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 인지 못하는데’…치료 거부하면 강제 못해

입력 2019-04-25 17:3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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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진주 조현병 환자 살인 사건 전조 등 닮은 꼴
전문가 “사법적입원제도 등 현행법‧제도 개선해야”

‘정신병 인지 못하는데’…치료 거부하면 강제 못해
최근 경남 진주와 창원에서 조현병 환자에 의한 살인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다.

일주일 간격으로 벌어진 이 사건들은 가해자가 조현병을 앓고 있었다는 점, 이 병으로 인한 피해망상‧환각 증세 등으로 주민들과 마찰이 잦았던 점 등 범행 전 징조가 닮아 있다.

특히 가해자들이 병원 치료를 스스로 거부하면서 병세가 악화돼 범행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관련법과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주일 새 창원‧진주서 조현병 환자 살인 사건 발생

지난 24일 오전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한 아파트 6층에 살던 75세 여성 A씨가 5층에 살던 18세 B군이 휘두른 흉기에 마구 찔려 숨졌다.

조사 결과 B군은 범행 1시간 전 A씨 집을 찾아갔으나, “돌아가라”는 A씨 말에 발길을 돌렸지만 1시간가량 A씨가 외출하기를 기다렸다가 흉기를 휘둘렀다.

A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다.

지난 17일 새벽 진주시내 한 아파트에서도 피의자 안인득(42)이 휘두른 흉기에 아파트 주민 5명이 목숨을 잃었다.

안인득은 범행 전 자신이 살고 있던 4층 집에 불을 지른 뒤 대피하는 주민들에게 흉기를 마구 휘둘렀다.

흉기에 찔러 다치거나 연기를 마셔 부상당한 주민도 16명이나 됐다.

이 두 사건은 가해자가 모두 조현병을 앓고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 조현병 증세가 날로 악화됐지만 본인들이 스스로 치료를 거부했다.

이에 사건 발생 전 피해망상과 환각 증세로 주민들과 잦은 마찰을 일으킨 비슷한 전조 증상도 있었다.

B군은 조현병 증세 때문에 결국 다니던 학교도 그만뒀다.

지난 2월 병원에서 ‘입원 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B군 본인이 치료를 거부했다.

이 같은 상황은 안인득도 마찬가지다.

안인득도 2016년 7월까지 병원에서 조현병 치료를 받았지만, 이를 끝으로 치료를 받지 않았다.

왜 치료를 중단했냐는 질문에 안인득은 "약 먹으면 몸이 아파서 치료를 중단했다"고 진술했다.

결과적으로 조현병 환자 스스로가 자의적으로 병세를 판단한 셈이다.

범행 일주일 전 안인득의 친형이 병원에 강제입원을 고려한 치료를 권유했지만, 안 역시 본인이 이를 거절했다.

하지만 현행법상 이들이 조현병을 앓고 있지만 본인이 치료를 거부하면 입원 등 치료를 강제할 수 없다.

안인득은 이날 검찰 송치 전 취재진의 “조현병을 앓고 있는 사실을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자신(질문한 기자)이 병 있는 것 아나”라고 반문했다.

이 사건을 맡아 가해자들의 정신 상태 등을 분석하고 있는 경남경찰청 프로파일러는 특히 B군이 더 심각한 상태라고 봤다.

◇전문가 “선진국과 같이 관련법‧제도 개선 필요”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선진국과 같이 가족 동의를 얻지 않아도 의료기관 등에서 진료 단계에서 입원 조처할 수 있는 방안 등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현행법상 정신질환자가 입원할 수 있는 절차는 총 5가지 경우다.

이 중 자의입원과 동의입원은 환자가 직접 입원 신청서를 의료기관에 제출해 모두 자발적으로 입원하는 조처다.

이번 사건과 관련돼 있는 경우는 비자의입원(강제입원)의 ▲보호입원 ▲행정입원 ▲응급입원 등 3가지 경우다.

보호입원은 가족 2명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이 경우 직계 가족만 해당된다.

안인득 사례처럼 친형이 동생을 강제입원 시키려고 해도 할 수 없는 이유다.

행정입원은 정신과 전문의나 전문요원이 위협 있는 정신질환자를 발견했을 때 지자체장에게 입원을 요청하는 것이다.

지자체장은 정신과 전문의에게 환자 진단을 의뢰해 입원 필요 진단이 나오면 지정 병원에 입원시킬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 절차가 다소 복잡하다.

응급입원은 보호입원이나 행정입원이 어려울 경우 경찰과 전문의 동의만으로 3일간 입원시킬 수 있는 조처다.

전문가들은 이번 창원과 진주 사건은 이 3가지 경우가 모두 실패한 사례라고 지적했다.

권준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은 “최근 경남에서 발생한 사건은 비자의입원의 3가지 경우가 모두 실패한 경우”라며 “관련법과 제도가 개선돼야 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권 이사장은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사법입원제도(중증질환국가책임제)’가 시행 중이다”며 “현행법상 정신질환자의 강제입원에는 환자 가족 2명의 동의를 얻어야 하지만 이 제도가 시행되면 보호의무자가 국가로 넘어가게 된다. 그렇게 되면 정신과 의사가 환자를 진료해 범죄 등이 우려되면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법적으로 강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권 이사장은 “환자 인권 논란이 불거지고 있지만 상당한 중증의 환자에 해당되는 경우에는 이 같은 조처가 필요하다”면서 “의료계와 학회에서 이런 미비점 개선을 촉구했지만 정부가 난색을 표했는데, 이번 사건을 계기로 공론화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창원=강승우 기자 kkang@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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