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인터뷰] 유준상의 새로운 페이지

유준상의 새로운 페이지

기사승인 2019-04-12 07: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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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준상에겐 서른 권의 일기장이 있다. “배우는 일지를 써야야한다”는 대학 은사의 말에 따라, 스무 살 때부터 매해 한 권씩 써내려간 인생의 기록들이다. 무대에 오를 때마다 공연 일지도 적는다. 매회 공연 대본에 그 순간의 느낌을 남겨 놓는다. 인간 유준상과, 앞으로도 연기할 배우 유준상을 위해서다.

KBS2 수목극 ‘왜그래 풍상씨’ 종영 후 학동로 한 카페에서 만난 유준상은 드라마 작업을 마치고 인터뷰를 하는 것도 일기를 쓰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자신만의 인터뷰 지론을 펼쳤다. 작품에 대한 자신의 감상 등을 기록으로 남겨 놓는 것이 비슷하다는 설명이다.

유준상은 ‘왜그래 풍상씨’에서 주인공 이풍상 역을 맡았다. 이풍상은 동생을 위해 한평생 희생해온 맏형이다. 성인이 되기 전부터 가장노릇을 하며 사남매의 뒤치다꺼리를 하다가, 끝내 병에 걸리는 기구한 인물이다. 유준상은 자칫 답답해 보이기만 할 수 있는 ‘풍상씨’를 호소력 있게 그려냈다는 평을 받는다.

시청률 20%를 넘기며 큰 사랑을 받은 ‘왜그래 풍상씨’는 유준상에게 어떤 의미로 남을 작품일까. 처음 촬영에 돌입할 때 ‘유준상의 인생작이 될 것 같다’라는 스태프의 말을 반신반의했다는 유준상은 “마지막 장면을 촬영하며 그 말이 맞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고백했다.

‘왜그래 풍상씨’가 유준상의 인생작이 된 것엔 문영남 작가의 공이 크다. 유준상은 “문 작가님의 대본이 정말 재미있었다”며 “이 이야기가 잘 전달된다면, 많은 분들이 좋아하리란 확신이 있었다”고 귀띔했다.

“촬영하면서는 우리 드라마가 답답하다고 욕먹는 줄도 몰랐어요. 스태프가 이야기해줘서 알았죠. 하지만 우리의 이야기가 시청자에게 정확히 전달되는 지점이 올 것이란 믿음이 있었어요. 역시 그런 순간이 있었고요. ‘풍상씨’는 사람이 삶의 끝으로 떨어졌을 때, 어떠한 선택을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였던 것 같아요. 풍상은 병에 걸린 후 동생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요. 그리고 동생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죠.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온다’는 마지막 편 풍상의 대사가 드라마의 핵심을 담고 있다고 생각해요.”

[쿠키인터뷰] 유준상의 새로운 페이지

유준상은 풍상이 드라마에서 반성을 하듯, 자신도 최근 반성을 한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지금껏 아이들이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교육했는데, 어느 순간 보니 아이들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는 설명이다. 유준상은 “그걸 깨닫고 아이들에게 ‘아빠가 미안하다’고 진심으로 사과했다”고 말했다.

“열심히 살고, 반성을 할 수 있는 사람이란 점은 풍상과 비슷한 것 같아요. 최근 아이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할 때, ‘풍상씨’의 장면들이 떠올랐어요. 사실 평소에 미안하다는 말보다 고맙다는 말을 더 자주하려고 해요. 그런데 공교롭게 풍상의 대사 중 ‘우리 미안하다는 소리하지 말고, 고맙다는 말은 서로 많이 하고 살자’는 것이 있어서 놀랐죠. 문영남 작가님이 알고 쓰신 것은 아닐 텐데 말이에요.(웃음)”

1979년생인 유준상은 반백이란 말보다 “새로운 한 살”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왜그래 풍상씨’는 반백에서 새로운 한 살로 건너오며 만난 작품이라 더욱 의미가 있다. 유준상의 새로운 페이지엔 ‘풍상씨’를 시작으로 많은 것들이 적힐 예정이다. 그는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을 막힘없이 설명해냈다.

“쉴 때도 무엇인가 계속 하고 있어요. 이미 너무 오래 그렇게 살아서 바꾸긴 어려울 것 같아요. 제 삶을 움직이는 원동력은 관객, 시청자예요. 무대에서 연기자 인생을 시작했기 때문에, 저를 지켜봐주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알아요. 제 연기를 계속 봐주시는 것이 저에겐 큰 힘이죠. ‘왜그래 풍상씨’처럼 좋은 이야기를 선택해서, 그것이 잘 전달돼 지금처럼 반응이 좋으면 정말 즐거워요. 그게 힘이에요. 이런 것들은 제가 가만히 있어서 되는 건 아니잖아요.”

인세현 기자 inout@kukinews.com / 사진=나무엑터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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