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화의 인문학기행] 발트, 첫 번째 이야기

기사승인 2019-09-1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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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뉴스의 배려에 힘입어 그동안 다녀온 여행에 대해 정리하고, 또 그 내용을 독자들과 공유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있다. 순서대로라면 지난해 가을에 다녀온 그리스 여행을 정리할 차례다. 하지만 독일 여행을 마무리하며 예고한 것처럼, 지난 8월 말에 다녀온 발트연안국 여행을 먼저 소개하려 한다. 독일의 작센지역을 소개하면서 작센의 선제후가 폴란드 왕국을 지배한 적도 있다고 했는데, 기왕이면 그 부분을 더 공부해보면 좋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발트연안국은 유럽여행을 두루 다녀본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주목받기 시작한 여행지라고 한다. 필자는 아직 돌아보지 않은 유럽 국가들도 많지만 일단 발트연안국을 먼저 가보기로 했다. 흔히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등 세 나라를 ‘발트3국’이라고 부르지만, 정작 이들 나라는 그렇게 부르는 것을 싫어한다고 했다.

소비에트연방에 속해있던 시절 연방정부가 흑해연안에 모여 있는 세 나라를 한 묶음으로 부르던 호칭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독립을 이룬 뒤 이들 국가들은 국가별 이름으로 불러달라면서도 굳이 묶어서 이야기를 해야 한다면 ‘발트연안국’이라는 이름으로 불러주기를 희망했다. 필자는 이미 굳어진 이름일지라도 당사국이 원한다면 바꿔줄 수 있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발트연안국을 여행하는 여행사 상품은 에스토니아의 북쪽에 있는 러시아의 상트 페테르부르크(Санкт-Петербург)를 경유하는 상품과, 폴란드 바르샤바(Warszawa)를 경유하는 상품으로 나뉘는 듯하다. 러시아는 나중에 따로 여행할 생각이고, 2016년에 동유럽을 여행할 때 오시비엥침(독일어로 아우슈비츠), 크라쿠프, 비엘리치카 등 폴란드 남쪽을 돌아봤지만 정작 수도 바르샤바를 보지 못한 점을 고려했다.

이번에도 빠지면 앞으로 기회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바르샤바가 포함된 참좋은여행사의 EPP0211 상품, ‘발트해의 석양을 바라보면’을 골랐다. 이 상품은 8월 17일 인천을 출발해 폴란드의 바르샤바, 러시아의 월경지 칼리닌그라드를 거쳐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3국을 돌아보며 탈린에서 비행기를 타고 바르샤바를 경유해 인천으로 돌아오는 9일 일정이다.

바르샤바로 가는 폴란드항공 LO 098편은 오전 10시 55분 인천공항을 출발한다. 평소보다 이른 7시에 인솔자를 만나기로 돼있어 5시에 집을 나섰다. 커다란 여행 가방을 끌고, 아직 자고 있는 아이들이 깰까봐 조심스레 문을 나서는 모양새가 심야에 도둑이사를 하는 사람이 이러지 않을까 싶다. 공항버스 정류소에 나가서는 금세 온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여행을 떠날 무렵, 마른장마 끝에 연달아 올라오는 태풍의 영향으로 비가 잦았다. 출발하는 날 아침에도 비가 예보됐지만 버스를 탈 때까지는 비를 맞지 않아 다행이었다.

사실 발트연안에서는 8월이 우기에 해당된다고 한다. 출발 1주 전에 들여다본 IBM 일기예보에서도 여행기간 내내 비가 예고돼있었다. 비 걱정을 안고 떠나는 상황이라 은근히 행운을 기대해봤다. (실제로도 두 차례 정도만 비를 맞았으니 엄청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현지에서 만난 김영만 가이드는 일행 가운데 전생에 나라를 구한 분이 계시다고 했는데, 그 사람이 바로 필자일 수도 있겠다는 착각을 했다고 고백한다.)

이제는 해외여행을 떠나는 것이 틀이 잡혀있다는 생각을 하지만 떠날 즈음에 임박해서 떠오르는 것을 챙기기에 급급하고, 심지어는 내내 생각하다가도 막상 마지막에는 빠트리고 떠나는 것이 여전히 있는 것을 보면 아직 여행전문가의 경지에 올랐다고는 할 수는 없겠다. 그래도 아내가 여행준비를 꼼꼼하게 해둔 덕분에 출발 전날 밤 퇴근 후 1시간도 안 돼 짐을 꾸릴 수 있었다. 출발 이틀 전에 밤늦게 인터넷을 뒤져 여행지 정보를 만든 것도 여행준비에 게을러진 탓이 아닐까 싶다.

