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쿠팡이 일본 기업이라고?

기사승인 2019-08-09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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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쿠팡이 일본 기업이라고?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로 촉발된 ‘일본 불매운동’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국내 최대 이커머스 기업 쿠팡에도 불씨가 옮겨 붙었다. 재일교포인 야스모토 마사요시(安本正義),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3조 가량을 쿠팡에 투자했으니, 일본 기업의 계열사가 아니냐는 게 주요 요지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아직까지 이 주장은 틀렸다고 보는 게 맞겠다.

‘아직까지’라고 한정을 한 이유는 쿠팡은 현재 적자 상태로, 일본에 이익금이 돌아갈 일이 전혀 없는 탓이다. 물론, 이 역시 일본 기업이라는 기준을 ‘상당한 이익금을 일본에 보내는 기업’으로 봤을 때의 이야기다. 쿠팡의 적자는 1조970억원에 달하는 상태다. 

쿠팡은 위기에 올릴 때마다 상당한 규모의 투자를 유치해 이를 타개한 것으로 유명하다. 5년 전에는 미국의 세콰이어 캐피털로부터 1억 달러, 이어 미국 블랙록으로부터 3억 달러, 4년 전에는 일본 소프트뱅크로부터 10억 달러, 작년에는 20억 달러를 소프트뱅크비전펀드로부터 또 한번 투자받았다. 국내 인터넷 기업 역사상 이런 배팅은 없었다. 

손 회장으로부터 무려 3조5000억원 가량을 수혈 받은 것이다. 쿠팡의 미국 모화사인 쿠팡LCC의 최대 주주는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다. 120조 규모의 자금력을 자랑한다. 국적을 넘어 우버와 위위크 등 전 세계의 80여 ‘유니콘’ 기업에 돈을 대고 있다. 손 회장의 최종 목적은 널리 알려졌다시피, 이들 기업을 묶는 ‘글로벌 IT벨트’ 조성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쿠팡을 일본 기업으로 볼 수도 있을 것만 같다. 현재 쿠팡의 경쟁사로 알려진 기업들의 주주게시판에는 “쿠팡을 일본 기업으로 몰아야 한다.”, “쿠팡에 친일 프레임을 씌워 주가를 올릴 기회.”, “주변에 쿠팡을 쓰지 못하도록 알려야 한다.” 등의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하지만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는 다국적 투자회사로 일본 자본으로 보기는 힘들다.

소프트뱅크 비전펀드의 자금 중 약 48%는 사우디국부펀드가 갖고 있고, 나머지는 소프트뱅크가 30%, 아랍에미리트의 무바달라가 16% 등을 소유하고 있다. 투자 비중만 본다면 소프트뱅크 비전펀드의 최대주주는 사우디아라비아가 된다. 물론, 비전펀드의 운용사(GP)는 소프트뱅크로 사우디국부펀드가 실질적인 운영권한은 행사하지 않는다. 

우려되는 점은 추후 쿠팡이 이익을 내기 시작하는 경우다. 대규모 흑자를 기록할 경우 일본 소프트뱅크로 상당한 이익금이 갈수 있다. 일각에선 향후 쿠팡이 상당부분의 순수익을 낼 경우, 한국에서 재투자를 할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내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 먼 이야기일 수 있다. 쿠팡 측도 “2015년 이후 이익이 발생하지 않았으므로 투자자들에게 배당이 돌아가지 않았다”고 선을 그은 상태다. 

그럼에도 최근 손 회장의 발언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지난 5월 결산회의에서 “비전펀드는 소프트뱅크 그룹의 신성장동력으로, 이번 영업익 증가의 상당 부분이 비전 펀드에서 나왔다”고 했다. 

한전진 기자 ist1076@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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