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화의 인문학기행] 독일, 여섯 번째 이야기

기사승인 2019-05-01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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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반경, 쾰른대성당을 떠나 뤼데스하임(Rüdesheim)으로 향했다. 쾰른에서 뤼데스하임까지는 버스로 2시간 정도 걸린다. 쾰른에서 본을 거쳐 뤼데스하임으로 가는 42번 국도는 라인 강의 동쪽 강변을 따라간다. 독일에는 강이 많아서 무려 894개나 된다. 물론 큰 강으로 유입되는 강들도 나름 이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의 큰 강으로는 독일 남부를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도나우 강이 있고, 남부에서 발원해 북쪽으로 흘러 북해로 들어가는 4개의 큰 강이 있다. 서쪽에 있는 라인(Rhein) 강, 중부에 있는 베저(Weser) 강과 엘베(Elbe) 강, 그리고 폴란드와 국경을 이루는 오데르(Oder) 강이 있다. 

라인 강의 전체 길이는 1232.7km이며, 스위스 구간은 376km, 독일 구간은 695.5km, 그리고 네덜란드 구간은 161.2km이다. 라인 강(Rhein)은 스위스 중부의 알프스산맥에 있는 수르셀바(Surselva) 지구의 토마호수(Tomasee)에서 시작하는 포르더라인(Vorderrhein)강을 주발원지로 한다. 

포르더라인 강은 라이헤나우(Reichenau) 마을에 이르러 파라디에스 빙하(Paradies Glacier)에서 발원하는 힌터라인(Hinterrhein) 강과 합류하는데, 파라디에스 빙하를 라인 강의 2차 발원지로 본다. 두 강이 합류한 알프스 라인 강은 스위스와 독일 그리고 오스트리아의 영토로 둘러싸인 콘스탄츠(Constance) 호수(보덴 (Bodensee)라고도 함)로 흘러든다. 

알프스 라인 강은 콘스탄츠 호수로 흘러들면서 내륙 삼각주를 만든다. 콘스탄츠 호수는 높은 호수(Obersee), 낮은 호수(Untersee), 그리고 두 호수를 연결하는 4km 길이의 호수 라인(Seerhein)으로 이뤄진다. 호수 서쪽에서 흘러내린 라인강 은 스위스 북부의 샤프하우젠(Schaffhausen)에서 30m 높이의 라인 폭포로 떨어진다. 이어서 검은 숲(Schwarzwald)지대의 남쪽 자락을 따라 흐르다가 바젤 근처에 이르는데, 여기까지가 라인 강의 상류에 해당한다. 

바젤에 이른 라인 강은 서쪽으로 향하던 방향을 90° 돌려 북쪽으로 향한다. 라인 강이 방향을 전환하는 곳을 라인 강의 무릎(Rheinknie)라고 부른다. 라인 강은 프랑스와 독일의 국경을 이루면서 160㎞를 흐르다가 다시 독일 영토를 흐르는데 이 구간이 라인 강의 중류다. 라인 강의 중류에는 쾰른, 뒤셀도르프, 뒤스부르크 등의 공업 도시가 흩어져 있다. 아레(Aare), 넥카(Neckar), 마인(Main), 모젤(Mosel) 그리고 마스(Maas) 등의 강이 라인 강의 중류지역에서 합류한다.

쾰른에서부터 라인 강이 북해로 들어가는 네덜란드의 로테르담까지를 하류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네덜란드 영토 내에서는 네덜란드어로 레인(Rijn) 강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라인 강은 발원지로부터 독일과 네덜란드의 국경까지의 구간에만 적용되는 이름이다. 네덜란드 이름인 ‘레인’은 여러 개의 물이 흐르는 모습을 본 따서 지은 것이다. 

라인 강을 부르는 유럽 여러 나라의  이름들은 모두 고대 켈트어인 레노스(Rēnos: 흐르는 것)에서 유래했다. 라인 강 서쪽으로 프랑스에 이르는 지역에 살던 골족들이 사용하던 고대 켈트어 레노스는 원시 인도유럽어의 라이에(reie: 움직이다·흐르다·달리다)에 뿌리를 둔다. 1925년에 발견된 원소, 레늄(Rhenium)은 라인 강의 이름을 따른 것이다. 

독일고속도로에는 오토바이가 달릴 수 있는 것도 특이하다. 한참을 가다가 고속도로휴게소에 들렀다. 휴게소에는 잡화와 커피 그리고 간단한 식사가 가능한 휴게소가 있을 뿐 아니라 뒤쪽에 작은 모텔이 있는 점이 특이했다. 장거리 운전을 하다가 해가 저물거나 피곤하면 제대로 쉬어갈 수 있도록 한 배려로 보인다. 그리고 화장실 이용에 70전을 받는 것도 특이하다. 부자가 더 짠돌이 짓을 하는 셈인가?

뤼데스하임에 가까워질 무렵 인솔자가 로렐라이 언덕을 지난다고 설명했다. 따로 방문하는 일정이 없고, 우리가 달리는 42번 국도가 로렐라이 아래를 지나기 때문에 제대로 볼 수는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로렐라이는 장크트고아르스하우젠(Sankt Goarshausen) 인근을 흐르는 라인 강의 오른쪽 기슭에 솟아 있는 132m 높이의 변성암으로 된 바위인데, 기대했던 것보다는 지극히 평범한 모습이라서 실망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간 수백만명이 로렐라이 언덕을 찾는 이유는 로렐라이와 관련된 이야기가 가진 마력 때문이다.

