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돈 때문에 법 때문에…핑계 급급한 LH

기사승인 2019-06-01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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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돈 때문에 법 때문에…핑계 급급한 LH영화 ‘캡틴아메리카 윈터솔저’는 2차 세계대전에서 냉동인간이 된 채 현대로 넘어온 영웅 캡틴아메리카의 현실 적응기를 다루고 있다. 캡틴아메리카는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자기 식(아날로그적인 방법)으로 노력한다. 하지만 환경은 바뀌었다. 박멸해야 할 명확한 악이 있던 과거와는 다르게 냉전시대 이후의 세상엔 더 이상 악이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그가 마주한 건 자신이 몸담고 있던 정의로운 조직 내부의 모순이다. 영화는 ‘자신이 옳다고 믿고 따르던 조직 내부에 악이 자리할 경우 과연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에 대해 묻는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임대주택사업으로 인한 부채가 지난해 기준 70조에 육박했다. 이같은 부채 증가 이유에 대해 LH는 건설비용과 재정지원 단가 격차 때문이라고 말했다. 공공임대주택의 공급가(임대료)는 시장가격보다 낮은 반면, 조성원가(건설비+매입비)는 시장가격 그대로여서 LH 측의 자금 투입이 늘어나 결과적으로 부채가 증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쉽게 말해 정부의 재정지원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물론 임대주택사업은 그 특성 상 수익이 보장되지 않는다. 한 민간임대사업자에 따르면 “임대사업을 주력으로 내세우곤 있지만 캐시카우는 아니다”라며 “대부분의 수익은 분양사업을 통해 발생한다”고 말했다. 또한 해당 사업자는 당해 분양이 없을 경우 적자가 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적자 사업구조라고 할지라도 무조건 정부 탓으로만 돌리는 LH 측의 주장은 책임이 부족한 답변이다. 재정 지원, 필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 위한 노력이 우선시되거나, 적어도 함께 진행돼야 하지 않을까.

억대 성과급 논란은 또 어떠한가. LH는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성과급 잔치’를 벌이고 있다는 질타를 받았다. ‘정부가 적자일 수밖에 없는 사업인데 지원을 안 해줘서’ 부채가 증가하고 있다는 LH의 주장을 더욱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실제로 LH 상임기관장 대상 기본급과 성과급은 억대 수준이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올해 LH 사장의 기본급은 1억2375만원이다. 성과급은 나와 봐야 알겠지만 지난 5년간의 추이(2014년 1616만원, 2015년 7757만원, 2016년 8195만원, 2017년 7706만원, 2018년 1억158만원)를 보면 올해도 어김없이 두둑하게 챙겨갈 것으로 보인다.

LH의 책임 회피성 대답은 이뿐만이 아니다. LH는 최근 판교 10년 공공임대 분양전환 논란과 관련해 “법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식의 주장을 일관하고 있다. 판교 지역 시세가 10년 새 너무 많이 뛰었다며 최근 시세에 맞춘 감정평가금액에 기초해 책정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입주민들은 조성원가와 감정평가액 평균으로 분양전환 가격을 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어느 쪽이 맞고 틀리고의 여부를 떠나 어쩔 수 없다는 식의 답변은 한 기업의 단순 책임 회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적어도 이같은 문제가  발생했는지, 어떻게 개선할 수 있는지 등 해결방안 마련을 위해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를 귀 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어쩌면 LH의 적은 ‘캡틴아메리카 윈터솔저’에서처럼 재정 지원을 안 해주는 정부에 있지도, 원래 그러했다는 법에 있지도 않을 것이다. 본인의 의지 문제일 수 있어 보인다. 정부와 법을 바꿔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판교 임대아파트에 거주하는 한 주민의 말마따나 “잘못된 게 있다고 문제가 계속 제기되면, 법으로 그렇게 정해져 있다 할지라도 다시 한 번 되짚어봐야 하지 않나” 싶다.

안세진 기자 asj0525@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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