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노란철문 앞에 팔레스타인 엄마는 좌절했다

[김양균의 현장보고] 팔레스타인 르포… 분리된 삶, 부서진 꿈-2부 거부된 권리①

기사승인 2019-10-09 00: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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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지금까지 가자지구의 포화를 비롯한 이스라엘-팔레스타인간 분쟁 혹은 이스라엘 내 정치 상황을 다룬 보도는 많았다. 그러나 서안지구의 보건의료 및 여성의 실상에 집중한 언론은 드물었다. 기자는 팔레스타인 대도시 나블루스와 라말라, 그리고 요르단계곡 일부 지역에서 현지 주민과 여성 활동가, 의료인을 두루 인터뷰했다. 앞으로 4회에 걸친 기획연재 ‘거부된 권리’는 이팔 분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전할 것이다.  

◇ 노란철문 

“여성들이 체크포인트(검문소)에서 출산하는 경우가 많다.” 

팔레스타인에서 현지의 보건의료 실태를 물으면 으레 이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검문소는 서안지구 곳곳, 교통의 요충지마다 들어서 있다. 출입을 결정짓는 철문은 대개 빛바랜 노란 색. ‘노란철문’을 열고 닫는 건 이스라엘군 맘먹기에 달렸다. 노란철문의 위력이란 가히 절대적이다. 피점령지 주민들의 이동의 자유뿐만 아니라 의료접근권까지도 좌지우지하기 때문이다. 예외란 없다. 긴급을 요하는 구급차도 철문 앞에서 하릴없이 멈춰서야 한다. 팔레스타인인 누구도 함부로 문을 넘을 수 없다. 여차하면 이스라엘 군인의 기관총이 불을 뿜기 때문이다. 

지난 8월18 오전 10시(현지시각) 나블루스 도심에 위치한 시민단체 탄위르의 사무실. 이곳에서 보건의료 및 여성, 아동 관련 활동을 펴고 있는 교수, 간호사, 현지 활동가와 마주앉았다. 탄위르의 와엘 활동가와 우리나라 시민단체 아디의 이동화 팀장이 어렵게 주선한 자리였다. 

이곳에서 만난 자하니씨는 간호사다. 동시에 ‘헬스워커스커뮤니티’란 단체 소속 활동가이기도 하다. 팔레스타인 사람들 상당수가 언론인이자, 활동가를 겸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그의 이력 자체는 특별할 것이 없다. 다만, 해당 커뮤니티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주도의 보건의료종사자 연합체라는 점이 달랐다. 자하니는 서안지구 북쪽에서 주로 여성 보건, 즉 암, 출산 등에 대한 지원활동을 해왔다고 설명했다. 커뮤니티는 자치정부의 지원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출산 시 어려움이 많다고요?”

“병원간 이동거리가 멀고 체크포인트로 인해 제때 병원에 도착하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합니다. 이동간 장애가 가장 큰 원인입니다.”

“태아 사망률은 어떤가요?”

“(구체적인 통계를 확인할 수는 없었다) 친척간의 결혼으로 유전병이 발생해 아이들이 사망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특히 지역에 거주하는 여성들은 정기검진이 어렵겠군요?”

“이동의 불편 등 여러 상황으로 건강검진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두 달에 한 번씩 이동검진소를 통해 임산부나 유방암 검사를 지원하고 있어요.”

“여성들에게 빈번한 질환은 무엇입니까?” 

“호흡기 질환, 저혈압, 빈혈입니다.” 

“지역에서 세균 감염도 심할 것 같은데요?”

“주로 아이들에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나블루스내 여성 의사 수는 얼마나 되나요?”

“150명 가량 됩니다.”

자하니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나블루스내 여성 2만2279명이 출산 및 부인과 질환으로 진료를 받았다. 2320가구에 걸쳐 4614명이 임신을 했고, 5068명이 산부인과에서 아이를 낳았다. 팔레스타인 미혼 여성들의 부인과 검진 수요는 늘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자하니는 “여성 의사 수는 증가하고 있다”고 했다. 무슬림이기 때문에 여성들은 여의사의 진료를 선호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자하니는 “의사는 의사일 뿐 아니냐”고 딱 잘라 말했다.  

