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화의 인문학기행] 독일, 열아홉 번째 이야기

기사승인 2019-06-2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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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가 열리고 있는 마리엔 광장에서 ‘성모 마리아 광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이 곳은 1158년부터 뮌헨의 중앙광장 역할을 해왔다. 북쪽으로는 새 시청건물이, 동쪽에는 옛 시청건물과 탑이 서있다. 1638년 스웨덴 점령군이 물러간 것을 기념하기위해 마리엔줄러(Mariensule, 마리아 기둥)를 세우면서부터 마리엔 광장이라고 불리게 됐다. 성모 마리아는 바바리아왕국의 수호자였다. 마리엔줄러 위에는 초승달 위에 서있는 성모 마리아의 황금상을 올려놓았다. 이 황금상은 1590년에 만들어진 천국의 여왕으로 프라우엔 교회에 모셔졌던 것이다.

기둥받침대의 4귀퉁이에는 페르디난트 무르만(Ferdinand Murmann)이 제작한 4명의 푸토(putto) 동상을 세웠다. 푸토는 날개달린 어린 천사를 의미하는 이탈리아어로 어린이를 의미하는 라틴어 푸투스(putus)에서 유래한다. 르네상스 예술에서 보는 그리스 신화의 에로스와 아프로디테, 로마신화의 아모르, 큐피드, 비너스 등이 푸토의 전형이다. 

마리엔줄러를 장식한 4명의 푸토는 도시의 역경을 상징하는 4마리의 동물과 싸워 이기는 모습을 묘사했다. 사자는 전쟁, 코카트리스(cockatrice)는 페스트를, 용은 굶주림 혹은 기근을, 뱀은 이단을 나타낸다. 코카트리스는 신화적 동물로서 수탉의 머리를 한 익룡의 모습이다.

이전에는 마리엔 광장을 시장(Markth, 마르크트), 곡물시장(Schranne, 슈란느), 곡물시장 광장(Schrannenplatz, 슈란느플라츠) 등으로 불렀다. 중세 무렵 마리엔 광장에서는 시장과 마상무술시합이 열렸다. 새 시청의 탑에 있는 카리용(Glockenspiel, 그록켄스피엘)은 이 시합에서 주제를 딴 것이다. 지금의 새 시청탑 5~6층에 있는 카리용은 43개의 종과 32개의 실물 크기 인형으로 구성됐는데, 16세기 건물의 2층에 있던 것을 본 딴 것이다. 

위층은 로렌의 공장 프란시스 1세의 딸 레나타(Renata)와 바바리아의 공작 빌헬름 5세와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한 마상무술시합을 연출했다. 말위에 탄 실물크기의 두 기사가 대결을 벌인다. 흰색과 파란색의 옷을 입은 기사가 바바리아의 기사이며, 빨간색과 흰색 옷을 입은 기사는 로트링엔(Lothringen, 프랑스의 로렌 지방)의 기사이다. 시합은 항상 바바리아 기사의 승리로 끝난다.

아래층은 쉐플러탄츠(Schäfflertanz)를 묘사했다. 나무통을 짜는 사람들이 나와서 춤을 추는데, 1517년 뮌헨에 페스트가 퍼졌을 때 나무통을 짜던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서 춤을 췄다고 한다. ‘무서운 생각에 신선한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거리에 나와 춤을 추었다’고 전한다. 이들은 또한 바바리아 공작에게 충성을 바쳤는데, 그들의 춤은 어려운 시기에 권위에 대한 인내와 충성을 상징하게 됐다는 것이다. 매일 11시, 12시, 그리고 3월에서 10월 사이에는 오후 5시에 추가로 카리용의 공연이 이뤄진다.

마리엔 광장의 오른쪽, 새 시청의 앞에는 물고기 분수(Fischbrunnen)가 있다. 마리엔 광장에 위치는 분명치 않으나 분수를 처음 만든 것은 1318년이라고 한다. 1343년에는 시민분수라는 이름의 샘이 지금의 물고기 분수 자리에 있었고, 뒷날 마르크트브룬넨(Marktbrunnen, 광장분수)라고 불렀다. 아마도 땅을 판 샘이거나 흘러내리던 물이 고인 옹달샘 같은 것이었던 모양이다. 

도시 밖에서 뮌헨의 도심으로 물을 끌어들이는 수도관이 완성됐을 때 마리엔 광장에 분수대가 처음 만들어졌다. 당시에는 4개의 황동관으로부터 물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지금의 물고기분수의 전신은 1862~1865년에 콘라드 놀(Konrad Knoll)이 설계하고, 페르디난드 폰 밀러(Ferdinand von Millers) 왕실 황동주조 공장에서 제작한 청동분수대로 1866년에 가동을 시작했다. 기단 위에 앉은 네 명의 푸주한이 들고 있는 양동이에서 물을 쏟아지고, 그 위에는 4명의 악동(樂童)이 서있다. 맨 위에는 컵을 든 숙련공이 컵을 들고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4년, 마리엔 광장의 분수대는 심하게 부서졌다. 1954년 요세프 헨셀만이 분수대에 남아있던 세 명의 푸주한을 이용하여 분수대를 재건했다. 분수대에 있던 3명의 악동(樂童)들은 카를스토르(Karlstor)로 옮겨졌다. 분수대의 수조는 역암(Nagelfluh)로 만들었다. 