공항 가는 버스를 타고 대치동을 출발할 무렵만 해도 사위가 컴컴해서 해가 짧아지는 것을 알겠다. 비구름이 두텁게 내려앉은 탓도 있을 것이다. 강남대로에 들어서면서 여명이 밝아온다. 이른 시간인지 거리는 비어있고, ‘빈차’ 등을 켜고 서 있는 택시가 무료해 보인다. 강남대로의 지하철 공사장에도 사람이나 기계의 움직임은 없고 노란 등만이 외롭다. 88도로에 접어들면서 사방이 환해지고, 구름이 드리운 서쪽 하늘로 이지러진 달이 숨바꼭질을 한다. 

6시 반 공항에 도착해 정가람 인솔자를 만나 여행에 필요한 서류를 받고 설명을 들었다. 데이터로밍까지 출발준비를 마치는데 20분이면 족했다. 커피와 함께 간단하게 준비한 요깃거리로 아침을 때웠다. 탑승을 기다리는 승객들이 많지 않은 듯 항공사 창구가 문을 열기를 기다려 탑승권을 받고 짐을 부치고 났더니 8시. 보안검색을 마치고 탑승구에 도착한 것은 8시 반이었다. 탑승이 시작되는 10시 반까지 2시간 가까이 기다려야 했다.

기다리는 동안 며칠 전부터 읽어왔던 톰 페로타의 소설 ‘레프트 오버’를 마무리했다. 2011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휴거를 계기로 남은 이들이 보일 수 있는 모습을 예상해본 내용이다. 이번 여행길에는 즈느비에브 쉬레의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여행’와 후칭팡의 ‘여행자(旅人)’, 최인호 유고집 ‘눈물’, 이영민의 ‘지리학자의 인문여행’, 파울로 코엘료의 ‘알레프’등 가벼운 내용의 책들만 5권을 골랐는데, 출발을 앞두고 받은 민동석 전 외교부 차관의 ‘외교관 국제기구 공무원 실전 로드맵’을 더해서 가지고 갔다. 다른 여행 때와는 달리 2권이라 읽지 못하고 남겨온 것은 여행 내내 김영만 가이드가 책 읽을 틈을 주지 않은 탓이 컸다. 물론 김영만 가이드가 좋은 이야기들을 많이 해주었기 때문에 이야기를 할 때마다 딴 짓을 할 수 없었다.

구름이 짙어가는 품이 금세 빗방울이 떨어질 듯하다. 전날 퇴근하는데 저녁 기온이 많이 내려간 느낌이었는데, 출발하는 날 낮 최고 기은 30℃로 며칠 전에 36℃까지 오른 것에 비하면 많이 서늘해진 셈이다. 물론 흐린 탓도 있을 것이다. 구름이 짙어가는 것을 보면서 비행기가 이륙하는데 어려움은 없을까 하는 공연한 걱정을 해봤다. 우리가 타고 가는 비행기는 보잉 787-9로 드림라이너라고 하는 기종으로 290석을 운용하는 중형비행기다. 

비행기는 정시에 탑승구를 물러나 활주로로 이동해갔는데, 언제 이륙했는지도 모를 정도로 가뿐하게 날아올랐다. 다만 중형기라서인지 비행 중 난기류에 많이 흔들리는 듯했다. 바르샤바까지의 비행시간은 9시간 55분으로 현지시각 14시 25분에 도착한다. 비행기가 출발하고서 보니 빈 좌석이 눈에 띄게 많다. 필자와 아내는 3-3-3으로 된 좌석 가운데 통로를 사이에 두고 앉았는데, 필자의 옆 가운데 자리가 비었고 아내의 경우는 옆의 두 자리가 모두 비어 편하게 갈 수 있었다. 

인천을 떠나 1시간 반쯤 지나 음료와 식사가 나왔다. 음료는 적포도주로 했고 식사는 소고기 요리를 골랐는데, 모두 좋았다. 특별히 음식을 까다롭게 고르거나 음식 맛에 민감한 편은 아니다. 다만 식사 후 정리를 빨리 시작하는 바람에 식사 속도가 느린 사람은 불편할 수도 있겠다. 

여행 중에 다소 아쉬웠던 점은 즐길 거리가 많지 않더라는 것이다. 영화는 폴란드, 프랑스 등 유럽 국가는 물론 인도까지 다양한 나라에서 제작된 것으로, 국적기에서 흔히 감상할 수 있는 허리우드 최신작은 거의 없었고, 옛날 영화도 별로 없었다. 사정은 음악도 마찬가지였는데, 특이한 점은 팝 부문의 음악에 EXID 등 한국 가수의 앨범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비행정보도 많지 않아 인천에서 바르샤바에 이르는 화살표 하나로 끝이었던 것 같다. 

