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화의 인문학기행] 독일, 열여덟 번째 이야기

기사승인 2019-06-21 14:05:27
- + 인쇄

호프브로이하우스 이야기를 했으니 뮌헨의 유명한 맥주축제 옥토버페스트(Oktoberfest) 이야기를 빠트릴 수는 없을 것 같다. 옥토버페스트는 뮌헨의 도심 서쪽에 있는 테레지엔비제(Theresienwiese)에서 매년 9월 중순부터 10월 첫 주말까지, 16~18일 간 열리는 세계 최대 민속축제다. 

금년에는 9월 21일 시작해 10월 6일에 마감될 예정이다. 매년 600만 명 이상이 축제에 참가하고 있고, 지난 10년 동안 축제기간 중에 소비된 맥주만 연평균 700만 리터(ℓ)에 달한다. 참가자들 가운데 이탈리아, 미국, 일본, 호주 등에서 오는 외국인들이 15%에 달할 정도로 국제적 명성을 얻고 있다.

옥토버페스트는 1810년 10월 12일 거행된 바바리아의 루트비히(Ludwig) 왕자와 작센-힐드부르크하우젠(Saxe-Hildburghausen) 테레세(Therese) 공주의 결혼식을 축하하는 행사에서 시작됐다. 축하연에 초대된 뮌헨 사람들은 연회가 열린 장소를 테레세의 초원(Theresienwiese)이라고 불렀고, 줄여서 비슨(Wiesn)이로고도 했다. 

루트비히 1세가 고대 그리스문화에 심취해있었던 것을 고려한 방위군의 간부 프란츠 바움가르트너(Franz Baumgartner)가 경마를 비롯해 고대 올림픽 경기처럼 축제를 진행할 것을 제안했다고 한다. 축제에 참여한 국민들이 열광하는 것을 본 바바리아 왕실을 다음해 축제를 다시 열도록 하면서 옥토버페스트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경마는 1960년까지 이어졌고, 1811년 바바리아의 농업을 홍보하기 위한 추가된 쇼는 지금까지 이어져 매 4년마다 열리는 농업박람회가 됐다. 1835년 바이에른의 왕 루트비히 1세와 테레세 공주의 결혼기념일을 기리기 위해 전통의상 퍼레이드가 추가됐다. 1850년에는 축제가 열리는 장소에 바이에른을 상징하는 여신, 바바리아의 상을 세웠다. 

20여m에 달하는 바바리아 상은 레오 폰 클렌제(Leo von Klenze)가 고전 양식으로 스케치했고, 루트비히 미카엘 쉬반탈러(Ludwig Michael Schwanthaler)는 낭만적이면서도 독일적인 초벌을 제작했다. 동상의 주조는 요한 밥티스트 스티글마이어(Johann Baptist Stiglmaier)와 페르디난드 폰 밀러(Ferdinand von Miller)가 담당했다. 1853년에는 바바리아상 뒤편으로 루메스할레(Ruhmeshalle)라는 건물을 지어 축제의 상징이 됐다. 

맥주순수령으로 인해 뮌헨의 제한된 장소에서 생산되는 맥주만이 옥토버페스트에서 제공돼, 아우구스티너-브로이(Augustiner-Bräu), 학커-프쇼르-브로이(Hacker-Pschorr-Bräu), 뢰벤브로이(Löwenbräu), 파울라너(Paulaner), 슈파텐브로이(Spatenbräu), 슈타트리케스-호프브로이-뮌헨(Staatliches Hofbräu-München) 등 6개 양조장 맥주만을 즐길 수 있다.

옥토버페스트는 레스토랑주인들이 탄 마차들이 도심에서 축제장까지 퍼레이드를 벌인 다음, 정오에 뮌헨 시장이 쇼튼하멜(Schottenhammel) 텐트에서 첫 번째 맥주통을 따면서 “오자프트 이스(O'zapft is!, 마개를 땄습니다!)”라고 선언하면서 시작된다. 1950년부터 시작된 전통이다.

