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화의 인문학기행] 독일, 스물다섯 번째 이야기

기사승인 2019-07-16 17:4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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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성모 교회 구경은 뒤로 미루고 페그니츠 강을 건너 장크트 로렌츠 교회(St. Lorenz Kirche, 라우렌시오 성인에게 헌정된 교회)를 향해 부지런히 이동해갔다. 하지만 교회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문이 닫혀 있었다. 예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테복음 11장 28절)”라고 말씀하셨다고 하는데, 정작 장크트 로렌츠 교회는 문이 닫혀 들어갈 수가 없었다.

바이에른 복음주의 루터 교회(Evangelisch-Lutherischen Kirche in Bayern)에 속하는 장크트 로렌츠 교회의 역사는 13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929년 발굴조사에 따르면, 이곳에 로렌티우스 예배당(Laurentius-Kapelle)이 건립된 것은 1250년으로, 주랑과 2개의 측랑으로 된 로마네스크양식의 가톨릭 성당이었다. 14세기 들어 예배당을 계속 확장하기 시작해 1477년 마무리됐다. 장크트 로렌츠 교회는 1525년 종교개혁의 결과로 독일 최초로 복음주의 루터 교회에 속하게 된  교회 가운데 하나다. 

이 교회는 처음 완성됐을 때부터 라우렌시오 성인(Sanctus Laurentius, 225~258년)에게 헌정됐다. 라우렌시오 성인은 식스토 2세 교황시절 로마의 일곱 부제 중 한 사람이었고,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박해로 순교했다. 라우렌시오 성인이 장크트 로렌츠 교회의 수호성인이지만 교회에 보관된 로렌츠 성인의 유물은 없다. 오히려 샤를마뉴 대제의 고해신부인 데오카루스 성인(St. Deocarus)의 유물을 1316년부터 보관해오고 있다. 

교회의 규모를 보면, 길이 91.20m, 너비 30.0m이며, 본당의 높이는 24.20m에 너비는 10.40m이다. 정면에 있는 2개의 탑은 높이가 각각 80.8m, 81m이다. 교회의 전면은 2개의 탑에 의하여 장중한 모습을 갖추고 있다. 뾰족하고 현란하게 장식된 전면에는 직경이 9m에 달하는 장미창문이 복잡한 문양으로 장식돼있고, 역시 세밀하게 장식된 박공을 볼 수 있다. 

내부에 들어가면 주랑과 2개의 측랑을 구분하는 각주랑 성당의 모습을 하고 있다. 기둥 사이의 위쪽에는 벽을 두어 첨두홍예의 모양을 만들었다. 성당 안을 장식하는 많은 조각들은 이 교회를 위해서 만든 것보다 주변에 있는 세속화된 수도원이나 파괴된 수도원에서 가져온 것들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래 고딕양식의 교회에 맞게 만든 추기 고딕양식의 조각 두 점이 볼만하다.

먼저 한스 임호프(Hans Imhoff)가 기증한 성체안치탑(Sakramentshäuschen)이다. 1493~1496년 사이에 제작된 높이 약 20m 너비 약 3.4m에 달하는 조각 작품이다. 바하 바이 퓌르트(Vach bei Fürth)의 채석장에서 채취한 사암을 깎아서 여러 층으로 쌓아 작은 첨탑의 형태를 만든 것으로 그리스도의 수난에 관한 다양한 장면을 조각했다.

맨 아래 받침대 위로 가운데 기둥을 중심으로 4개의 기둥을 세워 세공한 난간을 얹었다. 더하여 뒤편에 있는 2개의 기둥 옆과 전면에 무릎을 꿇은 채 난간을 어깨로 받친 세 사람을 조각했다. 공동으로 짊어진 삶을 상징하는 3개의 다른 세대 사람들을 나타낸다. 앞에 있는 사람은 이 작품을 제작한 아담 크라프트(Adam Kraft)의 자화상이다.

난간 위에 성찬을 보관하는 캐비닛이 있다. 금으로 도금한 격자창을 통해서 성찬그릇을 볼 수 있다. 캐비닛의 네 귀퉁이에는 모세, 가브리엘천사, 성모 마리아, 그리고 아론 등을 조각했다. 세 번째 단에는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 최후의 만찬 그리고 예수의 작별인사 등을 부조로 새겼다. 그 위에는 예수의 고난과정,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를 지켜보는 성모 마리아, 요한, 그리고 막달라 마리아를 새겼고, 이어서 예수의 부활을 묘사했다. 성체안치탑의 끝 부분은 조여져 있는데, 이는 하나님과의 계약을 의미한다. 

