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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의료전문가 탈 쓴 키보드워리어들과 윤리

한의사라 지병치료 못했으니 제도폐지하라?

오준엽 기자입력 : 2019.03.17 12:00:00 | 수정 : 2019.03.17 11:37:56

2019년 3월 10일 오전 1시경, 대한한의사협회 김필건 전(前) 회장이 만5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이를 두고 한 흉부외과 전문의가 자신의 사회연결망서비스(SNS)에 확인된 사실은 아니라는 전제를 붙이며 “그는 한방제도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된 희생자일 수 있다. 정말 그랬다면 그는 정치권이 이 땅에 한의사제도를 존치시킴으로써 희생된 억울한 피해자일 수 있다”고 서술했다. 이어 “한방제도는 속히 없어져야 할 제도다. 자신도 피해자인 그들이 매일 더 많은 피해자를 양산시키고 있는 공식적인 사기제도가 한방면허 인정제도”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가 이 같은 결론을 도출한 근거는 김 전 회장이 한의사라는 직업과 협회장이라는 직위에서 받은 주위의 시선이다. 현대의학을 이용하는데 직업과 직위로 인해 직‧간접적으로 제한받아 지병인 심장질환을 적절히 관리하고 대처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논리다. 실제 그는 “의술이 발달된 현대사회에서 이미 알고 있는 심장병으로 50대의 나이에 조기 사망하는 경우는 그리 흔하지 않다”며 김 전 회장의 재직 당시 ‘평소 의료를 양방의료라 폄하하던 한의사협회장이 정작 필요할 땐 현대의학을 이용했다’는 등의 비난과 구설에 올랐던 일들을 거론했다.

그리고 “의사라면 누구나 잘 알듯이 관상동맥협착질환은 스텐트 시술 한 번으로 완치되는 질환이 아니다. 꾸준한 추적관찰과 투약치료가 필요한 질병이다. 그래서 ‘병원치료 한 번 받는 것에 대해서도 대외적으로 눈치를 봐야하는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자신의 심장병 치료에 적극적이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 의사의 추론은 사실일까? 사실이라도 김 전 회장의 죽음과 한의사제도 폐지를 연결시키는 것이 논리적일까? 사실여부를 떠나 일반에 공개된 SNS에 이 같은 글을 올리는 행위가 적절한 행동일까?

의문에 앞서 해당 흉부외과 전문의의 글은 2가지 측면에서 크게 우려된다. 당장 가정에 가정을 더한 추론을 공개하며 자신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이를 사람들이 확정적으로 받아들이게 했다는 의심이 든다. 분명 흉부외과 전문의로 관상동맥협착증이나 급성심근경색 등 고인의 지병과 사망원인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갖고 있다. 하지만, 직접 진료를 하지 않은 의사가 환자의 평소 치료과정이나 태도를 알 수는 없다. 게다가 한의학적 지식이 전무하다면 그의 판단이나 추정은 일반인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오히려 지닌 지식에 근거한 편견이 심해질 수도 있다.

더불어 의료계에서 속칭 ‘오피니언 리더’라고 불리며 영향력을 발휘해온 인물이 타인의 죽음을 어떤 식으로든 자신에게 득이 되는 방향으로 이용하려했다는 윤리적인 점도 우려스럽다. 그가 김 전 회장의 죽음을 한의사제도의 폐지를 위한 도구로 활용한다는 것은 자신의 영향력을 높이려는 의도인지 여부를 떠나 의사들의 한의사제도에 대한 반감을 자극하고 정책과 제도, 법에서 정한 바를 부정하려는 시도로 풀이될 수 있다. 

그의 발언이 없었어도 의료계와 한의계는 현재 극렬한 직역갈등을 겪고 있다. 그것이 빼앗지 않으면 뺏긴다는 소유의 문제이든, 환자안전이나 과학적 검증의 문제이든 의사는 한의사를 ‘의료인’이 아니라고 부정하기까지 한다. 이 흉부외과 전문의의 말처럼 한의사제도를 폐지해야한다는 주장도 심심찮게 들린다. 이 같은 상황에서 그의 발언이 윤리적이고 전문가적 견해인지, 오피니언 리더이자 영향력을 발휘해온 인물로 적절한 행동이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불과 2년여 전, 한 배우의 행동을 두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SNS 상 해당 배우가 ‘경조증’이 의심된다는 소견을 밝혀 논란이 된 적이 있다. 해당 사건으로 그간 유명세를 타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소속 학회에서 제명됐고, “자신이 직접 진료하지 않은 인물의 정신적 상태를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은 비윤리적 행위”라고 사과의 글을 남겼다. 이후 진료과정에서의 부적절한 행동이나 불법에 대한 조사와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이 외에도 한 판사가 개인의 생각이라며 SNS 상 특정 사안에 대한 입장을 밝힌 것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우리사회는 지금 SNS가 개인의 사적공간인지에 대한 논란에 직면해있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온라인 공간의 특성이 있다. 분명 SNS는 사적 영역에 속한다. 하지만 온라인 공간은 간단한 조치만으로 지극히 개인적 생각과 가치관이 일반 대중에게 공개되고 공유될 수 있다. 나아가 사회적 논란을 야기하거나 타인의 자유나 행동을 침해하고 제한할 수도 있다. 특히 말을 한 사람이 타인의 사고나 생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전문가 혹은 오피니언 리더라면 더 큰 문제가 될 것이다.

분명한 것은 SNS가 책상 서랍 속 일기와는 다르다는 점이다. 온라인 공간이 사고(思考: 생각)의 쓰레기장이 아닌 유용한 소통의 공간이 될 수 있도록 스스로가 조심하고 관리해야할 것이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이 있다. 많이 알고, 경험할수록 고개를 숙이듯 겸손하고 자신을 낮춰야한다는 뜻이다. 학창시절 ‘타산지석(他山之石)’이란 말도 배운다. 과거의, 타인의 경험이 밝은 미래를 열 수 있는 주춧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하지 않을까 한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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