독일에 살고 있는 전나래씨가 ‘독일을 즐기는 건배사’에서 옥토버페스트에 관한 흥미로운 사실들을 전한다. 평소에는 말끔하게 차려입고 반듯한 모습을 하는 독일 사람들이 옥토버페스트에서 만큼은 흐트러진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옥토버페스트는 매일 오전 10시에 문을 열기 때문인지 정오가 지나면 술에 취해 널브러진 취객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고 한다. 특히 오전에는 도수가 높은 맥주를 제공하는 탓도 있겠지만,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허리띠를 풀어놓고 술에 빠져보자는 심리도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독일 사람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호프브로이하우스를 나와 마리엔 광장(Marienplatz)으로 갔다. 광장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멀리 보이는 첨탑은 옛 시청(Altes Rathaus) 건물이다. 마리엔 광장의 동쪽 끝에 위치한 옛 시청건물은 1310년 기록에 처음 등장했다. 12세기 초 사자왕 하인리히는 해자를 두른 반지모양의 성벽을 정착촌 주변에 세웠다. 성벽의 길이는 1.4km에 달했고 성안의 면적은 약 17헥타르(ha)였다.

성벽에는 다섯 개의 성문이 있었다. 북서쪽에 있는 슈바빙거 문(Schwabinger Tor), 북동쪽에 있는 보더레 슈바빙게 문(Vordere Schwabinger Tor), 동쪽에 있는 탈부르그 문(Talburgtor), 남쪽에 있는 센드링거 문(Sendlinger Tor), 서쪽에 있는 카우핑거 문(Kaufingertor) 등이다. 13세기 초반 마을이 확장되면서 성벽을 이자르 강까지 확장하게 됐다. 

1392/1394년에 낮은 문(Unteres Tor)이라고 부르던 국방탑(Talburgtor) 옆에 큰 홀을 짓고, 국방탑은 시청탑으로 재건됐다. 1460년 벼락이 떨어져 무너진 시청 탑과 건물을 1470~1480년에 건축가  외르그 폰 할스바하(Jörg von Halsbach)가 설계한 고딕양식에 따라 재건했다. 1624~1626년에는 외관을 바로크 양식으로 개조했고, 1778~1779년에는 시청의 서쪽 외관을 후기 바로크 양식으로 바꿨다. 2차 세계대전 중인 1944년 4월에 옛 시청이 폭격을 당해 크게 부서졌고, 12월에는 시청탑도 폭파돼 무너졌다. 

1953~1958년까지 옛 시청의 복도를 재건했고, 1977년 회의실을 재건했다. 외관은 원래의 고딕양식으로 하였는데, 서쪽 창 아래에는 바바리아왕국의 루트비히 1세의 동상을, 동쪽 창 아래에는 사자왕 하인리히의 동상을 세웠다. 옛 시청탑의 재건에 관한 논란이 오래 이어진 끝에 1493년 시청탑을 재건할 당시의 고딕양식 설계에 따라 1974년에 56m 높이의 탑을 복원해냈다. 

팔각형의 첨탑에는 에르딩거 종 주조공장에서 만든 청동종을 달았다. 옛 시청탑에는 이반 스타이거 (Ivan Steiger)가 수집한 장난감을 전시하는 장난감백화점(Spielzeugmuseum)이 있는데, 옛날 모형기차, 편물로 만든 동물모형, 인형, 인형집 그리고 주석 장난감 같은 것들을 볼 수 있다. 

옛 시청의 동쪽에서 탑이 있는 쪽으로 돌아가다 보면 여인의 동상이 서 있다. 여러 사람들이 만진 탓에 오른쪽 가슴이 반질반질하게 닳아져 있고, 팔에는 장미가 얹혀 있기도 하다. 뮌헨의 자매도시인 이탈리아의 베로나에서 1974년에 선물한 줄리엣의 동상이다. 줄리엣의 또 다른 동상이 이자르 강 건너편에 있는 셰익스피어 광장에도 서 있다. 베로나에 있는 줄리엣 동상처럼 가슴을 만지면 영원한 사랑을 얻을 것이라고 믿는 한편, 영원한 사랑을 만나게 될 것을 기대하면서 장미를 바치기도 한다.