관련해 동석한 사바 슐리 인권변호사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 알나자 대학은 57%, 타 지역은 50%를 상회한다. 활동 중인 전체 변호사의 25%는 여성이며 의료계의 비율은 이보다 높다는 것. 그는 “여성의 전문직 진출이 늘고 있다”고 부연했다. 

◇ 자폐아 둔 엄마 마음, 한국이나 팔레스타인이나 절절하긴 매한가지

부모가 무릎을 꿇었다.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위한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지역주민들에게 호소코자 무릎까지 꿇어야 했던 기막힌 현실은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역만리 떨어진 팔레스타인에서 이와 유사한 사례를 들을 줄은 꿈에도 예상치 못했다. 

소하 나자르(사진). 두 아이의 엄마. 그녀의 첫째 아이는 자폐를 갖고 있었다. 처음에는 어딘가 아파서라고 여겼다. 약을 지어 먹였지만 차도가 없었다. 훗날 자폐 판정을 받았을 때의 심정을 그녀는 “마음은 무너지는 것 같았다”고 표현했다. 

여전히 지역에서는 자폐아를 쉬쉬하는 경향이 많다. 명예를 중시하는 무슬림들은 장애를 가진 아이를 부끄럽게 여긴다. 그래서 학교에 보내지 않고 집에 가둬두곤 한다는 것이다. 소하 부부는 그렇지 않았다. 슬픔보다 아이를 제대로 교육시켜야 한다는 절박함이 더했다. ‘제때, 제대로 교육 시켜야 한다. 그래야 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을 테니까.’ 쉬지 않고 일해 돈을 벌었다. 아이가 처음 학교에 등교하던 날을 소하는 잊을 수 없다. 그러나 기쁨은 오래 가지 않았다. 

“우리학교는 더 이상 당신의 아이를 받을 수 없습니다. 특별한 교육을 받도록 하세요.” 학교는 아이를 내쳤다. 그녀는 지금도 학교에서 자녀가 쫓겨났던 순간을 떠올리면 마음이 먹먹해진다. “너무나 가슴이 아팠고 상처를 받았어요. 제겐 너무 소중한 아이가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한다니. 아이를 학교에 보내기 위해 열심히 일했고, 등교를 시켜 뿌듯했는데….” 

현지 학교에서 자폐아는 부당한 대우를 받기 일쑤다(이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다). 소하씨는 자폐아 교육을 위해 학교 측에 교사의 인권 교육을 요구했지만 거부당했다. 팔레스타인에는 자폐아 전문 학교나 교육 및 치료 프래그램이 부재한 상황이다. 일부 센터에서 관련 교육이 이뤄지긴 하지만, 전문성을 가진 교사는 극히 드물다. 센터 교사가 자폐아를 폭행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자폐아 전문 치료센터는 예루살렘에만 있다. 이스라엘 거주증을 갖고 있지 않은 팔레스타인인은 이스라엘 지역으로 갈 수 없다. 이스라엘에 가기도 전에 소하는 노란철문 앞에서 다시 한 번 억장이 무너져야 했다. “특별 출입 허가 기간도 2주에 불과합니다. 아이를 예루살렘에 보낼 때 체크포인트에 있던 군인이 제게 말했습니다. ‘부모는 갈 수 없고 아이만 보내라’ 아이가 자폐를 갖고 있다고 간청했지만 그들은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소하씨는 페이스북을 통해 본인과 같은 자폐아 자녀를 둔 부모의 사연을 전하기 시작했다. 현재 그녀는 뜻있는 여러 활동가와 자폐아 지원 활동을 준비 중이다. 십시일반 노력으로 그녀와 활동가들이 돌보고 있는 자폐아들은 100여명. 문제는 예산이다. 지속적인 활동에 소요되는 돈을 구할 길이 막막하다. 현실은 시시각각 수많은 ‘소하’를 옭죈다. 그래도 그녀들은 오뚝이처럼 일어선다. 노란철문이 가로막아도 세상의 전부, 아이를 위해 숱한 ‘소하’는 다시금 일어설 것이다. 


나블루스(팔레스타인)=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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