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오비맥주 출고가 할인,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기사승인 2019-07-30 04: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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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오비맥주 출고가 할인,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2015년에 개봉한 영화다. 영화 속에서 우연히 만난 두 남녀가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면서 이야기는 진행된다. 같은 이야기가 두 번 반복되지만 남자의 행동에 따라 상황은 변주된다. 남자의 행동은 상황을 비틀고, 비틀린 상황은 처음과는 다른 여자의 모습을 이끌어낸다. 지금과 그 때, 행동의 변화에 따라 모든 관계는 새롭게 정립된다. 

지난 23일 오비맥주는 자사 제품인 카스와 필굿 등의 출고가를 한시적으로 15% 내린다고 밝혔다. 대표 제품인 카스 병맥주는 1203원에서 1147원으로, 생맥주 케그 20ℓ는 3만3443원에서 2만8230원으로 내린다.

이같은 발표에 주류도매상은 반발하고 나섰다. 전국종합주류도매업중앙회는 지난 26일 긴급 이사회를 열고 오비맥주의 출고가 인하를 ‘밀어내기’로 적시했다. 중앙회는 이날 오비맥주에 대한 빈 병 반납 거부, 자료요청 거부 등 보이콧을 결의했다. 

주류도매상들이 오비맥주의 출고가 인하를 밀어내기로 판단한 근거는 지난 6월 이미 할인가를 한시적으로 적용한 바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당시 주류 리베이트 쌍벌제에 대한 논의가 불거지면서 오비맥주 등 제조업체들은 출고가를 낮춰 도매상에게 제공했고, 이 물량은 고스란히 일선 소매점으로 흘러들어갔다.

당시 1203원에 받은 물량이 아직 소진되지 않은 상태에서 출고가가 낮아진다면, 소매점에서 주류도매상에 인하된 출고가 만큼의 디스카운트를 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차액만큼의 손해는 도매상들의 몫이다. 

갈등의 시작은 ‘한시적 인하’라고 했던 오비맥주의 출고가 재인하다. 그렇다면 ‘왜’, 오비맥주는 출고가를 다시 낮춘 걸까. 업계에서는 이에 대해 여러 가지 분석을 내놓고 있다. 경쟁사인 하이트진로의 ‘테라’가 예상 외로 선전하자 이를 견제하기 위함이라는 목소리가 첫 번째다. 또 최근 일본의 무역규제로 인해 반일 감정이 높아진 상태에서 일본 맥주 판매량이 줄어들자 이쪽 파이를 흡수하기 위함이라는 분석도 있다. 

오비맥주는 직접적으로 소비자 가격을 컨트롤 할 수 없는 만큼, 출고가 인하를 통해 소비자가 인하를 유도하기 위함이라는 입장이다. 제조업체의 소매점 직납은 주류법상 금지돼있다. 도매상들의 반발에도 사재기는 도매사의 선택이지 강요할 수 없는 문제라며 선을 그었다. 

도매상 입장에서는 출고가의 일정 %를 매겨 소매점에 넘기는 만큼, 출고가가 높아야 마진이 높아지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도매상들의 반발이 소비자 피해 등이 아닌, 자신들의 주머니가 가벼워지는 것을 막기 위함이라는 지적으로 풀이된다.

그렇다면 지금과 반대의 상황에서는 어땠을까. 업계에 따르면 2016년 5월경, 카스의 출고가 인상 소식이 업계에 돌기 시작했다. 2009년과 2012년 가격을 인상한 만큼, 마지막 인상 이후 4년이 지난 2016년이 적기라는 이야기도 ‘썰’에 힘을 보탰다. 도매상들은 출고가가 인상되기 직전 물량을 최대한 받아냈다. ‘도매상 사장 집 안방까지 카스가 그득하다’는 우스갯소리가 떠돌기도 했다. 당시 맥주 성수기인 7월을 앞둔 만큼 출고가가 오르지 않더라도 물량 털어내기는 문제 없었다. 오비맥주는 맥주 성수기가 지난 11월 출고가 인상을 단행했다. 

2016년과 2019년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출고가 인상 이야기에 미리 물량을 받아 차액을 더하려 했던 것, 그리고 ‘한시적 인하’로 물량을 확보한 뒤 출고가가 원래대로 돌아오면 판매하려 했던 것. 

과연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린 걸까. 

조현우 기자 akg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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