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화의 인문학기행] 독일, 서른한 번째 이야기

기사승인 2019-08-08 1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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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스덴 성에서 나와 길을 건너면 즈빙거궁전(Dresdner Zwinger)이다. 즈빙거라는 이름은 바깥쪽 성벽과 안쪽 성벽의 사이에 있는 ‘바깥 마당’을 의미하는 중세 독일어에서 유래한 것이다. 지금은 드레스덴 구시가의 북서쪽 끝에 위치한다. 이 지역에 성벽이 설치된 것은 12세기 후반이며 후스전쟁(1419~1434) 기간 중이던 1427년 도시의 방어력을 강화하기 위해 바깥 성벽을 쌓으면서 생긴 공간에 즈빙거정원(Zwingergarten)을 조성했다. 16세기 무렵까지 이 공간은 도시의 요새 밖에 있었다. 

작센의 선제후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투스 1세 (Friedrich Augustus I)는 폴란드 왕에 즉위한 1697년 루이 14세가 지은 베르사유 궁전에 버금가는 궁전을 짓기로 했다. 궁정 건축가 마토이스 다니엘 푀펠만(Matthäus Daniel Pöppelmann)의 설계에 따라 1710년부터 1728년까지 단계적으로 건설됐다. 푀펠만의 설계에는 현재의 궁전과 정원의 복합공간은 물론, 챔버 오페라하우스(Semperoper Dresden)를 포함한 엘베강 아래 정원까지 포함됐지만, 1733년 왕이 죽으면서 공사가 진행되지 않았다.

현재의 위치에 있는 챔버 오페라하우스는 1838~1841년 사이에 건축가 고트프리드 셈퍼(Gottfried Semper)의 설계로 지은 것이다. 이전에는 즈빙거에 있는 오페라하우스를 이용했다. 새로 건축한 챔버오페라하우스는 1869년 화재로 소실됐다. 2번째 챔버 오페라하우스는 1876~1878년 사이에 고트프리드 셈퍼의 장남 만프레드 셈퍼(Manfred Semper)가 아버지의 조언을 받아 재건한 것이다. 

오페라하우스는 많은 조각 작품으로 장식돼있다. 정면의 입구 위에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포도주와 풍요, 포도나무, 광기, 다산, 황홀경, 연극의 신이며, 죽음과 재생의 신으로 숭배하는 디오니소스(Dionysos)와 그의 아내 아리아드네(Ariadne)가 모는 4마리의 팬더 마차를 올려놓았다. 요하네스 실링(Johannes Schilling)의 작품이다. 

입구의 양편으로는 후기 고전주의 조각가인 언스트 리이첼(Ernst Rietschel)이 조각한 독일의 문호 두 사람의 석상을 세웠다. 왼쪽이 괴테이며, 오른쪽이 쉴러이다. 한편 1층과 2층의 양끝에 있는 현관에는 언스트 율리우스 하넬(Ernst Julius Hahnel)의 조각 작품을 각각 세웠다. 1층의 왼쪽 현관에는 셰익스피어, 오른쪽 현관에는 몰리에르, 2층의 왼쪽 현관에는 소포클레스, 그리고 오른쪽 현관에는 에우리피데스가 있다. 

2번째 챔버 오페라하우스 역시 드레스덴 폭격으로 크게 부서졌다. 1968~1975년 사이에 재건을 위한 연구를 수행했고, 1977년 볼프강 핸쉬(Wolfgang Hänsch)의 감독 아래 셈퍼의 설계에 따라 재건됐다. 다만 좌석 수는 1300석으로 줄었다. 전쟁 관련 파괴 40주년인 1985년 2월 13일, 예술 감독 맥스 게르트 쇤펠더(Max Gerd Schönfelder)의 지휘로 칼 마리아 폰 베버(Carl Maria von Webers)의 오페라 ‘마탄의 사수(Der Freischütz)’가 개관작품으로 공연됐다. 

챔버 오페라하우스 앞에 있는 드레스덴 극장광장 가운데에 서 있는 기마상은 작센 왕국의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2세에 이어 왕위에 오른 요한(Johann von Sachsen)이다. 요하네스 실링이 1889년에 제작한 것으로, 높이 6m의 기마상을 10m 높이의 좌대에 올려 전체 높이가 16m에 달한다. 

좌대에는 요한의 재위 시절 이룩한 다양한 업적을 새겼는데, 농업·임업· 목축 등 1차 산업을 물론 무역과 상업, 과학과 중공업, 그리고 무용·드라마·문학·음악·건축·조각·회화 등 7가지 예술장르는 물론 심지어 군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이룬 업적을 부조로 새겨 넣었다.

극장광장에서 서쪽으로 즈빙거 궁전이 있다. 정문을 통해서 정원으로 들어갈 수 있다. 정사각형의 즈빙거의 정원은 서로 교차하는 넓은 통로에 의해 4개 구획으로 나뉜다. 교차점 부근에 4개의 커다란 수조를 뒀고, 중앙에는 분수를 뒀다. 수조 주변은 잔디를 깔아 여느 정원과는 달리 단순한 기하학적 구조만을 나타낸다. 

