에 문제가 있다고 봤다. 심지어 67.5%(1만4779명)는 현 체계 하에서 의료가 붕괴될 것이라고 응답했다. 

그리고 응답자 2만1896명 중 72.4%인 1만5849명은 문제해결을 위해 투쟁과 대화를 병행해야하지만, 63.2%인 1만3824명은 투쟁을 해야 한다면 집단휴진과 같은 단체행동을 통해 의사들의 의지를 강하게 보여줘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단순한 말만은 아닌 듯하다. 투쟁에 참여하겠냐는 물음에 75.7%(1만6583명)는 동참의 뜻을 밝혔다. 지금은 참여의사가 없지만 진행상황에 따라 참여할 수도 있다는 응답도 20%(4376명)였다. 

상황이 악화돼 이들이 모두 투쟁에 참여할 경우 전국 13만 의사들 중 15%가 넘는 2만여 의사들이 임상현장에서 손을 놓게 된다. 이는 지역의료의 붕괴와 같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응답자의 77.7%가 1, 2차 의료를 책임지는 개원의사이거나 봉직의사이기 때문이다.

의료대란이 예고된 셈이다. 환자는 문을 연 의료기관을 찾아 다녀야하고, 문을 연 종합병원과 대형병원으로 환자들이 몰려들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들 병원에서도 의료진의 25% 가량이 손을 놓게 돼 몰려드는 환자를 모두 수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하지만, 정부는 수수방관만 하고 있다.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따른 환자피해가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의사협회의 행동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극단적으로는 의료대란이 없을 것이라며 ‘낙관’하는 듯하다.

복지부 관계자는 “의사들이 집단휴업 등의 단체행동을 하는 것은 의사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이며 의사협회이 집단휴업을 주도하는 등의 행위를 할 경우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뒤따르지 않겠느냐”는 말을 하기도 했다. 섣불리 집단행동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문제다. 그리고 비교된다. 국민의 피해가 예상되는 사안을 두고 정부가 안일하게 판단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더구나 지난 카플허용을 둘러싼 택시들의 파업, 그로 인한 교통대란에 대응했던 모습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다. 실망스럽기까지 한다.

의사 편을 드는 것은 아니다. 분명 의사는 환자를 앞에 두고 개인의 이익을 앞세워서는 안 되는 이들이다. 숭고하다고까지 표현되는 그들의 행위를 존중하고 의무를 다 할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기 때문일 뿐이다. 

분명 환자와 국민의 불편을 야기하는 집단행동은 올바른 방식이 아니다. 그러나 이들이 1년 동안 3번이나 거리로 뛰쳐나오고, 처벌을 두려워하지 않고 손해를 감수하며 병원의 문을 닫으려는 이유를 한 번은 곱씹어 봐야하지 않을까. 나아가 정부의 책무가 국민의 주머니사정을 이유로 국민의 한 사람이기도 한 의사를 옭죄고 억누르지는 않는지도 고민해봐야 할 일이다.

적어도 예상되는 국민의 피해를 정부가 손 놓고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더구나 보건의료정책의 의사결정구조에서 한 집단의 대표가 10개월간 참여하지 않고, 해당 단체가 전면적인 대화거부를 선언했음에도 복귀만을 촉구하는 정부의 태도나 그 배경에 문제가 없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의사도, 정부도 생명보다 소중한 가치는 없다고 단언한다. 그렇지만 정작 작금의 사태가 발생하기까지 그들이 생명보다 높은 가치를 둔 것이 정말 없었을까 반문하고 싶다. 생명에 지장이 없는 응급상황이 아니니 괜찮을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길 바란다. 대통령이 공약한 더불어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나라, 사회가 만들어지길 기원해본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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