사정이 그래서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민동석 전 외교부 차관이 최근에 낸 ‘외교관 국제기구 공무원 실전 로드맵’을 읽기 시작했다. 외교부 등 공직에서 오래 근무한 경험과,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사무총장을 역임하면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외교관 혹은 국제기구의 공무원이 되는 꿈을 가진 젊은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내용을 담았다. 이 정도 경력을 가진 분들은 현직에서 물러난 뒤에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회고록을 내시는 경향이 있는데, 민동석 전 차관은 독특하게도 우리나라 젊은이들을 일깨우는 그런 책을 냈다. 나라의 미래를 위해 고민하는 공직자의 표상이라 해야겠다.

폴란드어로 제치포스폴리타 폴스카(Rzeczpospolita Polska)라고 하는 폴란드 공화국은 폴스카(Polska)라고 부르며, 우리가 아는 폴란드(Poland)는 영어로 부르는 이름이다. 중앙유럽에 있는 나라로서 16개 주(州)로 나뉘며 수도는 바르샤바이다. 2017년 기준 인구는 3843만 명으로 유럽연합에서는 6번째, 세계에서 35번째로 인구가 많다. 국민의 98%가 폴란드 민족이며 로마 가톨릭을 믿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2019년 추정 1인당 국민소득이 3만3747달러로 세계에서 43번째로 높은 나라다.

북위 46°~54˚, 동경 14°~24°에 걸쳐 중앙유럽의 대평원 지역에 위치해 전체 국토의 75%가 해발 200m 이하다. 독일, 체코, 슬로바키아, 우크라이나 등과 국경을 이루는 남쪽은 산맥들이 이어지는 고지대인데, 서쪽으로는 수데티(Sudetes) 산맥, 가운데에는 타트라(Tatry) 산맥 그리고 동쪽에는 카르파티아(Carpați) 산맥이 이어진다. 해발 2499m의 폴란드 최고봉 리시(Rysy)산은 폴란드와 슬로바키아의 국경이 걸쳐 있는 타트라 산맥의 동쪽에 있다. 

영토면적은 31만2696㎢로 유럽에서도 큰 나라에 속하며, 동쪽으로는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리투아니아 및 러시아의 월경지 칼리닌그라드주와 국경을 나누고 있다. 남쪽으로는 체코 및 슬로바키아, 서쪽으로는 독일 등 7개국과 접하고 있고, 북쪽으로는 발트해가 있다. 기후는 온대에 속해 서유럽의 해양성 기후와 동유럽의 대륙성 기후가 만나는 지역이다. 강수량은 가장 많은 남부 국경 산악지대가 1000∼1100㎜, 가장 적은 중부가 평균 600㎜이다.

기장의 도착 안내방송이 나오고 비행기가 크게 왼쪽으로 돌면서 하강하다가 활주로에 내려선 시각은 도착 예정시간보다 20분 빠른 현지시각 2시 5분이다. 비행기는 계류장에 섰는데, 탑승계단을 비행기의 앞쪽은 물론 뒤쪽에도 걸어서 뒷자리 승객도 쉽게 내릴 수가 있었다. 여행사 상품으로 여행하는 단체여행객들은 주로 비행기의 뒷자리에 앉기 마련인데 바르샤바의 쇼팽 공항이 참 마음에 든다. 그런데 수하물을 찾기 위해서 30분을 기다린 끝에 짐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수하물 회전판이 돌다 서다를 반복하는 바람에 공연히 심기가 불편해진다. 그래봤자 탑승인원이 많지 않아 10분 만에 짐을 찾을 수 있었지만 말이다. 

짐을 찾아 입국장에 들어갔더니 이번 여행을 안내할 김영만 가이드가 오랫동안 기다렸다면서 일행을 맞아주었다. 모두 모였을 때 보니, 이번 여행을 함께 하는 사람은 모두 17명이었다. 예약했던 사람 가운데 7명이 사정이 생겨 올 수 없었던 모양이다. 공항을 나서는데 보니 기온이 26℃를 나타내고 있다. 일단 출발지 서울보다 낮은 기온에서 출발하니 이번 여행도 피서는 제대로 한 셈이다. (여행을 마칠 무렵 에스토니아의 타르투에서는 아침 기온이 14℃에 머물러 긴팔 옷을 꺼내 입어야 했다.) 

글·양기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진료심사평가위원회 평가책임위원

[양기화의 인문학기행] 발트, 첫 번째 이야기
1984 가톨릭의대 임상병리학 전임강사
1991 동 대학 조교수
1994 지방공사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1998 을지의대 병리학 교수
2000 식품의약품안전청, 국립독성연구원 일반독성부장
2005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2009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상근평가위원
2019 현재, 동 기관 평가책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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