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의료기기, 위험하지 않아요(?)"

HPV 진단용 키트, ‘안전성 vs 편의성’ 논란 촉발… 무거워지는 식약처 책무

기사승인 2019-06-03 00:00:00
- + 인쇄

지난 5월 30일, 자궁경부암 유발 인유두종바이러스(HPV)를 간편하게 채취해 진단에 사용할 수 있는 ‘가인패드(GynPad)’가 전국 GS25편의점에서 팔리기 시작했다. 제품을 출시한 바이오리더스 그룹 산하 티씨엠(TCM)생명과학은 “편의점 판매를 통해 낮은 HPV 검진률을 높여 국민건강에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의료계와 의료기기업계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당장 이들에 따르면 편의점에서 7만원이 넘는 제품을 구매해 등록 후 생리대처럼 4시간 이상 패용하며 채취한 검체를 택배로 보내는 자가 검체 채취방식으로는 검체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을 수 있다. 의사와의 접점도 검사결과에 대한 상담으로 줄어 충분한 설명이나 진단기회가 제한될 우려가 있다. 더구나 검사결과가 음성으로 나올 경우 자궁경부암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오인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논점을 의료기기 영역으로 확대하면 제기되는 문제가 더 있다. 약사에게 상담이 가능한 의약품과 달리 제조회사 외에는 충분한 설명을 해줄 곳이 거의 없는 의료기기 특성상 잘못된 사용법이나 주의사항을 바로잡고 익힐 기회가 적어 오남용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나아가 가인패드를 시작으로 위해도가 높거나 오남용 우려가 더 큰 제품의 편의점 판매요구도 커질 수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서있으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하나가 풀리면 다른 것을 요구하게 될 것”이라며 “정부는 2011년 이후 끊이지 않는 일반의약품 편의점판매 논쟁을 의료기기로 확대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힘든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분명 의료소비자는 똑똑해졌다. 하지만 똑똑한 일반인을 기준으로 삼으면 그에 미치지 못한 그룹에서 문제가 발생한다”고 경고했다.

◇ 가인패드, 정말 안전한가?

구체적으로 가인패드와 관련된 우려는 크게 ▲패드가 HPV 검진 수검률을 높여 자궁경부암 발병률을 낮출 수 있을까 ▲검사결과가 자궁경부암 발병의 주요원인인 HPV 감염여부를 정확히 판별할 수 있을까 ▲패드를 이용한 검진으로 자궁경부암 발병여부를 확신할 수 있을까 하는 3가지다. 이 같은 우려와 문제제기에 대해 개발사인 TCM생명과학은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TCM생명과학 신동진 대표는 가인패드의 사용편의성과 접근편의성으로 수검률이 높아질 것이며 자연스레 자궁경부암 발병률을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여기에 기존 의료기관에서 진행되는 HPV 검체검사와의 결과 일치율이 97.8%에 달하고, 감염여부도 98% 가까이 판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패드를 이용한 검진결과로 자궁경부암 발병여부를 오판하거나, 잘못된 확신을 가질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도 신 대표는 ‘지나친 걱정’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가인패드는) 검사를 위한 검체채취를 편하게 하는 제품으로 (진단을 위해선) 산부인과 내진이 필수다. 검사결과도 병원에서 의사의 진료를 통해 들어야하고, HPV 감염여부에 따라 추적관찰의 계기도 될 수 있다”면서 “편의점으로 판로를 확대한 것도 손쉽게 사용자가 구해 스스로 검체를 채취할 수 있다면 수검률이 높아지고 검사와 치료기회가 많아져 결과적으로 여성보건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패드의 안전성에 대해서도 신 대표는 “당초 (가인패드는) 2등급 의료기기로 분류돼 허가과정에서 세포독성이나 용축물 시험 등 2등급에서 요구하는 시험을 모두 통과했다. 이후 허가 완료직전 규제완화 차원에서 식약처 규정이 바뀌며 1등급으로 변경돼 허가가 완료됐을 뿐”이라며 “지난해 생리대 파동으로 패드제품에 대한 우려도 있지만, 공산품이 아닌 의료기기로 허가받는 과정에서 안전성에서 다른 생리대보다 통제된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 의료기기 편의점 판매, 괜찮을까?

가인패드의 편의점 판매가 이뤄짐에 따라 촉발된 또 하나의 우려는 의약품 편의점 판매가 이뤄진 후 지금까지 논쟁의 핵심이었고, 확대냐 폐지냐를 두고 의견이 팽팽해 결론을 내리지 못한 ‘오남용’과 그에 따른 ‘부작용’ 문제다. 안전성의 문제와는 별개로 잘못된 사용이나 부주의, 남용으로 인한 문제가 의료기기로 확대될 것이라는 우려다.

하지만 신 대표는 가인패드에 한해서는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우리 제품에 국한해서는 의약품과 같이 오남용이나 판매장소에 따른 우려는 전혀 없을 것”이라며 “구매단계부터 검사를 할 때 상담하는 병원을 지정하도록 하고 있고, 이를 위해 온라인으로 로그인을 해 제품을 등록하거나 CS센터(고객상담센터)로 전화를 할 수 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사용법 등도 숙지할 수 있도록 지침을 마련해 안내하고 있다”고 자신했다.

다만, 의료기기 편의점 판매에 관해서는 신 대표도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했다. 그는 “일반의약품이라도 편의점에서 확대판매하는 것은 경우에 따라 선별적으로 제어가 필요하다. 이는 의료기기도 마찬가지”라며 “흔히 대일밴드로 알려진 창상피복제와 같이 우리 제품에 준하는 안전성이 확보되고 사용목적에 맞는 직관적 디자인과 사용법으로 오남용 우려가 없고 잘못 사용해도 위해가 크지 않을 제품을 선별적으로 허용하면 된다”고 말했다.

식약처 또한 “가인패드는 1등급 의료기기로 허가를 받은 제품으로 의료기기 판매업으로 등록된 곳이면 어디든 판매가 가능하다. 더구나 의료기기 판매업 등록을 하기 위해서는 의료기기유통품질관리기준(GSP; Good Supply Practices)을 준수해야한다. 여기에는 의료기기 취급에 대한 책임의식, 내용과 규격, 취급 및 품질관리, 관계법규, 기타 필요한 사항에 대한 의무교육을 연간 12시간 받아야 한다”면서 제조 및 판매 상 안전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이와 관련 한 의료기기업계 관계자는 “의료기기의 편의점 판매는 판로를 확대하는 차원에서 업계 입장에서 긍정적일 수 있다. 다만, 식약처의 책임과 의무가 무거워졌다”면서 “의료기기나 의료기기판매상에 대한 허가와 관리감독에 대한 책임이 더욱 강조되면서 불필요한 규제를 늘리는 등 부담이 업계로 전가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고 내심을 전하기도 했다.

한편, 안전성과 편의점 판매에 따른 문제 외에도 TCM랩(lab)에서 HPV 감염여부를 판별하기 위해 사용하는 진단시약이 국내허가를 받지 않았다며 제기된 의혹에 대해서도 신 대표는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 분자진단용 시약에는 여러 종류가 있으며 지난 1월 받은 수출용 진단시약 제조허가는 가인패드 수입을 원하는 중국 푸싱 그룹에서 요구한 HPV 15종용”이라며 “국내는 35종을 파악할 수 있는 허가된 진단시약을 사용하고 있다”고 분명히 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