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인터뷰] ‘벌새’ 박지후 “제가 얌전해 보인다고요?”

‘벌새’ 박지후 “제가 얌전해 보인다고요?”

기사승인 2019-09-0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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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 5 가르마에 층 내지 않고 자른 단발, 어른 옷을 빌려 입은 듯 큼지막한 교복. 아무리 복고가 유행이라지만, 영화 ‘벌새’(감독 김보라) 속 은희의 모습에선 촌스러움을 지워낼 수 없다. 은희 역의 배우 박지후는 이 영화 오디션을 위해 머리를 짧게 자르고 옛날 교복도 구해 입었다고 한다. 외모에 관심 많을 나이에 똑단발이라니. 그런데 정작 박지후는 대수롭지 않아 했다. “머리카락은 어차피 다시 자라니까요.” 점잖은 첫인상 뒤에 시원시원한 모습이 ‘벌새’의 은희와 똑닮았다.

최근 서울 동작대로 아트나인에서 만난 박지후는 “나를 처음 보신 분들은 내가 얌전할 것 같다는 말씀을 많이 하신다. 하지만 나는 반전 매력이 있는 아이”라며 웃었다. 그가 은희와 자신의 닮은 점으로 꼽은 모습도 “당차고 열정적인 성격”이다. “은희가 항상 남에게 끌려다니기만 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상황을) 주도하기도 하잖아요. 저도 할 말은 하는 편이에요. 워낙 수다쟁이이기도 하고요.” ‘벌새’ 예고편을 본 친구들은 박지후에게 ‘목소리 깔지 말라’며 장난을 쳤다고 한다. 혈기왕성한 10대들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박지후는 ‘벌새’의 대본을 처음 읽고, 은희가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제가 불쌍해서 잘해주시는 건 아니죠?’ ‘제 삶도 언젠가 빛이 날까요?’와 같은 대본을 읽으며 마음이 짠했다고 한다. 하지만 대본을 여러 번 뜯어볼수록, 은희와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비슷하다고 봤다. “은희는 평범하면서도 조금의 쓸쓸함, 사랑에의 갈구를 가진 아이”라는 분석이다. 박지후는 작품 촬영 중 여성 듀오 볼빨간 사춘기의 ‘나의 사춘기에게’를 들으면서 ‘은희의 얘기, 그리고 나의 얘기 같다’고 느꼈다.

남자친구 지완(정윤서)과 헤어진 뒤, 집에서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몸부림치듯 춤을 추는 장면은 연기하기 가장 어려웠던 장면이자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다. 박지후는 “은희가 어떤 감정인지 감이 안 잡혀서 혼란스러웠다”고 돌아봤다. 그에겐 파격의 과정이 필요했다. “그동안 주변 사람들을 의식하면서 연기했던 것 같은데, 그때만큼은 틀을 깬 것 같아요.” 박지후는 이 장면을 통해 “짜릿한 쾌감”과 “내게도 이런 날카로운 면이 있구나”를 느꼈다고 했다.

“대사가 많은 편은 아니었어요. 그래서 표정이나 눈빛, 걸음걸이로 은희를 나타내는 데 집중했죠. 책을 보듯 시나리오를 읽었던 것 같아요. 지문이나 행동 위주로요. 감정 연기를 하는 게 특히 어려웠어요. 잘하고 싶은데 뜻대로 안 됐거든요. 지숙 역의 (박)서윤 언니랑 ‘보면 눈물 나는 영상’ 같은 것도 찾아봤는데…(웃음). 오히려 이렇게 긴장하면 나오려던 눈물도 안 나오겠다 싶더라고요. 그랬더니 어떤 분께선 ‘네가 이제 연기를 알아가는구나’라고 하셨어요.

[쿠키인터뷰] ‘벌새’ 박지후 “제가 얌전해 보인다고요?”어린 시절, 박지후의 꿈은 아나운서가 되는 것이었다. 그가 연기에 발을 들인 건 초등학교 5학년 때. 길거리에서 ‘연기를 배워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으면서다. 단편영화 ‘나만 없는 집’과 ‘페노미나’에 출연하며 연기에 흥미를 붙이다가, ‘벌새’를 통해 ‘내 길은 배우’라고 뜻을 굳혔다. “매번 다른 캐릭터에 도전할 수 있고, 캐릭터를 통해 나 자신을 발견”하는 점이 연기의 매력이란다. 지난 5월 종영한 JTBC ‘아름다운 세상’으로 브라운과 데뷔 신고식도 치렀다.

‘벌새’는 박지후의 매력을 두루 보여주는 작품이다. 박지후는 이 영화로 제18회 트라이베카 필름 페스티벌에서 최연소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등굣길에서 전화로 수상 소식을 들었다는 그는 “말 그대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고 털어놨다. “황홀하기도 했고, 과분하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박지후는 이날 일기에 ‘내 생애 최고의 날’이라고 적었다. 그는 매일 일기를 쓴다. “나 자신을 성찰하고 스스로에게 당근과 채찍”을 주는 수단이란다.

“저를 나타낼 수 있는 단어는 ‘투명’이에요. 저는 아직 어떤 색깔로 물들지 않은 것 같거든요. 연기 경험이 얼마 안 되고 그래서 앞으로 다양한 작품을 많이 봐야 하지만, 동시에 여러 색깔으 흡수할 수 있는 상태라고 생각해요. 어떤 장르, 어떤 역할을 주셔도 감사한 마음으로 해낼 수 있겠지만, 실제 제 성격을 반영할 수 있는 10대 학원물에 관심이 많아요. 그동안 사연 있는 아이를 주로 연기했거든요. 제가 얌전해 보인다고들 하시지만, 대화를 오래 해보고 깊게 시간을 가져보면 저를 완벽하게 아실 수 있을 거예요.(웃음)”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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