옛 시청탑을 지나면 시청사 앞에 있는 마리엔 광장이다. 호프브로이하우스를 떠난 다음에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이 이곳을 향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어떤 사람들은 어깨에 무지개 색으로 된 깃발을 두르고 있었는데 처음에는 무슨 의미인지를 몰랐다. 마리엔 광장에서 열리는 공연무대에 크리스토퍼 스트리트 데이(Christopher Street Day, CSD)라고 적혀있는 것을 보고서야 퀴어 축제임을 알겠다. CSD는 유럽의 퀴어 축제로, 주로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에서 열린다.

CSD는 1969년 6월 27일 미국 뉴욕의 크리스토퍼 스트리트에서 경찰이 동성애자를 단속하는데 대항하는 시위가 일어난 것을 기념하면서 개최되기 시작했다. 이날 사람들이 매고 있던 무지개 색 깃발은 1978년 미국화가 길버트 베이커(Gilbert Baker)가 디자인한 것으로 성 소수자를 대변하는 상징이 됐다. 

깃발은 시간이 지나면서 남색이 제외된 여섯 색깔의 띠로 이뤄지게 됐다. 성소수자라 함은 여성 동성애자인 레즈비언(Lesbian), 남성 동성애자인 게이(Gay), 양성애자(Bisexual), 그리고 성을 전환한 트랜스젠더(Transgender) 등을 말하는 것으로 성적 다양성을 상징한다. 이 네 가지 단어들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LFBT는 성적 소수자들을 의미한다.

뮌헨의 CSD를 보고서야 성적 소수자들이 더 이상 소수자가 아님을 알겠다. 요즘 세상에 시청광장에 모여 축제를 벌이는 소수자집단이 이들 말고 또 있을까? 뮌헨에서 CSD를 구경하던 날, 서울에서는 시청 앞 광장에서도 퀴어 축제가 열렸다는데 성 소수자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지고 있는 기독교측이 나서는 바람에 충돌을 빚었다고 했다. 그리고 보면 우리 사회는 여전히 보수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뮌헨에서는 이들이 자유롭게 축제를 즐기고 있었는데, 초등학생이라고 보기에도 어린 아이들까지 무지개 깃발을 몸에 감고 축제현장에 함께 하는 것을 보고는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어찌 됐던 숭고한 사랑을 얻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줄리엣의 동상이 지척에 있는 마리엔 광장에서 만난 퀴어 축제에서 묘한 느낌이 남았다. 

동성애적 성향을 결정하는 유전자가 있다는 주장과 그런 유전자는 없으며 동성애자에게서 4종류의 유전자변이가 발견된다는 주장이 첨예하다. 그렇다면 성정체성이 결정되는 성장기에 다양한 환경적 요인이 작용한 결과 동성애적 성향이 생길 수도 있겠다. 

따라서 성이 무엇인지 모르는 어린이까지 퀴어 축제의 현장에 동반하는 것이 적절한지는 생각해볼 일이다. 생명체는 근본적으로 이성에 끌리도록 돼있을 터인데 이성을 거부하는 것이 진화의 새로운 방향이라고 설명하려면 분명한 근거가 있어야 할 것 같다.

글·양기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진료심사평가위원회 평가책임위원

[양기화의 인문학기행] 독일, 열여덟 번째 이야기
1984 가톨릭의대 임상병리학 전임강사
1991 동 대학 조교수
1994 지방공사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1998 을지의대 병리학 교수
2000 식품의약품안전청, 국립독성연구원 일반독성부장
2005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2009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상근평가위원
2019 현재, 동 기관 평가책임위원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