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화의 인문학기행] 독일, 열세 번째 이야기

기사승인 2019-06-01 1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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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정원에서 나오다 보면 성 야곱 교회(St. Jakobs kirche)가 있다. 높이 55.2m의 남쪽탑과 높이 57.7m의 북쪽탑 등 두 개의 탑을 세운 교회는 1311년 공사를 시작해 1484년 완공했고, 뷔르츠부르크(Würzburg)의 주교가 축성했다. 오늘날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있는 성 제임스교회에 이르는 순례자의 길에 속한다. 

성혈을 묘사한 제단 뒤의 벽장식은 뷔르츠부르그의 목공예가 틸만 리멘슈나이더(Tilman Riemenschneider)가 1500년에 제작에 착수해 1505년 완성한 것이다. 중앙에는 유다와 함께 하는 최후의 만찬을 묘사했고, 오른쪽 날개에는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예수를, 왼쪽 날개에는 올리브동산을 각각 묘사했다. 그리고 1466년에 프리드리히 헤어린(Friedrich Herlin)이 제작한 주제단의 12사도 역시 주목할 만하다.

로텐부르크 시내 구경을 마치고 성문(Aufgang zur Stadtmauer) 안 주차장가에 있는 슈란테 호텔(Hotel Gasthaus zur Schrantte)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원래는 점심을 먹고 구경에 나설 예정이었는데 준비가 돼있지 않아 순서를 바꾼 듯하다. 점심에는 바이에른주의 전통음식이라는 슈바인스학세(Schweinshaxe)를 먹었다. 

조리된 모습은 우리네 족발과 비슷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족발을 사용하는 것과는 달리 아이스바인(Eisbein)이라는 무릎부위다. 우리네 족발과 달리 돼지고기 특유의 냄새가 심한 편이다. 식재료 특유의 향을 살리는 유럽사람 취향에 따라 조리를 하기 때문에 필자의 초딩 수준의 취향에는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몇 점을 먹다가 곁들인 으깬 감자를 주로 먹고 말았다. 

점심을 먹고 성벽 위에 올라봤다. 성벽이 그리 높지 않은 탓인지 성안 마을의 집들이 더 높아 보인다. 집들은 경사가 급한 지붕에 주로 붉은 기와를 올렸다. 유약을 바르지 않은 기와에 물이 잘 스며들기 때문에 지붕의 경사를 급하게 만든 것이라고 한다. 오래된 성안 마을에는 주차공간이 없기 때문에 불편하다지만, 성안 마을이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성문 안과 밖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걸어 다녀도 충분하겠다. 성안에는 주민들보다는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호텔과 카페가 많은 편이다. 

버스가 주차하고 있다는 남쪽 주차장으로 향했다. 다시 시청 앞 광장을 지나 조금 가다보니 두 개의 길이 나온다. 로텐부르그의 상징적인 모습이 되고 있는 프뢴라인(Plönlein)이다. 프뢴라인은 수준차이가 작다는 의미의 라틴어에서 온 단어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왼쪽 길은 평탄하지만 오른쪽 길은 아래로 내려간다. 두 길 사이에는 노란색으로 벽을 칠한 목골조 건물(Fachhaus)이 서 있다. 

길모퉁이에 작은 분수가 있는 이집은 방앗간이었다고 한다. 이 건물에는 왼쪽 길과 오른쪽 길로 향한 문이 각각 층을 달리하여 달려있다. 방앗간을 기점으로 왼쪽에는 시베르스토르(Sieberstor), 오른쪽에는 코볼젤러토르(Kobolzeller Tor)라는 이름의 성문이 있다. 아마도 체를 만드는 사람과 공중제비하는 사람과 관련이 있는 이름 같다. 우리는 왼쪽 길로 가서 문을 지나 골목길을 계속 걸어갔더니 홀연 성벽을 만나고 성 밖으로 나가는 성문이 있었다. 

