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지났지만 한국인 원폭 피해는 ‘현재진행형’

피해자 1·2세대 건강·경제상황 불안… 사회적 차별 극심해 피해 사실 숨겨

기사승인 2019-04-25 12:4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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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에 노출돼 피해를 입은 한국인들에 대한 첫 우리 정부 차원의 실태조사가 이뤄져 눈길을 끈다. 

지난 2017년 7월부터 시행된 ‘원폭피해자지원특별법’은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의 범위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원폭 투하시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있었던 자 ▲투하 후 2주 이내에 투하 중심지역 3.5km 내 있었던 자 ▲투하 후 사체처리 및 구호 등으로 방사능 영향을 받은 자 ▲당시 위 해당자가 임신 중인 태아 등. 

이번 실태조사도 특별법에 의거해 진행됐다. 관련해 보건복지부는 25일 ‘한국인원자폭탄피해자지원위원회’를 개최, 이 자리에서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결과는 충격적이다. 이미 70여 년 전 발생한 원폭 피해는 현재도 진행형이었다. 

원폭 피해자와 자녀들은 전반적으로 신체·정신적 불건강, 경제적 어려움, 사회적 차별 등을 경험하고 있었다. 피해는 2세들에게도 대물림됐다. 피해자 자녀(2세)들은 원폭 노출의 유전성에 대한 불안을 갖고 있었다. 

1972년 한국원폭피해자원호협회의 추정치에 따르면, 한국인 피해자 규모는 1945년 당시 약 7만 명으로, 이 중 4만 명이 피폭으로 당시 사망했고, 생존자 중 2만3000명이 귀국한 것으로 추정된다. 관련해 지난해 8월 기준 피해자로 대한적십자사에 등록되어 있는 생존자는 2283명이었다. 70대가 63%, 80대가 33%이고, 약 70%가 경상도에 살고 있었다.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은 비슷한 연령대의 일반인구집단과 비교해서 암이나 희귀난치성질환 등의 유병률이 대체로 높았다. 피해자들의 의료 이용이나 의료비 본인부담 수준도 일반인보다 높았다.   

70년 지났지만 한국인 원폭 피해는 ‘현재진행형’

특히 피해자 1, 2세 21명에 대한 한 심층 인터뷰 결과에서 이들은 신체·정신의 어려움을 갖고 있었다. 경제적 어려움과 함께 사회적 차별 등도 토로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선 피해자 1세대의 23%가 장애를 갖고 있었으며, 자가 평가 건강수준에서 51%가 나쁘다고 응답했다. 36%는 기초생활수급자였으며, 조사 대상 1세대의 월평균 가구 수입은 138만9000원 수준이었다.

2세대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8.6%가 장애를 갖고 있으며, 자가 평가 건강수준에서 25.7%가 나쁘다고 답변했다. 9.5%가 기초생활수급자, 조사대상 2세대의 월평균 가구수입은 291만 원 수준으로 나타났다. 

참고로 우리나라 35~74세 일반인의 장애인구 비율은 5.9%다. 전체 인구 대비 기초생활수급자 비율 3.5%이며, 2017년 기준 가구 월평균 소득 462만 원이다. 

1, 2세대 모두 사회적 차별을 받고 있다는 인식이 높았고 피해사실을 노출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었다. 피폭의 영향이 유전될 수 있다는 불안감으로 결혼이나 출산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들은 막연한 불안과 두려움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피해자 자녀 등의 피폭 영향에 대해 정부 차원의 역학조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기남 복지부 질병정책과장은 “조사 결과는 지금까지의 정책이 피해자 1세에 초점을 맞춰왔다면, 이제는 피해자 2세 등에 대해서도 국가가 실태를 파악하고 필요한 지원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아울러 “복지부는 올해 중 피해자 2세의 건강상태 및 의료 이용 실태 등에 대해 후속 조사를 실시, 보다 정교한 건강 실태조사의 정기적 실시, 피폭의 건강 영향 등에 관한 시계열 분석 체계를 구축해 나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한편, 복지부는 이번 조사에 대해 피폭의 영향 분석이 아닌 피해자들의 전반적 건강실태 파악 차원에서 실시한 것이고, 질병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양한 인구사회학적 요소들이 보정되지 않은 결과라는 단서를 달았다. 질병 발생이 피폭의 영향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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