로렐라이(Loreley)는 라인지역의 사투리로 ‘속삭이다’라는 의미로 사용돼온 옛 독일어 루레른(lureln)에 켈트어로 바위를 의미하는 레이(ley)가 결합된 것이다. 그러니까 ‘속삭이는 바위’라는 의미가 된다. 바위 부근을 지나는 격렬한 라인 강의 흐름은 작은 폭포(19세기 초반까지도 볼 수 있었다고 한다)를 이루면서 속삭이는 듯한 소리가 났고, 이 소리가 주변 환경과 어울려 증폭되면서 특별한 메아리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오늘날 도시화가 심해지면서 로렐라이 부근에서 라인강의 흐름이 만드는 특별한 소리는 더 이상 들을 수가 없다. 

한편으로는 이 부근에서 자주 발생한 보트 전복사고와 관련한 설명도 있다. ‘잠복하다’라는 의미의 독일어 동사 라우에른(lauern)에 바위를 의미하는 레이(ley)가 결합된 것이라는 설명도 있다. 이 설명에 따르면 로렐라이는 ‘숨어있는 바위’라는 의미가 된다. 

로렐라이를 세계적으로 유명한 장소로 만든 것은 독일 작가 클레멘스 브렌타노 (Clemens Brentano)가 1801년에 발표한 소설 ‘고드비 또는 어머니의 돌그림(Godwi oder Das steinerne Bild der Mutter)’에 포함된 9편의 연작시 가운데 한 편인‘라인 강변의 바하라흐를 향하여(Zu Bacharach am Rheine)’이다. 

“라인 강변의 바하라흐라는 곳에 / 한 마녀가 살고 있었다. / 그녀는 아름답고 고와서 /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Zu Bacharach am Rheine / Wohnt’ eine Zauberin / Sie war so schön und feine / Und riß viel Herzen hin”라고 시작하는 브렌타노의 시는 민요로 만들어져 불렸다.

라인 강변의 바하라흐에 사는 마녀 로렐라이(Lore Lay)는 너무 아름다워 그녀를 사랑한 모든 남성들은 모두 패가망신하게 됐다. 그녀를 처벌하려고 소환한 주교를 만난 로렐라이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죽여 달라 요청했지만, 주교 역시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차마 벌할 수 없어 3명의 기사를 딸려 수도원으로 보내기로 했다. 

수도원으로 가던 길에 만난 바위 언덕 위에 오른 로렐라이는 라인 강을 지나는 배를 바라보면서 그 배에 사랑하는 사람이 탔을 것이라면서 강물에 뛰어들어 숨졌다. 3명의 기사도 따라서 라인 강에 몸을 던졌는데, 훗날 3명의 기사가 로렐라이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로렐라이를 결정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것은 브렌타노의 시에서 영감을 얻은 하인리히 하이네가 1824년에 발표한 시 ‘로렐라이(Die Lorelei)’였고, 특히 1837년에 프리드리히 실러(Friedrich Silcher)가 하이네의 시에 곡을 붙인 ‘로렐라이(Lorelei)’라는 예술적인 노래가 독일어권에서 인기를 끌면서 세계적으로도 잘 알려지게 됐다. 현대에 들어서도 시문학의 소재로, 음악과 오페라, 영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로렐라이의 이야기가 변주되고 있다.

뤼덴하임에 가까워지면서 풍경이 일신해 주변 언덕의 완만한 경사가 온통 포도밭이다. 변성암으로 된 토양 때문에 배수가 잘되기 때문인지 포도밭이 도로변까지 내려와 있다. 유럽대륙의 북쪽에 위치한 독일의 경우 일조량이 많지 않기 때문에 레드와인 품종은 키울 수가 없는 반면 일조량이 짧아도 되는 화이트 와인 품종을 주로 키우고 있다. 특히 뤼데스하임에서 북쪽으로 조금 떨어진 코블렌츠(Koblenz)에서 라인 강과 합류하는 모젤 강변은 화이트 와인의 명산지로 꼽힌다. 

프랑스어로는 라 무셀르(la Moselle)라고 부르는 모젤(Mosel)강은 프랑스 보주(Vosges)에 있는 해발 715m의 발롱 알자스(Ballon d'Alsace) 서쪽 경사면의 콜 드 부상(Col de Bussang)에서 발원한다. 프랑스 북동부 오트마른주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흘러 벨기에 네덜란드를 거쳐 북해로 흘러가는 950km의 뫼즈강(La Meuse)의 라틴어 표기 모사(Mosa) 보다 작은 강을 의미하는 라틴어 표기 모셀라(Mosella)에서 유래했다. 총길이는 561km에 달하며, 314km는 프랑스 영토를, 39km는 독일과 룩셈브르그의 경계를 흐르며, 208km는 독일의 영내를 흐른다. 

모젤 강 유역은 대표적인 화이트와인의 산지인데, 특히 독일의 트리어(Trier)와 코블렌츠(Koblenz)를 연결하는 구간은 독일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한다. 모젤 강변의 산허리는 계단식 포도원으로 덮여있는데, 모젤 강 유역에서 포도를 경작하기 시작한 것은 로마제국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모젤 강 유역은 화이트와인을 제조하는데 있어 최고인 리슬링(Rieslings) 품종의 포도를 주로 재배한다. 반면 모젤강 상류 지역인 프랑스 분지에서는 리슬링 품종의 재배 비율이 10% 정도로 낮고 주로 피노 블랑 (Pinot Blanc)과 피노 누아(Pinot Noir) 품종을 주로 재배한다.

글·양기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진료심사평가위원회 평가수석위원

[양기화의 인문학기행] 독일, 여섯 번째 이야기
1984 가톨릭의대 임상병리학 전임강사
1991 동 대학 조교수
1994 지방공사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1998 을지의대 병리학 교수
2000 식품의약품안전청, 국립독성연구원 일반독성부장
2005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2009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상근평가위원
2019 현재, 동 기관 평가책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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