두 번째 조각 작품은 ‘로사리오 묵주 안의 수태고지(Engelsgruß im Rosenkranz)’다. 후기 고딕 양식으로 제작된 이 작품은 파트리지어 안톤 투처(Patrizier Anton Tucher)가 주문해서 파이트 스토스(Veit Stoß)가 1517~1518년에 제작한 것이다. 55개의 황금장미로 장식된 커다란 화관(3.72×3.20m 크기) 안에 보리수나무에 조각한 가브리엘 천사와 성모 마리아를 세웠다. 화관 위에는 이를 축복하는 아버지 하나님이 계시다. 화관에 얹혀있는 7개의 메달에는 마리아의 일곱 가지 기쁨을 새겼다. 1817년 4월 2일 떨어져 심각하게 파손돼 정교한 복원을 해야 했다.

본당의 제단화는 데오카루스 성인의 삶에 관한 것으로, 제작시기를 알 수 있는 드문 작품이다. 뉘른베르크 회화와 조각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데오카루스 성인은 헤리덴 마을 최초의 대수도원장으로 장크트 로렌츠 교회에 유물이 안치돼있다. 장크트 로렌츠 교회의 왼쪽으로는 투겐트브룬넨(Tugendbrunnen)이 있다. 

우리말로 옮기면 ‘미덕의 분수’다. 후기 르네상스 양식의 분수는 뉘른베르크시 의회가 의뢰해 1584~1589년 사이 뉘른베르크의 조각가 베네딕트 부르셀바우어(Benedikt Wurzelbauer)가 제작한 것으로 뉘른베르크를 상징하는 표지 가운데 하나다. 로렌츠 교회의 묘지에 조성된 로렌츠 광장에 서 있다.

로렌츠 광장보다 2계단 높게 사암으로 만든 8각형의 수조를 놓고 그 위에 청동을 부어 인간의 7개 덕목을 묘사한 분수대를 세웠다. 맨 위에 올린 덕목은 정의다. 정의의 여신 니케는 눈을 가리고 오른손에는 칼을, 왼손에는 천칭을 든 모습을 하고 있다. 그 아래로는 뉘른베르크의 국장을 지닌 채 트럼펫을 부는 모습을 한 6명의 푸티(putti)가 서 있다. 

그리고 그 아래로는 믿음, 사랑, 희망 등 세 가지의 신학적 덕목과 절제, 용서, 인내 등 세 가지의 세속적 덕목으로 된 여섯 가지의 미덕을 나타내는 조각을 세웠다. 믿음을 상징하는 조각은 십자가와 잔을 들었고, 사랑을 상징하는 조각은 두 아이와 함께하며, 희망을 상징하는 조각은 닻을 들었다. 한편 물주전자는 절제를, 사자는 용서를, 그리고 어린 양은 인내를 상징한다.

장크트 로렌츠 교회 안을 보지 못해서 섭섭하지만 어쩔 수 없이 발길을 돌려 저녁을 먹으러 갔다. 로렌츠 광장에서 완만한 경사의 언덕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페그니츠 강에 걸려 있는 무제움브뤼케(Museumsbrücke, 박물관 다리)를 만난다. 박물관 다리는 페그니츠 강으로 구분되는 장크트 제발두스 구역과 장크트 로렌츠 구역을 연결하며, 이 다리부터 장크트 로렌츠 구역의 쾨니히슈트라세 (Königstraße, 왕의 길)가 시작된다. 뉘른베르크 지역에서 페그니츠 강에 걸려있는 다리 가운데 가장 오래된 다리일 것이다. 

기록에 따르면 13세기 무렵 프란치스코 수도원 근처에 나무다리가 있어 바르퓌서브뤼케(Barfüßerbrücke, 맨발의 수도사 다리)라고 불렀다고 한다. 몇 세기에 걸쳐 홍수에 다리가 떠내려가곤 했기 때문에, 1484년에는 돌로 된 하부 구조위에 나무로 된 상부 구조를 얹은 다리를 건설했다. 1590년 이 다리도 홍수에 손상을 입어 보수를 반복했다. 