정원의 동쪽은 옛 주인의 미술관(Gemäldegalerie Alte Meister)과 셈퍼 갤러리(Sempergalerie)가 있는 3층 건물이 있다. 길이 127.35m 높이 23.77m의 이 건물은 1847~1854년 사이 고트프리드 셈퍼에 의해 이탈리아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은 사암 건물이다. 

외부에는 12개의 동상, 16개의 부조, 20개의 타원형 메달 장식, 72개의 박공 등, 모두 120개의 조각으로 장식했다. 제우스, 모세, 미켈란젤로, 괴테 등 각기 다른 시대를 상징하는 160명 이상의 인물을 볼 수 있다. 건물이 완공되었을 때 ‘우리 시대에서 가장 훌륭하고 부유하게 장식된 박물관 건물’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옛 주인의 미술관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회화 컬렉션 가운데 하나로, 15세기부터 18세기에 만들어진 약 750점의 걸작을 소장하고 있다. 주로 17세기의 플랑드르 화가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르네상스 작품이다. 그 중 라파엘로가 그린 시스틴의 성모(Sixtinische Madonna)는 중요하다. 가던 날이 장날이라고 우리 일행이 간 날이 휴관일 이었다.

셈퍼 갤러리의 반대쪽은 아케이드 형식을 갖춘 성벽이 서 있는데, 성벽 위로 통로가 만들어져있다. 그 중간에는 즈빙거 궁전의 상징이라고 할 왕관의 문(Kronentor)이 있다. 왕관의 문 양쪽으로는 긴 회랑이 연결되며, 왕관의 문은 옛 성벽에 붙어 있다. 왕관의 문은 도시의 외부에서 성벽을 통해 들어올 수 있는 통로 역할을 했다. 여기에 성벽 밖 해자에는 좁은 목조 부교가 설치돼있어 적의 공격이 있을 경우에는 신속하게 해체할 수 있었다.

1층은 성벽의 통문 역할을 했고, 2층 역시 성벽 위의 통로에 설치된 문이었다. 3층에는 왕관을 올렸다. 1층의 통로에는 부조를 세운 벽감을 형성하는 두 쌍의 기둥이 있다. 해자 쪽의 벽감에는 왼쪽으로 불과 대장장이의 신 불카누스(Vulkan), 오른쪽으로는 주신(酒神) 바쿠스(Bacchus)의 상을 세웠다. 

안뜰 쪽의 벽감에는 왼쪽으로 곡물의 여신 케레스(Ceres)를, 오른쪽으로는 과수와 원예의 여신 포모나(Pomona)를 세웠다. 궁전을 향한 입구에는 조각가 파울 헤르만(Paul Heermann)이 제작한 목관연주자와 또 다른 조각가 요한 요하킴 크레츠슈마(Johann Joachim Kretzschmar)가 제작한 탬버린연주자의 조각상이 있다. 

2층은 4면에 아치형 문을 통해 주변을 조망할 수 있는 작은 방이다. 2층의 고미다락에는 양파 모양의 초록색 돔을 올렸고, 돔을 돌아가면서 헤라클레스를 비롯해 계절별로 다양한 12가지 주제의 조각을 세웠다. 

돔 위에는 4마리의 폴란드 독수리가 왕관을 받치고 있는 모습을 조각했다. 양파 모양의 돔은 그리스 정교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드레스덴의 바로크 양식으로 만든 왕관의 문은 작센과 폴란드의 공생적 관계를 의미하며, 작센왕국이 동양과 서양 문화의 중재자임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즈빙거 정원의 남쪽과 북쪽으로는 각각 2개의 건물을 대칭형태로 짓고 그 사이 공간은 단순한 형태로 가로막지 않고 반원형으로 부풀려 냈다. 북쪽에는 성벽 위로 올라가는 계단을 뒀는데, 북서쪽 건물에는 왕립 수학과 물리학 기구 박물관(Mathematisch-Physikalischer Salon)이 있고, 북동쪽 건물에는 콘서트홀(Marmorsaal)이 들어 있는 프랑스관이다. 프랑스관의 뒤쪽에는 요정의 욕조(Nymphenbad)가 조성됐다. 

계단식으로 흘러내리는 인공폭포가 아래쪽에 있는 반원형의 욕조로 이어진다. 요정의 욕조를 장식하는 조각 작품들은 조각가 요한 크리스티안 키르치네르(Johann Christian Kirchner)가 제작한 것들이다. 분수대 꼭대기의 오른쪽에는 포세이돈과 그의 아내 암피트리트(Amphitrite), 왼쪽에는 포세이돈의 아들 트리톤과 바다의 요정 네레이드(Nereide)의 상을 세웠다. 그밖에도 천사 장식을 비롯하여 돌고래와 함께 하는 6개의 천사상, 욕조에서 물을 튀기는 물고기, 꽃다발을 든 요정 등을 조각했다.