분수대 중앙의 기둥에는 헨셀만의 제자 오토 칼렌바하(Otto Kallenbach)가 제작한 청동물고기를 올렸다. (그래서 물고기분수대라고 하나보다.) 이 물고기를 보면 옛날 마리엔 광장의 풍경을 생각나게 한다고 한다. 중앙시장에서 장사하는 생선장수는 살아있는 물고기를 바구니에 담아 분수대의 흐르는 물에 담아놨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사순절이 시작되는 월요일에 ‘푸주한 던지기(Metzgersprung, 메츠거쉬프렁)’라고 하는 특별한 행사가 분수대에서 진행됐다. 오늘날에는 푸줏간에서 훈련을 마친 견습생에게 전문가 인증서를 건네주는 것으로 끝나지만, 옛날에는 로젠몬탁(Rosenmontag)이라고 하는 사순절 축제의 절정일에 수습을 마친 푸주한 견습생을 분수에 던져 넣었다. 구경꾼들은 분수대에서 나오는 견습생에게 물을 뿌리면서 사과, 견과류, 그리도 동전을 던져 축하해줬다. 일종의 침례의식이었던 셈이다. 

장미 월요일이라는 의미의 로젠몬탁은 사순절의 월요일로 독일 카네발(Karneval), 즉 축제의 절정이다.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벨기에 등 독일어권 국가에서 유명한데, 특히 쾰른, 본, 뒤셀도르프, 아헨, 마인츠 등 독일의 라인란트(Rhineland)에서는 특별한 날이다. 11월 11일 11시 11분에 시작되는 카네발(Karneval)은 사순절의 시작을 나타내는 라틴어 카르넴 레바레(carnem levare, 고기를 빼내는 것)에서 유래됐다. 로젠몬탁은 ‘유쾌한 소동’을 의미하는 독일어 방언 로즈(roose)와 월요일을 의미하는 몬탁(Montag)이 결합된 것이다.

카네발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멋진 옷을 차려입고 춤을 추면서 행진을 한다. 행진을 하는 수레에서는 길가의 군중들에게 카멜레(Kamelle)라고 하는 단과자를 던져주면서 헤라우(Helau) 혹은 알라프(Alaaf)라고 소리친다. 알라프는 독일 서부와 중부에서 사용하는 방언, 리푸아리안(Ripuarian)으로 ‘모두 꺼져’라는 의미의 알라 아프(ala af)에서 왔다. 재의 수요일이라고 하는 사순절 수요일에는 뮌헨 시장이 시종들과 함께 분수대에 나와 빈지갑을 씻었다. 15세기에 도시의 빈곤층이 하던 풍습에서 유래하는데, 이는 다음해 도시 재정 다시 풍족해지기를 기원하는 의미가 있다. 

마리엔 광장 북쪽에 있는 뮌헨 새 시청건물(Neues Rathaus)은 1874년 옛 시청으로부터 업무를 이전해왔다. 공모를 통해 신고딕 양식으로 설계한 게오르크 하우버리서(Georg Hauberrisser)의 작품이 선정됐고, 1867~1874년 사이에 디에너스트라세(Dienerstrasse) 모퉁이의 첫 번째 구역의 건물이 완공됐다. 1889년부터 1892년까지 디에너스트라세(Dienerstrasse)와 란트샤프트스트라세(Landschaftstrasse)의 모퉁이에 있는 구역이 건설됐다. 

1449~1455년 사이에는 얀 반 루이스브뢱(Jan van Ruysbroeck)이 지은 96m 높이의 후기 고딕양식 종탑을 연장하는 공사가 1898년에 시작돼 1905년 12월 관석(keystone, 이치의 맨 위에 끼워 넣는 돌)을 놓는 것으로 세 번째 구역의 공사가 마무리됐다. 

마리엔 광장을 향하는 98.5m의 파사드는 풍성한 장식을 자랑한다. 새 시청의 지하 1층에는 식당이 있다. 식당에 그려진 벽화 가운데 차르(Saar) 지역에서 잘 알려진 예술가 하인리히 쉴릿 (Heinrich Schlitt)이 그린 ‘포도주에 대한 맥주의 전투’라는 그림이 걸려있다.

아쉽게도 마리엔 광장에서는 CSD 축제가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라서 광장에 흩어져 있는 조형물은 물론 뮌헨 새 시청의 전면에서 볼 수 있는 역사적인 기념물을 챙겨볼 수가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뭐라도 챙겨볼 요량을 하는 찰나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다. 천둥과 번개가 동반됐으니 옛날 같으면 하늘이 노한 탓이라 했겠다. 

자유 시간을 얻었지만 비를 피하느라 별로 한 일이 없다. 빗줄기가 가늘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결국 일정을 맞추기 위해 성모 교회(Frauenkirche, 프라우엔키르케)를 찾아 나섰다. 성모 교회는 마리엔 광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지만 교회 밖에는 비를 그을만한 장소가 없어서 결국은 미사를 드리는 교회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교회 부근에 있던 사람들 사정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으로 교회 안은 몸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붐볐다. 미사 중이니 사진을 찍을 수도 없고, 비가 잦아지기를 기다리면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글·양기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진료심사평가위원회 평가책임위원

[양기화의 인문학기행] 독일, 열아홉 번째 이야기
1984 가톨릭의대 임상병리학 전임강사
1991 동 대학 조교수
1994 지방공사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1998 을지의대 병리학 교수
2000 식품의약품안전청, 국립독성연구원 일반독성부장
2005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2009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상근평가위원
2019 현재, 동 기관 평가책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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