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화의 인문학기행] 독일, 다섯 번째 이야기

기사승인 2019-04-25 1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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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말미를 얻어 쾰른 대성당의 주변을 돌아본 뒤에 다시모인 일행은 호헤거리를 지나 피슈마르크트(Fischmarkt)를 거쳐 점심을 먹으러 갔다. ‘높은 길’이라는 뜻의 호헤거리(Hohe Straße)는 쾰른 대성당에서 도이체(Deutze) 다리에 연결되는 실더거리(Schildergasse)에 이르는 680m 길이의 보행자도로이다. 

호헤거리의 이력은 로마의 CCAA이던 시절 카르도 막시무스(Cardo Maximus)로 거슬러 올라간다. 카르도는 고대 로마의 도시와 군단 주둔지에서 남북으로 나있는 도로를 의미한다. 특히 카르도 막시무스는 카르도의 중심이 되는 거리이다. 쾰른의 카르도 막시무스는 중심에 사원, 총독관저(Praetorium), 포럼 등이 자리해있고, 도로를 따라 사무실과 대장간을 비롯해 다양한 상점들이 들어서있다.

로마제국 시절 도시의 도로는 돌로 포장돼있었는데, 중세 초기까지 로마도로의 흔적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돌의 거리’라는 의미로 스트라다 라피데아(strata lapidea) 혹은 슈타인베그(Steinweg)라고 불렀다. 호헤거리는 지금도 명품가게들이 즐비한 쇼핑의 천국이 되고 있다. 

그 틈에 1896년에 창업해 4대째 내려온다는 메르체니히(Merzenich) 빵집이 있다. 인공첨가물을 사용하지 않고 수작업으로 빵을 만드는 전통 제빵기술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인지 빵을 사려는 사람들이 몰려있다. 메르체니히 빵집에서 빵을 사서 가게 앞에 있는 커다란 나무의 그늘 아래 있는 테이블에서 쉬면서 먹을 수도 있다. 

그 건너편에는 오리지널 오드 콜롱 4177(Original Eau De Cologne 4177)가게가 있다. 글록켄거리(Glockengasse) 4177번지에 있던 가게를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독일어로는 쾰르니쉬 바세르(Kölnisch Wasser)라고 하는 오드 콜롱은 ‘쾰른에서 온 물’이라는 뜻의 향수를 말한다. 

오리지널 오드 쾰롱은 이탈리아의 산타 마리아 마죠레 발레 비제조(Santa Maria Maggiore Valle Vigezzo)에서 온 조향사 조반니 마리아 파리나 (Giovanni Maria Farina)가 1709년 쾰른에서 처음 발매 한 감귤 향료이다. 레몬, 오렌지, 귤, 클레멘타인, 베르가모, 라임, 자몽, 붉은 오렌지 및 쓴 오렌지의 향을 70-90%)의 에탄올 베이스로 추출하여 섞은 다음 2-5%의 농도로 희석한 것이다. 

파리나가 1708년에 그의 형제 장 밥티스테(Jean Baptiste)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는 비가 내린 뒤에 핀 산수선화와 오렌지꽃 향기를 닮은 이탈리아의 봄날 아침을 연상시키는 향수를 발견했다”고 서술했다. 이어 개발한 향수에 새로운 고향 쾰른을 기념하기 위해 ‘오드 콜롱’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파리나가 만든 오드 콜롱은 당시 거의 모든 유럽의 왕실에서 사용했다고 한다. 오늘날 오드 콜롱 혹은 콜롱은 향수를 가리키는 일반용어가 됐고, 통상은 남성용 향수를 이른다.

세상의 모든 향기를 구분하고 기억할 수 있는 재능을 타고난 그루누이라는 천재 조향사의 삶을 통해 향수의 치명적 독성(?)을 이야기한 소설 ‘향수’의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향수는 사람을 도취시키고 매력적으로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라고 했다. 쥐스킨트의 소설이 믿기 어려운 이야기라고 하더라도, 향수는 분명 타인의 마음을 훔치는 마력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세상만사에는 좋은 점이 있으면 반대로 나쁜 점 또한 있어 균형을 맞추는 법이다. 향수 역시 완전무결하지 않을 수 있다. 