1699~1700년에 요세프 1세의 명에 따라 2개의 석조 아치를 쌓은 커다란 다리를 새로 놓고, 쾨니히브뤼케(Königsbrücke, 왕의 다리)라고 불렀다. 19세기 무렵 프란치스코 수도원에 들어섰던 바르퓌서 교회(Barfüsserkirche)의 자리에 박물관이 들어서면서 이 다리 역시 박물관 다리라고 부르게 됐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폭격으로 손상된 다리를 홍수에 대비하기 위해 1954년에 1700년대 모습으로 재건했다. 다만 폭을 2배로 넓히고 아치도 3개로 늘렸다. 길이 55m의 아치교는 약 80도 각도로 페그니츠 강을 가로지르며, 각각 10.5m, 13.8m 그리고 13.36m 폭인 3개의 원호구획을 가지고 있다. 다리는 철근 콘크리트로 건설하고 표면을 사암으로 덮었다. 19.8m 폭의 도로 양편으로는 높이 0.9m, 폭 0.4m의 사암으로 된 난간을 세웠다. 다리의 중간에는 요제프 1세와 레오폴드 1세를 기리는 기념물을 양쪽으로 나누어 세웠다.

박물관다리에서 동쪽을 바라보면 2개의 아치를 통해 강안의 섬에 걸쳐 있는 성령병원(Heilig-Geist-Spital)이 보인다. 1332-1339년 사이에 뉘른베르크의 귀족 콘라드 그로스(Konrad Gross)에 의해 건설된 성령병원은 노인과 궁핍한 사람들을 돌보는 장소였다. 성령병원은 신성로마제국 최대의 개인적인 기부행위로 기록됐다. 

뿐만 아니라 1424년에서 1796년까지 뉘른베르크에 있던 황실 보석을 보관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처음 노인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구빈시설이었던 곳은 이내 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목적의 병상 100개 이상을 확보하고 진료를 하게 됐다. 1829년에는 산트가세(Sandgasse) 1845번지에 있는 지금의 병원 모체가 되는 종합병원이 설립됐다. 

이날 저녁은 페그니츠 강 위에 걸려있는 성령병원의 아치 위에 있는 식당에서 먹게 됐다. 건물에 들어서면서부터 예스러운 분위기가 남다르다. 식당 창문을 통해서 박물관 다리를 내다볼 수도 있다. 분위기 탓인지 일본에서 온 관광객들이 많이 든다고 했다. 그분들은 여전히 소란스럽다.

박물관 다리를 건너 성령병원의 식당으로 가는 길목에 2007년에 사망한 조각가 위르겐 베버(Jürgen Weber)의 청동조각 작품, ‘바보배 분수(Narrenschiffbrunnen)’가 있다. 1984~1987년 사이에 제작된 작품은 2차례 주조됐다. 첫 번째 주조된 작품은 하멜른(Hameln)에 있다. 

두 번째 주조된 작품이 1987년 뉘른베르크의 미술전시회에서 전시됐고, 쿠르트 클루텐트레터(Kurt Klutentreter)가 구매했던 것이 여기 설치됐다. 분수로 제작된 작품에 물이 없는 것은 위르겐 베버의 작품에 대한 비판 때문에 뉘른베르크 시의회의 문화위원회는 30만 마르크의 예산이 소요될, 분수에 물을 공급하기를 거절했기 때문이다. 

분수의 조각상은 세바스티안 브란트(Sebastian Brant)가 1497년에 발표한 풍자시 ‘바보배(Das Narrenschiff)’에서 영감을 받은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의 목판화에서 따온 것이다.  3.6m 높이의 청동조각은 작은 배로 비유되는 세계에서 낙오될까 위협받는 사람들을 표현한 것이다. 

분수대에 있는 2개의 현수막에는 지금까지의 환경파괴, 전쟁, 폭력을 중단하기를 호소하고 있다. 중세 후기의 도덕적 해이를 풍자한 브란트의 ‘바보배(Das Narrenschiff)’는 서문과 112장으로 구성됐는데, 나라고니엔(Narragonien)이라는 가상의 국가로 가는 배를 탄 100명 이상의 전형적인 바보들이 저지른 잘못을 재미있게 풍자했다.

글·양기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진료심사평가위원회 평가책임위원

[양기화의 인문학기행] 독일, 스물다섯 번째 이야기
1984 가톨릭의대 임상병리학 전임강사
1991 동 대학 조교수
1994 지방공사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1998 을지의대 병리학 교수
2000 식품의약품안전청, 국립독성연구원 일반독성부장
2005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2009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상근평가위원
2019 현재, 동 기관 평가책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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