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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쉬운 경제] 일제강점기 은행업은 어땠을까

송금종 기자입력 : 2019.08.15 06:00:00 | 수정 : 2019.08.14 21:11:35

영화 <봉오동전투> 속 인물인 ‘이진성(원풍연 분)’은 독립운동자금 모집책이다. 그는 돈다발이 든 짐을 지고 독립군을 만나러 가던 중 일본군 추격을 받는다. 이진성은 개똥이(성유빈 분)에게 짐을 맡기고 홀로 일본군과 맞서다 숨진다. 독립자금은 다행히 아군에게 전달된다. 

100년 전 선조들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거액의 자금을 직접 운반했다. 지금이야 개인마다 계좌가 있고 스마트폰으로도 송금이 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이게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변절자가 득실댔고 무엇보다 일본이 금융업을 장악한 시기였다. 

1910년부터 광복을 맞기까지 일본은 조선은 물론 대륙 경제수탈 수단으로 금융을 이용했다. 대표적인 식민금융기구는 현재 서울 소공동 한국은행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는 조선은행이다. 조선은행은 식민통지 발권은행이었다. 여기서 발행된 화폐(조선은행권)는 만주와 시베리아, 중국 화북 등지에서 일본은행권 대신 쓰였다. 조선은행 지점은 이 지역에서 예금과 대출도 취급했다. 

이밖에 조선식산은행(현 산업은행)과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있다. 조선식산은행은 초반에는 산미증식계획 자금공급처였다가 나중에는 일본 정부와 전쟁 수행을 위한 군수사업 부문에 자금을 대는 역할을 했다. 동양척식주식회사는 일본이 조선 토지와 금융을 장악하고 식민지 개척활동을 돕도록 세워진 회사다. 전국적으로는 금융조합이 세력을 넓혀나갔다. 금융조합은 일제강점기에 농업자금은 물론 대부업도 추진하는 등 금융을 중심으로 사업을 확장해나갔다. 

민족자본으로 설립된 은행은 일본 침략 이전부터 있었다. 바로 우리은행 전신인 대한천일은행이다. 대한천일은행은 강화도조약 체결 이후 일본 금융업계 진출이 뚜렷해지자 우리나라 지배층과 실업가들이 경제파탄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세운 은행이다. 대한천일은행은 1899년 설립됐다. 

하지만 국권상실 후 대한천일은행은 일본 강요로 상호를 조선상업은행으로 바꾼다. 조선산업은행은 훗날 일본인이 경영하는 군소은행을 인수합병해 민족은행 세력을 잠재우고 대신 일본 자본과 지배력을 키우는 도구로 사용됐다.  

송금종 기자 song@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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