구시가지의 쇼핑거리를 떠나 수산시장이 있던 라인강가의 공원으로 이동했다. 쾰른의 수산시장(Fischmarkt)은 버터시장이 있는 린트가세(Lintgasse)와 역사적인 구시가지의 마우타가세 (Mauthgasse) 사이에 있었다. 쾰른의 수산시장은 1100년전 린트가세와 뮐렌가세 사이에 처음 들어섰다. 위대한 마틴 성인의 수도원에 속하는 건물이었을 것이다. 

북해에서 잡힌 생선들이 라인강을 따라 올라온 어선에 실려 수산시장 앞 부두에 내려졌을 것이고, 이른바 생선상자를 의미하는 카렌(Karen)에 담겨 공판됐다. 자연스럽게 카렌을 보관하는 건물과 생선을 판매하는 시장이 형성됐다. 12세기의 문헌에서는 이와 같은 유통의 흐름을 고려해 생선시장이라는 의미의 포럼 피시움(forum piscium)이라고 적었다. 13세기경의 수산시장은 마틴 성인 성당과 라인강변의 중세 성벽 사이에 들어섰다.

15세기에 이르기까지 쾰른의 수산시장에 유입된 생선들은 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3일 동안만 시민들에게 팔 수 있었다. 린트 거리의 소매상들은 공판장에서 사들인 청어와 연어를 팔았다. 건초시장(Heumarkt) 북쪽에서는 염장해 훈제한 생선을 팔았고, 구시장의 분수대 부근에서는 라인강에서 잡은 신선한 민물고기를 팔았다. 

구시장에 들어선 포장마차를 임대한 페쉬멩거(Feschmenger)라고 하는 남자 생선장수가 생선을 손질해서 팔았는데, 가재와 작은 생선을 파는 페쉬비에베른(Feschwievern)이라고 하는 여자 생선장수도 간혹 있었다. 

쾰른의 수산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청어내장을 염장한 것으로 네덜란드에서 들여왔었다고 한다. 쾰른의 수산시장은 유대인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유럽의 백인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떠맡았을 수도 있겠지만, 생선의 유통을 통해 많은 돈을 벌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14세기 무렵 네덜란드의 어민 빌럼 벵켈소어(Willem Beukelszoon)는 배위에서 청어의 배를 따서 내장을 꺼내고 머리를 자른 다음 소금에 절이는 방법을 고안했다. 항구로 돌아와 생선을 한 번 더 절이면 1년이 넘게 생선을 보관할 수 있어 네덜란드의 어업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키는 계기가 됐다.

유대인들은 이미 네덜란드의 생선 유통부분을 장악하고 있었다. 유대인들은 독일이나 폴란드에서 수입하던 암염으로 생선을 염장해 유통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고 그들이 전에 살던 이베리아반도에서 값싼 천일염을 수입해 북해에서 잡히는 청어를 절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 바람에 암염의 중개를 바탕으로 하던 한자동맹의 세력이 기울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 쾰른의 구시가지와 수산시장은 90% 가까이 파손됐다. 전후 복구과정에서 지붕이 뾰족한 옛날 모습으로 재건이 이뤄졌으며, 손상의 정도가 크지 않은 어시장의 집하장(Stapelhäuschen)도 있다. 오늘날 건물의 대부분은 식당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 식당에서 쾰른 지방의 명물인 쾰슈(Kölsch) 맥주를 한 모금 마실 기회가 없었던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강변을 달리던 도로는 1982년에 지하화됐고, 도이치(Deutz) 다리와 호헨졸레른다리(Hohenzollernbrücke) 사이의 강변에는 공원이 조성돼 라인정원(Rheingarten)이라고 한다. 옛날의 분수대와 놀이터가 만들어졌다. 뾰족한 지붕에 파스텔톤의 다양한 색깔로 벽을 칠한 건물들이 라인강과 어우러져 예쁜 풍경을 만들어낸다. 어느새 구름이 걷힌 라인공원에는 모여든 많은 사람들이 햇볕을 즐기고 있었다.