즈빙거 정원의 남동쪽 구석에는 독일관이 있고, 남서쪽에 있는 건물은 도자기박물관(Porzellansammlung)이다. 드레스덴 주립 미술 컬렉션(Staatliche Kunstsammlungen Dresden)에 속한 12개의 박물관 가운데 하나다. 드레스덴 주립 미술관은 1560년 작센 선제후가 설립한 미술품 진열실(Kunstkammer)이 모태가 됐다. 작센의 선제후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1세가 1715년부터 수집한 도자기들이 소장품의 중요한 부분을 이룬다. 

그는 특히 중국과 일본의 전통 도자기에 관심이 많았는데, 명나라의 청백색 도자기에 매료됐다. 컬렉션에는 아시아의 도자기 이외에도 드레스덴 인근에 있는 마이센(Meissen)에서 제작한 도자기도 포함돼있다. 마이센에서는 중국의 형식을 고수하면서도 신화적 장면이나 로코코 양식의 유럽적 요소를 가미한 도자기를 제작하고 있었다. 도자기박물관은 약 2만점의 도자기를 소장하고 있지만, 장소가 넓지 않은 관계로 2,000점 정도를 전시하고 있다. 

드레스덴 인근의 마이센이 유럽 도자기의 메카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은 작센의 선제후 강건왕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1세가 아시아의 도자기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했다. 18세기 초 쓸모없는 재료를 가지고 금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 연금술사 요한 프리드리히 뵈트거(Johann Friedrich Böttger)에게 아시아 도자기를 작센에서 만들도록 주문했던 것이다. 2년여에 걸쳐 뵈트거 등 여러 사람이 노력한 끝에 좋은 도자기를 생산할 수 있게 됐다. 

1710년 1월 23일 법령에 따라 폴란드 왕립 및 작센 선제후국 도자기 제조소(Königlich-Polnische und Kurfürstlich-Sächsische Porzellanmanufaktur)가 설립됐다. 처음에는 제조법을 공개하지 않고 보호했지만, 오스트리아로 제조법이 넘어가고 말았다. 하지만 마이센 도자기는 개선을 거듭해 큰 인기를 끌게 되었고, 작센왕국의 재정에도 큰 도움이 됐다.

즈빙거 궁전을 나와 극장광장을 가로질러 엘베강변으로 가다보면 광장 동쪽 끝에 가톨릭 궁전교회(Katholische Hofkirche)라고도 하는 드레스덴 대성당이 있다. 성 삼위일체에 헌정된 이 교회는 작센 선거후이자 폴란드 국왕이던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투스 2세(Friedrich August II, 폴란드 국왕으로서는 아우구스투수 3세)의 위임을 받아 이탈리아 건축가 개타노 키아베리(Gaetano Chiaveri)의 설계로 1738~1751년 사이에 건설됐다. 

당시 작센주 사람들 대부분은 개신교를 믿고 있어 1726~1743년 사이에 성모교회(Frauenkirche)를 세웠다. 하지만 작센의 선제후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투스 1세(Friedrich August I)는 폴란드 국왕에 즉위하기 위해 1697년에 가톨릭으로 개종했던 것이다. 

드레스덴 대성당은 외국인 건축가가 지은 유일한 왕실 건물이다. 후기 바로크 양식으로 건설된 교회의 길이는 92m, 너비는 54m로 총면적이 4800m²에 달한다. 탑의 높이는 86m이다. 교회의 전면과 난간에는 이탈리아 조각가 로렌조 마티엘리(Lorenzo Mattielli)를 비롯해 드레스덴의 조각가 파울(Paul)과 야콥 메이어(Jakob Mayer)가 제작한 78개의 성자 동상을 세웠다. 

특히 입구 옆에 있는 벽감에는 네 명의 복음사가의 석상을 세웠다. 왼쪽에는 요한과 마태를, 오른쪽에는 마가와 루가를 배치했다. 한편 입구 위에는 기독교의 네 가지 덕목인 믿음(Fides, Faith), 희망(Spes, Hope), 자비(Caritas, Charity) 그리고 정의(Justice, Justice) 등으로 둘러싸인 벽감에 각각 사도 베드로와 사도 바울의 조각을 세웠다. 

교회의 내부는 본당에 2개의 통로 그리고 모퉁이에 4개의 예배당을 배치했다. 발타사르 퍼모서(Balthasar Permoser)가 새롭게 단장한 바로크 양식의 강단이 볼만하다. 강단 옆 제단에 걸린 ‘요셉의 꿈’과 ‘기독교 종교의 승리’라는 제목의 그림은 안톤 라파엘 멩그스(Anton Raphael Mengs)의 작품이다. 한편 높은 제단에 걸린 폭 4.5m 높이 10m의 제단화 ‘예수님의 승천’역시 안톤 라파엘 멩그스가 1756년에 그린 것이다.

글·양기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진료심사평가위원회 평가책임위원

[양기화의 인문학기행] 독일, 서른한 번째 이야기
1984 가톨릭의대 임상병리학 전임강사
1991 동 대학 조교수
1994 지방공사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1998 을지의대 병리학 교수
2000 식품의약품안전청, 국립독성연구원 일반독성부장
2005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2009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상근평가위원
2019 현재, 동 기관 평가책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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