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인터뷰] 스팅 “음악은 낚시와 비슷, 잡아 올리기만 하면 된다”

스팅 “음악은 낚시와 비슷, 잡아 올리기만 하면 된다”

기사승인 2019-09-2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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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도박사다. 하지만 그는 돈을 따기 위해서나 명성을 얻기 위해 카드를 치지 않는다. 카드 게임은 그에게 명상과 같은 행위다. 남자는 뭔가를 알아내고 싶어 한다. 성스러운 우연의 기하학, 그럴듯한 결과 속에 숨겨둔 법칙 같은 것들 말이다. 남자는 그래서 철학자에 가깝다. 영국 싱어송라이터 스팅이 1993년 발표한 ‘셰이프 오브 마이 하트’(Shape Of My Heart)에 나오는 내용이다.

뤽 베송 감독의 영화 ‘레옹’(1994)에 삽입돼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이 곡은 지난 25년간 여러 후배 가수들에게도 영감을 줬다. 슈가베이비스, 크랙 데이비드, 나스, 칼 토마스 등 많은 팝스타들이 자신의 노래에 이 곡을 샘플링해 넣었다. 최근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만난 스팅은 “이 곡이 이런 큰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 무척 흥미롭다”면서 “이 곡은 주스월드의 히트곡 ‘루시드 드림’(Lucid Dream)의 바탕이 되기도 했는데, 최근 한 공연에서 ‘루시드 드림’과 ‘셰이프 오브 마이 하트’를 매시업해서 불렀더니 반응이 좋았다”고 말했다.

스팅 자신도 얼마 전 이 노래를 리메이크했다. 지난 5월 발매한 ‘마이 송즈’(My Songs) 음반에서다. ‘마이 송즈’는 스팅 스스로가 ‘인생의 노래들’이라고 꼽은 곡들을 새로운 보컬과 연주로 담은 음반이다. 일흔 살을 앞두고도 노장의 목소리는 터프했다. 스팅은 이 음반에 ‘브랜드 뉴 데이’(Brand New Day), ‘필즈 오브 골드’(Fields Of Gold), ‘잉글리시 맨 인 뉴욕’(Englishman In New York) 등 14곡을 재해석하고 5곡의 라이브 실황을 실었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원곡을 고르는 게 중요했어요. 팬들이 원곡과 새로운 버전의 곡을 비교하며 들을 수 있게 하고 싶었거든요. 어떤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했는지 비교하는 것도 재밌잖아요. 이번 음반의 차이점은 원곡보다 현대적인 사운드가 더해졌다는 점이에요. 바로 ‘오늘’ 만들어진 음악처럼 들리게끔 했죠.”

음반은 미국과 유럽 지역에서 특히 인기다. 수록곡 ‘이프 유 러브 섬바디 셋 뎀 프리’(If You Love Somebody Set Them Free)로 미국 빌보드 댄스 클럽 송 차트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스팅은 “예상하지 못한 일인데, 정말 신난다”고 했다. 그는 젊은 세대가 자신의 새로운 청중이 됐다는 점을 반겼다. 새로운 팬들의 유입은 아티스트의 생명력과도 직결된다. 스팅은 “오래된 팬들도 있지만, 좀 더 젊은 사람들도 내 음악의 청중이 되고 있다. 그 점이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1시간30여분 분량의 이 음반에서 스팅은 록·재즈·블루스·레게 등 다양한 장르를 누빈다. 그는 “내가 느끼기에 음악 안에는 경계가 없다”고 했다. 음악 안의 여러 갈래들도 그에겐 하나의 언어일 뿐이다. 스팅은 “음악이 만들어진 구조와 조각들을 살펴보고, 내가 듣는 모든 종류의 음악으로부터 영감을 얻는다”고 말했다. 40년 넘게 활동하며 1억장 이상(솔로·폴리스 활동 합산)의 음반 판매고를 기록한 저력은 스팅의 이런 ‘편견 없음’에 있다.

음반의 대미를 장식하는 트랙은 ‘프래자일’(Fragile)의 라이브 실황. “폭력은 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한다”는 가사가 스팅의 휴머니즘을 대변한다. 스팅은 1987년 니카라과에서 콘트라 반군에게 살해당한 벤 린더에게 헌정하는 의미에서 이 노래를 만들었다고 한다. 가사를 통해 알 수 있듯, 스팅은 인권과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다. 최근엔 아마존 화재 사건에 관심을 촉구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그는 “이 사건으로 무척 속이 상했다”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언가라도 해야 한다. 계속 싸워나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쿠키인터뷰] 스팅 “음악은 낚시와 비슷, 잡아 올리기만 하면 된다”스팅은 올해 특별한 생일을 앞두고 있다. 생일 다음 날인 10월3일, 그는 이역만리 한국 땅을 밟는다. 같은달 5일 서울 올림픽공원 88잔디마당에서 열리는 ‘슬로우 라이프 슬로우 라이브’ 공연을 위해서다. 2년 4개월 만에 한국을 찾게 된 스팅은 “서울의 10월은 가을인가?”라고 물었다. 7년 전 방한 당시 호된 추위에 떤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 걸까. 그는 “한국의 겨울을 겪어봐서 얼마나 추운지 아는데, 좀 더 따뜻하고 편한 계절에 가게 돼 기대된다”며 “서울에 가면 시내에서 산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 공연은 ‘마이 송즈’ 발매 기념 월드투어의 일환으로, 새롭게 탈바꿈한 스팅의 명곡들을 라이브로 들어볼 수 있는 자리다. 청중을 대하는 스팅의 태도는 깍듯하다. 그는 자신의 음악적 모험을 가능케 한 존재로 팬을 꼽으면서 “나는 내 음악의 청중을 절대 과소평가하지 않는다. 그들은 정교하고 세련된 감각을 가졌고, 그런 감각으로 내 음악을 듣는다”고 했다. 자신이 자신의 흥미와 호기심을 따라가며 음악을 만들 듯, 팬들도 같은 마음으로 자신의 음악을 대할 것이라고 스팅은 믿는다.

거장은 늙지 않는다. 스팅의 창작력은 여전히 왕성하다. 그는 “모든 순간에서 음악적 영감을 얻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잠에서 깰 때, 창문 너머를 바라볼 때, 책이나 신문을 읽을 때 모두 그에겐 음악적 양분이 되는 순간들이다. 불후의 명곡 ‘셰이프 오브 마이 하트’의 가사도 숲과 강기슭을 산책하면서 완성했다고 하지 않는가. 

“저는 음악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순간들을 잘 포착하는 편이에요. 눈과 귀를 열어놓기만 하면 되죠. 무언가와 연결되며, 또 깨어 있는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해요. 낚시에 비유할 수도 있겠군요. 음악적 소재를 (고기를 낚듯) 잡아내는 겁니다. 그것들은 저 강 속에 다 있어요. 잡기만 하면 되는 거죠. 비유가 괜찮나요?”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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