자유시간이 끝난 뒤 모여 점심을 먹으러 갔다. 무려 1318년에 창업하여 역사가 700년이나 되었다는 시온 양조장(Brauhaus Sion)이다. 처음에는 양조장으로 시작했던가 보다. 오늘날까지 여러 번 주인이 바뀌었지만, 처음에는 요하네스 브락사토르(Johannes Braxator)가 소유한 운터 타쉔마허(Unter Taschenmacher Nr. 5)라는 이름의 양조장에서 시작했다. 타쉔마허가 작은 찻잔을 만드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 같은데, 양조장 이름으로 맞는지 분명치 않다. 이 양조장에서 만든 맥주는 허브와 꿀을 섞은 메데비어(Medebier)였다.

참고로 독일에서 맥주를 처음 만든 것은 3000년도 넘은 옛날이라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지역마다 독특한 소주가 생산되던 우리나라처럼 독일에서도 지역마다 특색이 있는 맥주가 있다는 것이다. 2016년 기준 독일 전역에 흩어져 있는 맥주 양조장은 무려 1500개에 달하고, 맥주의 종류는 무려 5000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독일 사람들에게 인가가 높은 맥주로 밀맥 부문에서는 뮌헨의 바이젠비어(Weizenbier), 베를린의 베를리너 바이스(Berliner Weiß)를 꼽고, 라거 부문에서는 크롬바커의 필스너(Pilsner), 바이에른 지역의 헬레스(Helles), 도르트문트의 엑스포트(Export)와 함께 쾰른의 쾰쉬(Kölsch)도 포함된다. 독일 사람들과 맥주를 마실 때 꼭 기억해야 할 에티켓이 있다. 건배를 할 때는 같이 건배를 하는 모든 사람들과 각각 눈을 맞추면서 잔을 부딪쳐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프로스트(Prost)!’라고 외치는 것도 빠트리면 안 된다.

점심을 먹은 뒤 버스를 타는 시간에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구시가를 구경했다. 구시가에는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시 청사(Rathaus Köln)를 볼 수 있었다. 버스를 타러 가는 길이었기 때문에 멀리서 일별한 것이 전부다. 문서상으로나 건축자재면에서나 800년이 넘은 건물이라고 한다. 

30.0 x 7.6m 면적에 최대 9.58m 높이의 홀이 있는 건물은 1135년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된 이전의 건물을 대체하여 고딕양식으로 건립됐고, 1330년 무렵부터 한자동맹에서 유래한 한자살(Hansasaal)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던 까닭에 요즈음에는 살바우(Saalbau, 강당건물)이라고 부른다. 시청 건물부지는 475년까지 총독이 거주하던 프레토리움(Praetorium)이 있던 곳이다. 메로빙거왕조가 들어선 뒤에는 754년까지 왕궁으로 사용됐다가 8세기 무렵 지진으로 무너졌다.

높이 61m의 시청사 탑(Ratsturm)은 쾰른 길드의 결정으로 1407년부터 짓기 시작해 1414년에 완공됐다. 지하실과 5층으로 지은 탑은 주로 서류를 보관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됐다. 건물의 입구에 해당하는 르네상스양식의 로지아는 15m 길이의 2층 구조로 1569년에서 1573년 사이에 지어졌다.

글·양기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진료심사평가위원회 평가수석위원

[양기화의 인문학기행] 독일, 다섯 번째 이야기
1984 가톨릭의대 임상병리학 전임강사
1991 동 대학 조교수
1994 지방공사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1998 을지의대 병리학 교수
2000 식품의약품안전청, 국립독성연구원 일반독성부장
2005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2009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상근평가위원
2019 현재, 동 기관 평가책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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