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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증권사, 여성의 자리는 여전히 ‘벤치’

증권사, 여성의 자리는 여전히 ‘벤치’

지영의 기자입력 : 2019.07.16 05:45:00 | 수정 : 2019.07.16 02:05:13

야구 용어 중 ‘벤치 워머(bench warmer)’라는 말이 있다. 벤치에 앉아 자리를 데우며 출전 기회를 기다리는 선수를 지칭하는 용어다. 감독이 능력주의에 따라 공정하게 평가할 경우, 기량이 뛰어난 선수가 벤치워머가 될 일은 없다. 

그러나 개인의 능력이 아닌 출신과 인종, 집안 배경 등에 따른 차별이 있으면, 제아무리 능력 있는 선수일지라도 만년 벤치 신세가 될 수도 있다. 아직도 이같은 차별이 만연한 곳이 있다. 바로 국내 증권사다. 대다수의 증권사 내에서 여성들은 강제로 벤치에 앉는다.

지난 10일 한 취업 준비생에게 제보를 받았다. 제보자는 서울의 한 유명 대학 홈페이지에 지원 자격을 ‘남성’으로 한정한 인턴 채용 공고가 게재돼 있다고 전했다. 해당 공고는 DB금융투자의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서에서 기업 및 산업, 시장환경 등을 분석할 인력을 구한다는 내용이었다. 공고 속 지원 자격에는 실제로 ‘90년대 이후 출생 남성’이라고 적혀있었다.

여성 지원자를 지원부터 막는 것은 명백한 차별이다. 그럼에도 증권사의 기업금융 관련 부서 중 ‘특별한 직무상’의 이유로 특정 성별만 뽑을 이유가 있는지 확인해봤다. 해당 회사 측에 전화하기에 앞서 다른 증권사 여러 곳에 연락을 돌렸다. 만에 하나라도 특이한 경우가 있는지 점검하기 위해서였다. ‘해당 부서의 직무상 남성만 뽑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재차 물었다. 정말 관련이 없다면, 왜 증권사 내 기업금융 관련 직무에 여성이 거의 없는지를.

몇몇 증권사에서는 ‘사실 여자에게는 체력적으로 힘든 부서’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또 ‘여자 직원들이 출산과 육아 문제로 퇴사해버리는 단점 때문’이라는 볼멘소리도 있었다. 성차별적 공고를 게재한 DB금융투자 측에서는 ‘실무자간 의견 조율 중 검수를 거치지 못한 실수’라는 답변이 나왔다. 풀이하면 채용 논의 과정에서 여성을 배제하라는 지시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전혀 새로운 일은 아니다. 증권업계는 성평등 문제에 있어 늘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 증권사가 분기별로 공개하는 전자공시 상 사업보고서 내 통계수치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증권사에는 여전히 남성 직원이 압도적으로 많다. 여성 직원의 임금은 남성 직원이 받는 급여의 60% 수준에 그친다. 고임금 직군인 핵심부서에 주로 남성이 배치되기 때문이다. 반면 상대적으로 임금이 적은 ‘백오피스(후선지원)’인 서무나 창구업무 등의 절대다수가 여성이다. 

그나마 희망적인 것은 이 차별의 장벽에도 조금씩 균열이 생기고 있다는 점이다. 똑똑한 일부 증권사들이 성별에 따른 격차 개선을 위한 행보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KB증권이다. KB증권은 증권업계 최초 여성 수장인 박정림 대표 취임 이후 여성가족부와 협약을 맺고 보직에 성별 균형을 강화할 계획 등을 내놨다.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시작이 반이라 했다. 다른 증권사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무너지는 벽에 깔리지 않으려면 행동에 나서야 하지 않을까.

지영의 기자 ysyu1015@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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