3시 반에 퓌센(Füssen)을 향해 출발했다. 뢰텐부르그에서 퓌센으로 가는 길은 로맨틱가도(Romantische Straße 로만티셰 슈트라세)다. 뷔르츠부르그(Würzburg)에서 퓌센을 연결하는 350km 길이의 도로를 1950년대에 독일 관광업계가 로맨틱가도라는 이름을 붙여 낭만가도라고도 한다. 하지만 사실은 고대 로마제국 시절 독일지역에 주둔하던 로마군단의 이동통로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로만틱가도라 함이 옳다. 

도로는 숲 사이로, 때로는 야트막하게 오르내리는 평원을 가로지르기도 하고, 때로는 몇몇 가옥들이 어울려 있는 작은 마을을 지나기도 한다. 70년대 말 서초동에서 수원으로 가던 국도분위기가 이랬을까 싶다. 로만틱가도에 들어있는 대표적인 도시와 마을로는 출발지인 뷔르츠부르그를 비롯해 뇌르딩겐(Nördlingen), 딩켈스뷜(Dinkelsbühl), 로텐부르그 등이 있다. 

로텐부르그를 출발하고 4시간여를 달렸을까 홀연 산세가 변한다. 알프스 산맥에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해발 1000m급의 고개를 넘어서자 풍경이 바뀐다. 멀리 군데군데 흰 눈을 이고 있는 바위산이 나온다. 퓌센을 지나 일단 숙소가 있는 리서지(Riessersee)까지 가기 위하여 국경을 넘어 오스트리아로 돌아가게 됐다. 가는 길에 추크슈피체(Zugspitze)산을 볼 수 있었다. 높이 2962m로 독일 최고봉인 추크슈피체산은 알프스 산맥에 속하며 독일 남부 바이에른 주와 오스트리아 티롤 주 사이의 국경 가까이에 있다. 여름에도 만년설을 볼 수 있다.

3개의 케이블카와 산악열차를 이용해 추크슈피체산의 정상 부근까지 갈 수 있다. 1926년에 개통한 티롤 추크슈피체 케이블카와 에이브지(Eibsee) 케이블카 그리고 바바리안 추크슈피체 톱니열차 등이다. 에이브지 케이블카와 산악열차는 스키장에 흩어져 있는 9개의 스키 리프트에 연결된다.

우리 일행의 숙소는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Garmisch-Partenkirchen) 시의 외곽에 있는 호수 리서지 옆에 있는 온천호텔이다. 저녁을 먹기 전에 호수에 나갔더니 독일 최고봉인 멀리 추크슈피체산이 보이고, 이 산이 호수에 내려앉아 있었다. 저녁식사가 늦었기 때문에 하루 일정을 정리하고, 다음 날 일정을 준비하는 등 시간을 보내다가 11시쯤 잠자리에 들었다.

독일 구경에 나선 세 번째 날이다. 4시 무렵 잠을 깼다. 시차가 조금씩 맞춰지고 있다. 버스를 타는 동안 잠깐씩 선잠을 자는 까닭에 크게 피곤한 느낌은 없다. 이틀 동안의 여행 일정을 보면 버스로 이동하는 시간이 버스에서 내려 구경하는 시간보다 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젊어서 미국에서 여행할 때 딱 이렇게 했다. 워낙 땅이 넓으니 볼거리를 찾아서 이동하는 시간이 많이 들었던 것이다.

오늘은 8시에 숙소를 출발할 예정이다. 모닝콜을 받고는 몸을 씻고서 숙소 앞에 있는 호수를 한 바퀴 돌기로 했다. 숙소를 나서려는데 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호텔에 비치된 우산을 빌었다. 호수 주변을 한 바퀴 도는데 20분 정도 걸렸다. 그동안 여행하면서 아침 산책은 처음이다. 인적이 없는 탓인지 우리 발걸음에 놀란 오리들이 호수 가운데로 달아난다. 호수주변을 산책하면서 보니 역사적 올림픽 봅슬레이 경기장(historical olympic bobbahn)이라는 표지가 있다. 찾아보니 1936년에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린 바 있다. 

