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PV, 암 될 때까지 기다리라고요?”...‘꿈의 치료제’ 찾는 환자들

HPV, 2년 내 90% 자연치유되지만 10%는 고위험군...치료제 없고 예방이 최선

기사승인 2019-03-21 0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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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PV, 암 될 때까지 기다리라고요?”...‘꿈의 치료제’ 찾는 환자들

“자궁경부암이 생활습관 때문에 발병하는 병인 줄 알았어요. 부실한 성교육의 피해자인 거죠.”

자신을 인유두종바이러스(HPV) 보균자라고 밝힌 김영희(가명, 24세)씨는 "그 누구도 자궁경부암, 자궁이형성증, 곤지름, 콘딜로마가 성관계와 상관관계가 있는 지 알려준 사람이 없었다. 결국 HPV 보균자라는 좌절감과 치료의 고통스러움을 감내하면서 살아야 한다”며 “섹스한 벌을 받는 기분”이라고 토로했다.

20일 의료계에 따르면, 최근 인유두종바이러스(HPV) 감염에 대한 불안이 20대 여성 환자들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HPV 감염 타입을 알아보기 위해 산부인과를 찾는가 하면, 바이러스의 활성도를 측정하는 흔치않은 검사를 받기위해 병원을 전전하기도 한다.

HPV로 인한 질병 위험이 윗세대보다 높을 것이라는 불안 때문이다. 이들 환자들은 개방적인 성문화로 인해 부모세대보다 이른 성관계를 경험하고, 비교적 어린 나이에 HPV에 감염된 젊은 세대다.

대개 성접촉을 통해 전파되는 HPV는 자궁경부암, 항문암, 질암, 외음부암, 콘딜로마, 곤지름, 사마귀 등을 일으키는 원인 바이러스다. 성생활을 하는 여성이라면 일생에 적어도 한 번 이상 감염될 확률이 70~90%로 높지만 아직까지 마땅한 치료제는 없다. 콘돔 사용과 백신 접종으로 예방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러나 성에 개방적인 사회 분위기에 비해 제대로 된 성교육은 받은 적이 없다는 것이 이들의 항변이다. 이함성 여성건강권수호협회 활동가는 “HPV로 겪는 고통에 비해 교육이 너무나 부족했다”며 “학교나 병원에서는 자궁경부암이 성병임을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고, 피임뿐만 아니라 HPV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반드시 콘돔을 사용해야 한다는 점도 교육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국내 콘돔 사용률은 11%(2015년 기준)로 저조한 편이다.

아예 ‘꿈의 치료제’를 찾아 나서는 환자도 있다. HPV를 치료하는 공인된 치료제는 없지만, 바이러스에 감염된 상황에서 검진결과만 기다리는 것이 불안하다는 이유다. 면역력을 높여 자연소멸을 꾀하는 면역증강제제나 한약 등에 관심이 쏠린다.

한 대학병원 산부인과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주민수(가명, 29)씨는 “병원에 있으면서 자궁경부에 레이저 치료를 받고, 조금 지나면 또 다시 오셔서 다른 부위를 잘라내기를 반복하는 고위험군 환자 분들을 종종 본다. HPV가 대부분 자연소멸된다고 하지만 고통받는 환자가 생각보다 많다”며 “얼마 전 26살인 동생도 자궁이형성증 2기 진단을 받았다. 작년 9월 검진을 받았을 때만해도 음성이었는데 3개월 만에 우연히 한 검사에서 이런 결과가 나와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주씨는 러시아에 HPV치료제(알로페론)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조만간 동생과 러시아를 방문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 치료제는 임상 기준이 다른 러시아 등 일부 국가에서만 제한적으로 판매된다. 그는 “치료제가 없는 상황에서 심각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보다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는 심정”이라고 했다. 

HPV 감염이 모두 질병으로 발현되는 것은 아니다. 감염자의 90%는 특별한 치료 없이도 2년 이내에 자연적으로 치유된다. 다만, 알려진 것만 100여종이 넘는 HPV 중 백신을 통해 예방할 수 있는 바이러스는 9가지(6·11·16·18·31·33·45·52·58번, 가다실 9가)에 그친다. 일부 고위험 바이러스에 감염된 10%가량은 자궁경부암 등 위험이 높다. 2년 주기의 국가암검진을 꾸준히 받고, 고위험군일 경우 6개월에 1번씩 추가 검진을 받는다면 암의 진행을 막을 수 있다고 의료계는 조언한다.

이은실 순천향대서울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바이러스를 없애는 치료제는 없지만 HPV 감염자의 90%는 자연치유가 된다. 또 감염이 되었더라도 세포자체의 면역이 좋으면 바이러스가 증식되지 않도록 막아낼 수 있다”며 “나머지 10% 고위험 환자도 치료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정기검진을 통해 세포이상단계에서 암의 진행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HPV 감염은 콘돔으로 막을 수 있다. HPV종류가 많아서 한 유형이 자연소멸하더라도 나중에 또 다른 유형이 감염돼 문제가 나타날 수는 있다. 때문에 성병을 예방하기 위해서 콘돔을 사용해야한다”며  “9가지 고위험 유형은 백신 접종으로도 예방할 수 있다. 최근 우리나라도 만 12~13세 여아를 대상으로 자궁경부암 국가백신접종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미국질병관리본부는 남자아이도 접종할 것을 권한다”고 전했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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