23번 국도를 따라 형성된 서쪽의 가르미슈와 2번 국도를 따라 형성된 파르텐키르헨은 오랜 세월을 이어오는 동안 별개의 마을이었다. 그러던 것이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가 주도한 1936년 동계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1935년 두 마을을 합병하게 됐다. 두 마을이 합병돼 하나의 도시가 됐지만 아직도 완전히 다른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

파르텐키르헨(Partenkirchen)은 로마제국 시절 베니스에서 아우크스부르그(Augsburg)로 연결되는 무역로 상에 있는 마을 파르타늄(Partanum)에 뿌리를 둔다. 파르타늄은 서기 15년에 처음 언급된 바 있다. 도시의 중앙로인 루드비히슈트라세(Ludwigsstrasse)는 원래 로마가도에 포함됐던 것이다. 반면 가르미슈(Garmisch)는 약 800년이 지나서야 게르마네스카우(Germaneskau, 게르만족 지구)라고 처음 언급됐다. 그 무렵 게르만족이 가르미슈 지역에 정착촌을 건설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15세기 들어 신대륙이 발견됨에 따라 육로무역이 쇠퇴하면서 이 지역의 경제가 나락으로 빠져들었고. 생활환경까지도 악화됐다. 토지는 물론 야생동물의 출몰로 작물을 키울 환경이 되지 못했고, 설상가상으로 전염병까지 만연하면서 사회가 뒤숭숭해졌다. 16세기 말에는 마녀사냥이 횡행해 인구의 10% 이상이 화형에 처해진 시기도 있었다.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Garmisch-Partenkirchen)은 겨울 스포츠를 위한 독일 최고의 시설을 보유하고 있어 스키 혹은 스노우보드 애호가들이 몰리는 곳이며, 다른 계절에는 등산을 위한 휴가지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이 지역에 내리는 눈은 파우더 스노우가 많은 우리나라와 달리 얼지 않아 속도를 내기에 적합하지 않지만 슬로프의 경사가 심한 탓에 충분히 속도를 즐길 수 있다. 사람들은 많이 몰리지만 스키장이 워낙 많은 탓에 리프트가 오히려 사람을 기다릴 정도라고 한다.

참고로 스키어들이 말하는 파우더 스노우는 ‘분설(粉雪)’이라고도 한다. 습기가 많지 않고 가벼워 스키를 타기에 적합한 습도의 눈을 의미한다. 날씨가 좋을 때 새로 내린 눈의 수증기가 증발하면 눈이 건조하고 푸석푸석한 상태가 된다. 스키를 탈 때 푹신하고 부드러우며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다. 이 가운데 특별히 영하 10℃ 이하로 추운 날씨일 때 내리는 작고 건조한 눈을 ‘아스피린 스노우’라고 한다.

8시에 숙소를 나설 무렵 다행히 비가 멎는다. 이날 첫 번째 일정은 어제 지나온 퓌센 방향으로 이동해 슈반가우(Schwangau) 인근에 있는 노이슈반슈타인성과 호엔슈반가우성을 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사실 어제 분위기가 좋은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에 묵을 수 있었던 것은 그날 퓌센 지역에서 동급의 숙소가 동이 났기 때문에 인근에서 대체숙소를 구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글·양기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진료심사평가위원회 평가책임위원

[양기화의 인문학기행] 독일, 열세 번째 이야기
1984 가톨릭의대 임상병리학 전임강사
1991 동 대학 조교수
1994 지방공사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1998 을지의대 병리학 교수
2000 식품의약품안전청, 국립독성연구원 일반독성부장
2005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2009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상근평가위원
2019 현재, 동 기관 평가책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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